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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 큰 우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로 알려진 빌 브라이슨. 초등학교 4-5학년 과학 교과서의 한 장면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지구의 4분의 1을 잘라낸 단면을 보고, 과학자들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을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차근히 읽어보았던 과학 교과서는 그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했다. 과학은 재미없는 것이라 여겼던 그는 세월이 많이 흐른 후,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에서 달빛이 비치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행성에 대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바보 같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이 책이 쓰였다. 


과학적 사실의 나열이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나열하는 사람이 빌 브라이슨이라면 재미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빌 브라이슨은 과학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 속에서 과학적 사실의 의미를 드러내 준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 사이 더디고 엄청나게 길고 완전 지루한 지구의 변천 과정과 우주의 복잡한 힘에 대한 설명은 뛰어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책을 정독하고 다음 주의 퀴즈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 사람의 독서로서, 일부는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의 독서로서, 무척이나 재미있고 한껏 흥미로웠다. 



생명에 대한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리처드 도킨스’적’ 사고가 관심을 끈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냥 그렇게 흘러왔다가 그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 그런 말을 들을 때, 내가 삶의 의미에 대해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거듭 생각한다. 나는, 우리 인간은, 내가 사는 지구는, 우리가 속한 태양계는 우주 속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나의 움직임과 결정, 나의 존재와 사라짐이 이 거대한 우주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우며 완벽에 가까운 집합체인 우주의 철저한 무의미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동의하기 어렵다.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어할 뿐이며, 그래서 존재할 뿐이라는 말에는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지만(353쪽),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DNA를 복제하는 기계에 불과하다(431쪽)는 주장에 적잖은 사람들이 불쾌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지은이는 한 발을 여기에 또 한 발을 저기에 둔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생명이 나타나게 된 사건과 조건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건과 조건들은 여전히 특별한 것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다른 이유를 찾게 될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70쪽)  



북마크를 제일 많이 붙여놓은 챕터는 ‘위대한 원자’. 148쪽에서부터 149쪽까지 이어지는 두 쪽은 ‘인간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한 가장 작은 세계의 답이다.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로 엄청난 수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그래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들 중의 상당수는 한때 셰익스피어의 몸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원자의 수가 수십억 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부처와 칭기즈 칸, 그리고 베토벤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기억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인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도 각각 수십억 개씩은 될 것이다(원자들이 완전히 재분배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 속의 인물이어야만 한다. 당신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몸 속에 있던 원자들은 아직 당신의 몸 속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148쪽)  



우리는 별과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우리는 별의 일부, 별의 먼지라는 표현은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우주 속 환하게 빛나는 저 별의 원자 뿐 아니라 이 세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일부였던 원자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모든 원자들은 재활용되고, 별을 이루었던 원자가 지금의 나를 이룬 것처럼, 나를 이루었던 원자의 일부는 나뭇잎으로 일부는 이슬방울로 또 일부는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우리는 모두 윤회하고 있는 셈(148쪽)이며, 우리 모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부를 이루었던 원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 다른 형태로.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이 책이랑 같이 읽기 좋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대단하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이다, 그런 독자평이 있던데, 동감이다. 시간은 변화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심지어 모양도 가지고 있다, 고 적혀 있다. 괜찮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고 한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수의 너무나도 작은 원자들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산다. 우주의 시작은 그 누구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되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빠르고 균일하게 팽창하고 있다.(145쪽) 특정한 한 개의 지점에서 우주가 시작되었고 원자의 탄생과 생명의 신비로 지금의 내가 있다. 나. 우주 속의 한 점, 원자의 결합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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