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Jul 26. 2020

네가 원래부터 이랬으면 난 너랑 결혼 안 했어

너에겐 차마 전하지 못할 이야기

네가 원래부터 이랬으면 난 너랑 결혼 안 했어


너의 말을 수백번 곱씹었어. 내가 변한걸까, 너를 속인걸까,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닐까.


너를 만나기 전의 나도, 너랑 결혼식장을 들어서던 순간의 나도, 너와 싸우고 혼자 있는 지금의 나도 같은 사람이야. 브래지어를 하던 내가, 브래지어가 불편해서 하기 싫다는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아. 그때의 나는 불편해도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만성적인 소화불량을 여자의 숙명이라 여겼었지. 나의 불편함 보단 타인의 시선이 주는 불쾌함이 더 견디기 싫었었지.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 시선때문에 아프기 싫은 사람이 됐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달라진걸까?아니, 그때도 지금도 나는 같아.



그때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어서 노력하던 사람이었어. 널 만나기 전의 나는 말을 걸 줄 몰라서 아싸를 자처할만큼 소극적이었어. 근데 그렇게 소외된 나를 보는 시선들이 따갑더라. 그 시선을 못 견뎌 성격을 바꾸려 노력했어. 중학교 2학년 이후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가 타고난 인싸인줄 알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웃겨. 역시 네가 있어야 재밌어. 그렇게 적극적이고 쾌활한 모습을 다들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살았어. 훨씬 환영 받는 내 모습이 좋았고, 그게 더 나은 나인 줄 알았어.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까,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왜 이렇게 나대? 선배들한테 꼬리치는 것 좀 봐. 사랑 받고 싶어서 그랬던 게 맞는데, 그래서 더 눈에 띄고 싶었는데, 관종이 맞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으니까 변명할 것도 없었어. 사람들이 날 좋아한 게 가식이었나. 그럼 이제 어쩌지? 다시 말 수를 줄이고 눈에 띄지 말아야하나? 그럼 나는 또 은따가 될텐데. 그냥 욕하는 사람들 무시하고 지금처럼 지내야하나? 하지만 난 그런 사람들이 무서워..


어느 순간부터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가면을 벗어 던지라고, 자아를 되찾으라는 교양수업, 자기계발서 등이 유행했어. 아 지금의 내모습이 가면인가? 그럼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아무와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책상 한칸 차지하던 내가 원래의 나인가? 난 그런 나는 싫은데. 중2 이후의 모습이 진짜 나일까? 하지만 그렇게 나대는 내가 마냥 편치는 않아. 뒤에서 수근거리는 얘기들,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는 사랑받고 싶은 나를 위해 성격쯤 바꿀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내인생은 내내 편치 않았어. 내게 맞는 옷이 없어 너무 헐렁하거나 너무 작은 옷을 입은듯해. 그럼 또 사람들은 얘기해. 쟤 옷이 왜이렇게 커? 쟤 옷 터지겠다 ㅋㅋㅋ. 뭘 입어도 남들은 할 얘기가 넘치더라. 그런 얘기 하나하나에 마음을 다 썼어. 앞에서도 뒤에서도 울고, 되려 씩씩한 척 하기고 하고, 신경 안 쓰는척하면서 모임이 파하고 돌아오는 내내 곱씹고. 나는 왜 이렇게 별로지, 가 너무 나댔나, 저 사람은 집에 가면서 나에 대해 뭐라고 할까.


 그래서 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너무 맘 쓰지 않기로했어. 나댄다고 뭐라고 하면 심장이 쿵 내려 앉고 머리가 어질하지만, 못 들은 척 하려고 노력했어. 쳐져 있으니 분위기가 안 산다고, 재미없다고 하면 억지로 한 번 더 웃고 떠들긴 했지만, 내키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애쓰지는 않기로 했어. 내가 재밌는 곳에선 좀 더 나대고, 재미 없으면 그냥 같이 입 닫고 앉아 있고. 그래도 뒷말하는 사람은 여전했지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더라. 그걸 깨닫던 시기에 널 만났어. 여전히 억지로 예쁨 받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돌아서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달래던 시기에 널 만났어. 나대는 내 모습도, 뒤돌아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던 내 모습도 다 좋아해주던 너를 만났어. 내 흥에 맞춰주는 것만큼이나 내 울음을 달래는 것도 잘해주던 니가 좋았고, 1년, 2년 쌓여가는 시간만큼 더 많은 나를 조심스레 꺼낼 수 있었어. 그런 너와 함께하면서 난 좀 더 용기낼 수도 있었어. 조금씩 미움 받는 방법도 알게됐어. 그냥 내가 미울 수도, 싫을 수도 있구나. 그건 어쩔 수 없구나,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아갔어.너와 만나던 10년 동안, 너를 만나기전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져왔어. 어느날 브래지어라는 경계를 폴짝 뛰어 넘은게 아니라, 남의 시선이라는 높은 벽을 티스푼으로 조금씩 허물어왔어. 여전히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진 못해. 하얀 옷을 입을때는 브래지어를 하고, 얇은 옷을 입을땐 가디건을 걸치고, 두꺼운 옷을 입어도 긴 머리로 가려. 날 힘들게 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채로, 조금 더 자유로워지려고 또 작은 숟가락을 들고 단단한 벽을 긁어내고 있어. 니가 처음 만났던 나도, 지금의 나도, 남의 시선 보단  나를 지키는 게 먼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사람이야. 여전히 마찬가지로 두껍고 단단한 벽에 막막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달라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야. 내가 나아가는 모습이 너를 화나게 한다는 건 어떤걸까. 내가 조금 더 나를 지키는 노력들이 너를 돌아서게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너와 함께 있으며 행복에 겨웠던 시간들이 거짓인걸까, 오해인걸까? 그것도 이것도 다 진실인걸까. 너무 먼 미래를 약속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래도 나는 너랑 조금 더 먼 미래에도 사랑하며 살줄알았는데, 너의 사랑은 나의 지금에만, 아니 어제에만 유효한걸까. 난 널 지키기 위해 멈춰야할까, 날 지키기 위해 나아가야할까.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속도를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린 함께 미래로 갈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떡볶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