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목요일,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서 있었던 ‘올해의 과학도서 무료 강연’ 제5강 <김상욱의 양자 공부> 강연을 들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듣게 된 양자역학 이론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고 놀라운 신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강의 내용과 책의 내용을 보충해,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양자역학 이전의 고전역학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운동이라 여겼고, 속도가 변하는 것을 자연스럽지 못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운동법칙은 속도의 변화를 기술한다. 이를 가장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한 것이 ‘F=ma’이다. 미분으로 쓰여진 이 수식을 통해 우주의 법칙이 드러나고, 이로부터 위치를 추출하는 과정이 적분이다.
운동법칙 ‘F=ma’는 속도의 변화를 기술하는 식이고, 어느 주어진 순간에 초기 조건인 위치와 속도를 모두 알면 그 뒤에 오는 모든 시간에 대해서 ‘F=ma’에 따라 모든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3』, 33쪽)
이것이 바로 과학적 결정론이다. 고전역학이 말하는 바는 우주는 이미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으며, 일단 초기 조건이 다 주어지면 그 이후의 미래는 우리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양자역학은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원자는 10억 분의 1m 정도로 작아 눈으로 볼 수 없다. 원자의 중심에는 (+) 전하를 띠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 전하를 띠는 전자가 움직이고 있다. 원자 중에서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 원자와 전자의 크기와 거리를 계산하여 표현한 그림이다.
농구공이 수소 원자의 핵이라면, 전자는 그곳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돌고 있다.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어 수학적인 점에 가깝기 때문에 원자와 전자 사이는 텅 비어 있는데 전자기력 때문에 그 내부가 꽉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종류의 힘 중, 원자핵을 쪼갤 때나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힘과 중력을 제외하면, 전자기력은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어서 전자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를 가지고 하는 이 실험은 검은 벽 앞에, 아래위로 긴 두 개의 구멍에 전자를 던져 보는 것이다. 전자가 입자라면 하나의 구멍만 통과해 각각의 구멍을 통과한 전자들이 두 개의 줄로 나타날 것이다. 전자가 파동(예:물결파, 소리)이라면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해 두 개의 구멍 각각을 중심으로 다시 퍼져서 서로 간섭하여 복잡한 무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입자를 두 개의 구멍으로 보내면 두 개의 줄이 나오지만, 파동을 보내면 여러 개의 줄이 나온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여러분이 보고 있으면 두 줄이 나오고, 보지 않으면 여러 줄이 나옵니다. 마치 전자가 자기 자신이 관측을 당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정말 미칠 노릇이죠. 미칠 일이지만 이게 사실이니까, 이제는 이것을 설명해야 됩니다. 이것은 정말 모순처럼 보이지만 양자역학의 체계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관측이 결과를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64쪽)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측정이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위치나 운동량 같은 기본 물리량을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측정을 하면 대상의 상태에 불연속적인 변화, 즉 붕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거한 것이다. 미시적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에는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관측이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측을 당하는 대상과 관측을 하는 주체 두 가지로 우주를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관측하는지 누가 관측당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된다는 거죠. 여기서 코펜하겐 해석의 기본 입장은 이렇습니다. 관측을 하는 것은 큰 세상, 즉 우리와 같은 거시 세계의 물체입니다. 뉴턴 역학과 고전 역학을 따르는 세계죠. 양자 역학을 따르는 미시세계, 원자 크기의 작은 물체는 관측을 당하는 개체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관측은 대상에 영향을 주어 상태를 바꿉니다. 이게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코펜하겐 해석이에요. (53쪽)
관측은 대상을 변화시킨다. 누가 관측하는지, 누가 관측당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현상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으며, 이는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해 가능한 설명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현상이 존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뿐이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났다.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도체, 부도체, 반도체의 이해가 가능해졌고, 반도체의 발전으로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의 탄생이 가능했다. 양자역학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과학 영역뿐만 아니라 철학과 세계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말 인상 깊었던 구절은 여기.
물질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직접 보려면 가시광선 말고 엑스선이나 감마선으로 쬐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는 사실 거의 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자기력만 아니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물질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지 마세요. 물질은 텅 빙어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입니다. (41쪽)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 중 큰 원자들의 경우 농구공만 한 핵이 지구 중심에 있다고 하면, 제일 바깥에 있는 전자는 지구 표면 정도를 돌고 있다는 주장이다. 눈으로 보지 않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내 몸은 이렇게 꽉 차 있고, 단단하고, 현실적인데, 그 사이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가시광선이라는 전자기파가 내 몸의 원자 구조를 그냥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꽉 찬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 부분에서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견고한 존재라고 말하는 좌뇌의 판단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유동체 자각 상태가 되었고, 스스로를 끝없이 움직이는 유동적 세상에서 ‘내부에 액체가 차 있는 주머니’로 인식했다(59쪽)”.
고전 역학에 대한 설명에서 양자역학으로 주제가 바뀌면서 청중들이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나 보다. 김상욱 교수는 이게 좀 어렵죠? 다정한 말을 건네며, 학교 다닐 때 다들 물리 싫어하셨잖아요?라고 친근하게 물었다. 나는 솔직히 그렇다고 답했는데, 그 순간, 앞에서 둘째 줄 가운데 앉아 있던 나를 김상욱 교수가 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김상욱 교수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물리 싫어했다고 대답하시면 어떡해요? 하고 물었는데,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학교 다닐 때 물리 싫어한다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까지 끄덕인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았다. 김상욱 교수도 웃고 나도 웃고 남편도 웃고 다른 사람들도 다 웃었는데, 내 옆 옆 자리에 앉아있던 아롱이가 웃었는지 보지 못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물리를 싫어했지만, 그날 강연을 듣고 나서 책도 찾아보고, 이렇게 글로도 정리하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요만큼은 이해하게 됐다고, 김상욱 교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물리를 조금, 아주 쪼금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