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서.
겨우 3살 차이밖에 안나는 주제에 결혼 좀 했다고, 자식 좀 키워봤다고 아직 한참 청춘을 즐기고 있는 남동생에게 꾹 참아온 잔소리를 해버렸다.
‘지금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어.’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5년을 엄마로 살다 보니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버린 탓이다.
심심한 핑계라도 대보자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고 깨닫고 느낀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동생이 하루빨리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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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는 없지만 집안 어른들의 말로는
동생이 막 태어나고 탯줄도 떨어지기 전,
엄마가 동생을 낳자마자 집을 떠났다고 했다.
어미도 버리고 간 아이들이니 고아원에 보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흘려보내고 꿋꿋이 품은 할머니 덕분에 우리 남매는 가족들 품에서 자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당연하게 엄마-하고 부르는 게 사무치게 부럽던 어린 시절을 거쳐 그 자리의 부재는 어느새 나에게 알 수 없는 오기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여태까지 살아왔다.
‘ 잘 살아야 한다, 보란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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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말했다.
우리는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한다고.
그게 우리를 길러주신 할머니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대단하고 화려하고 멋지게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니야. 부끄럽지 않게 나 스스로한테 떳떳하게 살면 그게 제일 잘 사는 거야.
한 번쯤은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고 계획해봐.
생각으로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고.
최선을 다해서 있는 힘껏 살아야 해.
앞으로의 인생을 잘 가꾸면서 부끄럽지 않게 멋지게 살자 우리.’
네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마음속을 뒤져 두서없이 마구 늘어놓았다.
내 마음은 과연 그 아이에게 가 닿았을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로 급히 포장해보지만 왠지 잔소리 같아 혼자 조금 찔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하지 않을 말이고, 내가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기어코 나는 참아왔던 마음을 전하면서
결국 이렇게 동생에게 꼰대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