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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원 Sep 26. 2022

엄마의 시간에 OFF 버튼을 누르다.

따로 또 같이 살아가기.

결혼하고 6년 동안 2년 터울로 연달아 아이 셋을 낳고 임신과 출산 육아가 쉼 없이 이어지다 보니 나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너무 예쁜 내 아이들이지만 모두 내 손길이 닿아야 하니 나의 내면은 조금씩 소리 없이 지쳐갔다.


바깥에서 비치기로는 밝고 씩씩하게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였지만, 지친 마음을 겉으로 표출하지 못해 속으로는 흐리고 뭉그러진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에게 쉽게 짜증을 낼 때가 있었다.

드문드문 비교적 짧은 주기로 찾아왔다. 그리고 난 후에는 미안함이 몰려들고 스스로 마음이 괴로웠다.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나와 우리 가정을 위해서 어떤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결단이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 아이들이 이제 5살, 3살, 1살로 아직 모두 어려 손이 많이 가는 상황에서 나와 남편에게는 나름 큰 결단이었다.

처음 말을 꺼낸 것은 남편이었다.

그는 나에게 주기적으로 남편이 퇴근한 후에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들과 분리되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바깥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귀가한 남편에게 바쁜 저녁시간의 육아를 맡기는 것은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가장 결정적으로 나는 모든 걸 내가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혹시나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아이들과 늘 붙어있으니 사실은 떨어지는 것이 엄마인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오히려 내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괜찮다고 한사코 거절하다가 남편에게 못 이기는 척 등 떠밀려 나는 집 밖으로 홀로 외출을 감행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는 무거웠던 발걸음이 막상 현관을 나서고 보니 유모차도 없고 아기띠도 하지 않은 이 낯선 가벼움은 왠지 홀가분했다.

잠자고 있던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와아- 환호성 지르며 춤을 추는 기분이랄까.

혼자만의 시간을 뭘 하고 보낼지.. 다 하지도 못할 텐데 그림을 그릴 아이패드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한 아름 안고 집 앞 카페로 향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은 짧지만 내가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길고도 충분했다. 사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를, 이 시간.

대단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달콤한 시간.

 

처음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쉽다고 했나. 민망하지만 그 뒤로 나는 내심 그 시간을 기다렸다.

혼자 보내는 시간 동안 평소 집중해서 읽지 못했던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어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복잡한 심경들을 글로 쓰며 가지런히 풀어내어 보기도 했다.


종일 엄마였다가 엄마의 시간에 전원 버튼을 잠시 끄고,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했다.

‘잠깐이라도 이런 시간이 나한테는 필요했구나. ’

나는 평상시에 어떤 것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느라 미처 하지 못 했던 나와의 대화는 딱 그만큼으로도 충분했다.

나를 온전히 돌보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도 나누어 줄 사랑의 힘이 샘솟았다.

 

가정의 선순환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집안은 엉망이 되어있고, 아이들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잠자리에 들 채비도 하지 않고 뛰어놀고 있겠지’라고 예상했는데


나의 걱정과는 달리, 집에 들어서자 깔끔해진 거실과 아이들의 말끔한 얼굴이 나를 반겼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고 난 후에 아빠와 함께 놀잇감을 가지런히 잘 정돈해놓고, 뽀송하게 이미 목욕도 마친 후였다.


나의 육아는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쫓겨서 몸도 마음도 몹시 분주했다면,


남편의 육아는 조급하지 않고 느긋하면서도 유연했다. 덕분인지 아이들도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평온해 보였다.


그들은 나름대로 엄마가 자리를 비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었다.

 

나는 주 양육자이고 엄마니까 365일, 24시간을 내내 아이들 곁에 붙어서 아이들을 챙기고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혼자만의 막중한 책임감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또 비슷한 방법으로 집이라는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가끔은 따로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은 당연히 아이들이 쉽게 잠에 들지 않기 때문에 꽤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서

겨우 재우고 난 후에는 온몸이 시들시들하게 지칠 때도 있었는데 한 번씩은 엄마 없이 아빠랑 잠자리에 들도록 시도해 보았다.


무조건 엄마랑만 자려고 하던 아이들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아빠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아빠와 함께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남편에게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끝을 모를 육아에서 벗어나 혼자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몸도 마음도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잠이 막 쏟아지면 아이들이 다시 엄마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피곤한 아빠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먼저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들이 오히려 아빠를 재우고 방에서 나오는 날도

 

가끔, 아니 꽤 자주 있었지만 그것 나름대로 우리 가족끼리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되기도 했다.

 

가족이니까 반드시 모든 일을 함께하고, 바늘과 실처럼 같이 붙어 지내야 하는 줄 알았지만

오래오래 보다 건강하게 함께 하기 위해 가끔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울타리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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