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손이 건조하고 손톱이 찢어져서 자주 피가 났다. 늘 책을 만지는 일을 하다 보니 손을 자주 씻고 핸드크림을 챙겨 바르라는 충고를 어김없이 듣는다. 하지만 서가에서 책을 정리하다가도 아이들이 오면 부리나케 뛰어가 대출·반납을 해 주고 “내가 손을 씻었나? 핸드크림은 발랐던가?” 가물가물한 일상이 반복된다. 피가 나는 손을 몰라서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휴대전화 지문 인식이 되지 않았다. 사서들의 단톡방에선 인감을 떼러 갔다가 지문 인식이 되지 않아 곤란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었다. 너도나도 자기만 그런 줄 알고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다들 그러냐며 놀라워했다. 우리도 우리가 노출된 직업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여기저기 탈이 나는 건 모두 그냥 개인의 특성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 편한 직업이라고 오해받는 직업이 도서관 사서 말고 또 있을까? 직업이 사서라고 하면 근무시간에 책도 많이 읽고 좋겠다는 반응이 가장 먼저 온다. 하지만 모르시는 말씀.
학교도서관 사서들이 가장 흔히 앓는 질병은 손목건초염과 손가락 관절염, 손가락 방아쇠 수지증후군 등이다. 한 학교당 평균 2만권을 상회하는 장서를 소장하고 있고, 1일 평균 적게는 100여권에서 많게는 500여권까지 대출과 반납이 이뤄진다. 매일 바코드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과 손가락에 무리가 갈 만도 하다. 자동화기계나 장비였다면 신체적 무리가 덜할 수도 있으련만, 심각하게 고장 난 경우가 아니라면 도무지 교체하지 않는 곳이 학교다. 책을 올려만 둬도 대출과 반납이 완료되는 공공도서관의 첨단시스템은 그림의 떡이다.
학교도서관 운영 규칙상 2년마다 1회는 반드시 장서점검을 진행해야 한다. 장서점검이란 대출반납시스템에 존재하는 소장자료 목록과 실제 도서관에 있는 자료가 일치하는지 일일이 점검하고, 가치를 상실한 자료의 폐기 여부를 결정하며, 이용자가 소장자료에 잘 접근할 수 있도록 장서를 재배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일종의 리모델링 공사라 할 수 있는데, 힘든 만큼 돈을 들여 장서점검을 외부 업체에 맡기는 학교도 최근 생겼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는 여전히 사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높은 서가의 책을 꺼내고 꽂는 일을 반복하면 어깨충돌증후군이 생긴다. 낮은 서가의 책을 꺼내고 꽂는 일을 반복해 얻는 무릎과 골반 통증은 다양한 병명으로 사서들을 괴롭힌다. 수많은 책이 뱉어 내는 책 먼지는 비염과 호흡기질환을 유발하고, 안구건조증은 이미 흔한 고질병이다. 찢기고 고장 난 책을 수선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무거운 책이 떨어져 발등을 찍고 발톱이 빠지거나 눈동자를 다친 일도 있었다. 부실한 서가가 한꺼번에 무너져 덮치는 바람에 어깨뼈 골절을 당하는 심각한 사고도 있었다.
도서관은 고즈넉하고 안전한 공간이 결코 아니다. 그저 자연상태의 공간이라도 100% 무해한 곳은 없으며, 더욱이 사람이 만들어 낸 공간은 언제 어떤 위험이 나타날지 모른다. 문제는 혹시 모를 우려라고 적당히 넘어가고, 사고가 났을 때 단지 개인 부주의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때 일어난다.
학교의 모든 공간이 교육의 장소다. 그만큼 안전해야 한다. 2018년 학교도서관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이제 전국 모든 학교도서관에 사서·사서교사 등 전문인력을 꼭 배치해야 한다. 또한 돌봄교실을 포함해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과 후 가장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서비스업이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대상에서 제외돼 사서는 안전보건교육도 받지 못하고, 법의 보호 대상도 아니다. 무엇보다 안전규정이 없어도 된다는 세간의 착각은 노동자의 건강뿐 아니라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은 반드시 ‘적용 확대’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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