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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an 21. 2022

나는 확신한다, 고로 집을 산다

00. 하우스푸어의 가난한 변명

나는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도 갑자기 힘이 풀려 휴대폰을 놓치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길을 가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몇 시까지 반드시 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도 망설인다. 딱히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아니겠지만, 그런대로 나는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고,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뱉지 않게 됐다. 지키지 못할 약속 하지 않기. 너무 먼 미래라거나 너무 큰 다짐들에 힘 쏟지 않기로 한 거다. 대신 힘주어 말할 수는 없는 사소한 지금 순간의 역할과 할 일들, 감정들, 그런 시간들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게 내가 살면서 체득한 나름의 살아내기 요령이다. 그 실천으로 나는 "밥 한 번 먹자!" "조만간 얼굴 보자!"는 얘기들도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살면서 밥 한 번 먹는 게, 얼굴 한 번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더라. 언젠가 한 번은 보겠거니 했지만 영영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예전 같으면 잠깐을 만난 사람이어도 연락처를 꼭 받아서 끊길 연락이어도 조금은 이어갈 노력을 했을 텐데, 한 번은 이틀 내내 붙어서 함께 아르바이트하며 친해진 사람의 연락처를 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었고,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지만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연락처가 하나 늘어난다면 언제고 생각날 때 연락할 수 있지만 그만큼 연락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무게가 늘어나는 게 겁난 것도 하나, 억지로 이어가려는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것 하나.

웃으며 흔들어준 손, 소소하게 나눈 얘기들. 그걸로도 그 인연이 가진 몫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다. 결혼서약을 할 때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넣지 않았다. 영원히 결혼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말이면 몰라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마음에 영원이라는 다짐을 어떻게 새겨 넣을 수 있으랴. 물론 가급적 지금 내 옆의 사람과 오랜 시간을 행복하게 채워나가길 바라지만, 영원이란 말이 서로에게 족쇄가 되진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다짐은 하지 않았다. 우린 영원히 사랑할 거야, 라는 말 보단 행복으로 채운 시간들이 지나 보니 영원이었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확신이 없어도 (오히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에) 나름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틀렸을지도, 무책임하거나 비겁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면 고치려 노력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부정당하고 싶진 않다. 이렇게 살아온 어제, 오늘의 내가 있고, 숱한 시행착오와 상처들을 견뎌낸 경험이 있다. 그건 내 삶에 작지 않은 지침들이다. 한 순간, 저절로 바뀌는 게 아니다. 이겨내지 못했던 방식을 다시 선택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일 것이다. 그 익숙한 낯섦으로 인한 이질감, 불편감, 두려움, 받게 될 상처나 잘못될 경우의 후회 모두 내 몫이다. 그걸 감내하라고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다. 왜 미래지향적이지 않느냐고, 현실에만 급급하냐고 채근한다면, 내 몫의 반의반, 아니 만 분의 일도 가져가지 못할 타인 주제에!라고 버럭 할 테다. (사춘기 주의)


쉽게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자신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도 않을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이게 내 인생의 안전선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가 확신하는 것이 있다. 나에겐 집이 필요하다.


의, 식, 주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필수 요소다. 그렇다. 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하지만 집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그럼에도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 있을 테니, 누군가 그 공간을 집이라 일컫는다면 그곳은 집이 맞을 것이다. 다만 이 글 내내 내가 사용하는 '집'이란 단어는 좀 더 세속적인 표현임을 양지해주길 바란다.), 반드시 모든 인간은 집이 필요하다고 확신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이지 집이 필요하다.


30대 초반에 무리해서 빚을 내어 남편과 작은 보금자리를 장만했다. 다달이 나가는 원금과 이자가 한 명의 급여와 맞바꿔질 정도로 무리하게 산 집이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이고, 변두리의 작은 집이라 어디 내놓을만한 집은 아니다. 대중교통으로 그리 접근이 편하지 않아서 집들이를 하기도 민망했다. 이런 집을 이 돈 주고 사냐고 우려 반, 비웃음 반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우린 과감하게, 너무도 당돌하게 집을 샀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편은 망설였고, 그런 남편을 설득한 내 주장은 단 하나였다. 부동산은 계속해서 오른다? 호재가 있다? 놉.

"굶어 죽더라도 내 집에서 죽고 싶어."


이게 무슨 소리냐, 결국 하우스푸어 아니냐, 당장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너무 오버 아니냐? 맞다. 아직 30대 초반인 우리가 굶어 죽을 걱정까지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오버가 맞다.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가난해서다.


가난의 굴레는 좀처럼 벗어나 지지가 않고, 빠져나온 듯싶으면 다시금 발목을 잡아끈다. 정말이지 늪 같다. 결혼을 앞두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남편과 경제력을 합쳤던 어느 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통장이 압류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동생들도 줄줄이 연락이 온다. "건강보험 체납료가 800만 원이 넘는대. 우리 다 연대책임이라서 이거 안 내면 압류 안 풀어준대"

직장을 얻기 전 지역가입자였던 나와 동생들은 부모가 10년 넘게 내지 못한 건강보험료에 발목이 잡혔다. 이제야 먹고살만해졌나 싶었는데, 이제 내 가정 꾸리고 살뜰히 벌어 알뜰히 살 생각에 벅찼는데..


둘 다 생애 첫 직장을 얻은 지 1년 만에 하는 결혼인지라 돈을 모아놓았을 리 없다. 그냥 1년 열심히 모은 돈으로 그 보다 몇 곱절 많은 빚을 얻어 결혼을 감행했던 것이다. 남편의 부모는 다만 얼마라도 보태주시려 했지만, 우리 부모는 결코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도.. 걸림돌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결국 결혼을 준비하는 중에 우리 집의 가난은 내 발을 걸고넘어졌다. 남편한텐 뭐라고 말하지, 이미 집 계약금도 다 내놔서 내가 가진 현금은 하나도 없는데.. 남편 이름으로 빚을 져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어쩌지.. 그냥 결혼을 엎어야 하나. 앞으로 나한테 이런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까. 벗어날 순.. 있을까. 내가 저 사람의 발목까지 잡아끄는 건 아닐까...

 근무 중이었는데도 막막함에, 분함에, 억울함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에서 가난한 주인공 국연수가 삼촌의 빚을 떠안고 나서 한 말이 있다. "제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난했으면 좋겠어." 드라마를 보며 그때의 감정이 밀려와 펑펑 울었다. 그때의 내 심정은 딱, 그랬다.


퇴근 후 남편에게 얘기했다. 의외로 남편은 덤덤하게 말한다. "이것만 내면 되는 거야? 혹시 다른 것 더 있는 건 아니고? 괜찮으니까 차라리 지금 말씀해주시라고 해. 어차피 같이 갚아야 되는 거 이자 조금이라도 덜 내는 게 낫잖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빚 더 있으면 그냥 말하라고, 괜히 숨겨서 이자 잔뜩 불어나게 만들지 말고 차라리 지금 말하라고, 죄 없는 엄마를 다그쳤다. 없다는 엄마 말에 남편은 건강보험료를 납부했고, 압류가 풀렸다.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무섭다.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는 중에 언제 또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날 덮치고 들지, 내 일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무섭다. 가난이 만들어내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집을 살 것이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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