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99, 휴먼 브랜드의 비밀
삼국지 게임을 할 때 유비를 적으로 두면 그렇게 곤란할 수가 없습니다. 유비 곁에는 S급, A급 장수들이 바글바글 모여있거든요. 게임 속 유비의 능력치는 늘 ‘매력’이 만점입니다. 마치 자석처럼 사람과 인재를 끌어모으는 힘이 있는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전국의 영웅호걸들이 이 인물에게로 모여듭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실존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대한민국 유튜브 씬에 그런 유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수, 배우,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학자, 감독, 스트리머, 심지어 대기업 임원까지.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성공한 사람들이 먼저 찾아가고, 한 번 나오면 끝이 아니라 또 불러달라고 자발적 역 삼고초려 러브콜을 보내는 마성의 유튜버, 바로 ‘침착맨’입니다.
“뭐 어차피 서로 빨대 꽂을라고 하는 거 아님?”
뭐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침착맨의 영상을 보다 보면 확실히 좀 다르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게스트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다’는 느낌을 넘어 ‘침착맨을 보려고 나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특별한 무대도 아니고, 전문적인 MC도 아니지만, 침착맨과의 대화에선 게스트들은 금세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고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분명 각자의 영역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대접받는 사람들이 ‘침착맨’과 이상형 월드컵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게임을 하면서 놀 때는 금세 마음의 빗장을 모두 해제한 채 동심으로 돌아가는 마법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한 번 출연한 게스트들은 점차 적으로 레귤로 멤버가 되어 자주 나오게 되고 ‘침착맨 유니버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세계관이 확장됩니다. 시작은 한 명의 스트리머였지만, 지금의 침착맨 채널은 거의 하나의 커뮤니티 생태계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유비처럼 사람을 끌어모으는 매력 99의 그 털보 아저씨, 비밀은 무엇일까?”
오늘 디그에이는 그 질문을 ‘브랜딩’의 관점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유튜버를 넘어, 브랜드로서의 침착맨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 수염 난 아저씨가 단순히 좀 웃긴 사람 정도가 아니라, 한국 유튜브 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휴먼 미디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호들갑은 빼고, 팬심도 빼고,
브랜드로서의 침착맨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
침착맨을 얘기하기 전 ‘이말년’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먼저 이말년부터 침착맨까지의 역사를 짧게 훑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그는 만화가 시절부터 이미 ‘보법이 달랐습니다.’
‘이말년’이라는 이름으로 초창기 웹툰계를 휩쓸던 시절, 그는 그야말로 폭주 기관차 같은 존재였습니다. 매주 이말년의 만화가 올라오는 날이면 커뮤니티는 그의 만화로 도배될 정도였습니다. 유머의 타이밍과 수위, 치고 빠지는 각도를 기가 막히게 아는 감각. 이런 건 학습으로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웃길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웃겨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겁니다.
또한 그는 늘 무언가를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웹툰 연재 시절부터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 여러 채널을 활용해 소통해 왔고, 세상과 이야기 나누는 방식 자체에 익숙했던 사람이었죠.
그렇게 이말년으로 살 던 어느 날, 그는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게임하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스스톤을 위주로 플레이했고, 히오스에 애정을 쏟으면서 ‘수장님’이라는 별명도 얻었죠. 이후에는 MBC 예능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서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2018 이말년 시리즈를 기점으로 그는 갈수록 방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기 시작합니다. 혹독한 웹툰 주간연재보다 훨씬 자신의 적성에 맞고 편한 길을 찾은 거죠. 그리고 세상은 조금씩 이말년이라는 이름보다 ‘침착맨’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웹툰에서 이미 탑을 찍은 침착맨은 ‘B급 감성’의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의 김준구 대표도 초창기 웹툰 대중화에 구 이말년 현 침착맨의 공이 적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감성은 공부하거나 노력한다고 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냥 그게 본인이어야만 가능합니다. 게임, 만화, 서브컬처, 커뮤니티 문화에 이르기까지… 침착맨은 ‘인터넷 세상’에서 오래도록 놀았고, 살아왔고, 그래서 누구보다 그 문법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언어로 소통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원피스, 킹덤, 진격의 거인 같은 만화를 주제로 한 컨텐츠를 거의 무한의 샘물처럼 쭉쭉 만들어내는 모습은 ‘진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침착맨을 오래 봐온 시청자라면 침착맨이 각종 만화, 영화, 게임, 서브컬처, 상식을 포함한 잡식에 관해서 굉장에 굉장히 넓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40여 년간 축적된 걸어 다니는 나무위키인 거지요.
그리고 이 진정성은 ‘무심한 듯 솔직한 화법’이라는 매력으로 확장됩니다. 이미 이말년 시절부터 셀럽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가식 따위 없었습니다. 침착맨은 그냥 친구랑 영상통화하는 듯한 톤으로 뭐든 툭툭 내뱉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선 이런 태도가 오히려 더 깊은 신뢰와 호감을 자극했죠. 침착맨은 ‘유튜브에 매일 들어가서 틀어놔도 질리지 않는 사람’ 소위 ‘밥 친구’로 가장 이상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콘텐츠는 말하자면, “연기 안 하는 배우가 주연인 일상극”입니다.
침착맨은 평소에 즐기던 게임, 만화, 커뮤니티 문화 속에서 자라났고, 그 문화에 진심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억지로 ‘그런 척’ 할 필요가 없었죠. 덕분에 콘텐츠 속 침착맨은 무대에서 연기하는 인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무심한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천천히 파고듭니다. “왜 이렇게 재밌지?”라기보다, “그냥 계속 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만드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x알 친구랑 통화하는 느낌” 같은 방송. 이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기질이자 타고난 성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침착맨의 댓글 중에는 이런 표현이 많습니다.
“아오 킹받앜ㅋㅋ”
마치 기분이 나쁜 거 같기도 하고 은근히 좋은 것 같기도 한 이 반응,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사실 침착맨이 다루는 주제나 형식은 아주 새롭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게임도 하고, 토크도 하고, 이슈도 가끔 다룹니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걸 침착맨이 하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건 그냥 ‘말을 잘한다’ 수준이 아닙니다. 침착맨은 자기가 쓰는 언어, 말투, 그림, 콘텐츠 형식 전반에 걸쳐 본인만의 ‘문법’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만화가 이말년 시절부터 그의 그림체는 완전히 독보적이었습니다. 침착맨은 가끔 자조적으로 본인을 그림 못 그리는 웹툰작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사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침착맨의 필력은 아주 뛰어난 편입니다. 사람의 특징을 딱 한 줄로 잡아내는 요약력, 정돈되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대사, 어딘가 투박하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 디자인. 이건 그냥 재능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언어의 감각입니다.
그리고 이 감각은 유튜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직접 그리는 채널 배너, 프로필 이미지, 영상에 쓰이는 일러스트 요소 등, 어느 순간 침착맨 스타일은 ‘화법’이 되었고, 그 말투와 감각은 곧 브랜드가 됐습니다.
또한 대부분 콘셉트를 명확히 잡고 장르를 고정시키는 타 유튜버/스트리머들과 달리 침착맨은 그 반대로 채널을 운영했습니다. 게임 방송인데 토크쇼 같고, 예능인데 뉴스 같고, 인터뷰인데 잡담이 하고. 이 모든 걸 아주 자연스럽게 섞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침착맨의 고유함이자, 그가 개척한 독보적인 영역이 됐습니다.
침착맨이 만드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빠르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씩 보면 오히려 속도가 느리고, 전개가 루즈하고, 심지어 맥락 없는 대화로 흘러가기도 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편안함’이 됩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2010년대 후반부터 유튜브는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접어듭니다. 자극적인 제목, 빠른 편집, 큰 리액션. 영상 하나에 정보도 재미도 강도 높게 눌러 담는 게 정석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흐름과 상관없이 터덜터덜 슬리퍼 신고 자기 마음대로 걷다가 뛰다가 하는 사람이 바로 침착맨입니다.
실제로 이런 침착맨의 느린 호흡을 좋아하는 많은 시청자들이 있어, 본 채널 외에 서브 채널인 ‘침착맨 플러스’와 ‘원본 박물관’ 채널도 각각 81만 명, 44만 명의 구독자를 기록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느리고 편한 영상의 호흡은 MZ세대에게는 ‘밥 먹을 때 보기 좋은’, ‘잠들기 전 틀어두기 좋은’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피로도가 심해진 시대에, 느슨하게 흘러가는 침착맨의 방송이 하나의 피난처가 된 것이죠.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로, 침착맨은 시청자와의 거리 조절을 기가 막히게 합니다. 편하게 ‘개청자’라고 부르면서도 선을 넘는 발언엔 정색하며 끊고, 무례한 채팅엔 단호하게 반응합니다. 이 ‘밀당’은 인터넷 방송계에서도 드물 정도로 균형 잡혀 있어 가히 독보적 밀당 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침착맨 콘텐츠는 시대가 원하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낸 콘텐츠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피로도를 감지하고, 그 피로를 흘려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웃기는 방식. 그게 침착맨의 시의성인 것입니다.
뻔한 소리일 수 있지만, 침착맨의 콘텐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그는 이미 이말년 시절부터 주간연재라는 피 말리는 창작 루틴을 견뎌본 사람입니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대중의 반응을 체화하면서 콘텐츠 생산자의 본능을 체득한 거죠.
그러한 내공이 있었기에 침착맨이라는 유튜버가, 한 명의 크리에이터를 넘어 하나의 ‘미디어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메인 채널 외에도 원본박물관, 침착맨 플러스, 팬 커뮤니티 ‘침하하’까지. 콘텐츠 형식도 생방송, 숏폼, 편집 영상, 라이브 토크 등 장르를 넘나듭니다. 플랫폼도 트위치, 유튜브, 심지어 OTT와 레거시 미디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죠.
중요한 건, 이 모든 채널과 콘텐츠들이 각기 다른 결을 가지면서도 '침착맨’이라는 중심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팬들은 단순히 영상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침착맨이 만드는 세계관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댓글로 농담을 주고받고, 팬 커뮤니티에서 밈을 만들고, 팬 아트나 굿즈로 2차 창작을 이어가는 구조는 더 이상 팬덤이 아니라 소비자-브랜드 간의 유기적 관계에 가깝습니다.
케빈 레인 켈러(Kevin Lane Keller)의 브랜드 자산 피라미드(Brand Equity Model)의 최상단에 있는 '브랜드 관계(Brand Resonance)'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침착맨의 팬들은 침착맨과 일종의 정서적 연대가 생긴 것이죠.
꾸준함은 숫자보다 깊이에서 드러납니다. 10년 넘게 방송을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진정성, 콘텐츠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성, 그리고 팬들과 관계 맺는 방식의 일관성. 침착맨은 ‘꾸준히 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브랜딩은 결국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완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침착맨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복싱을 처음 배우는 입문자들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건 의외로 ‘세게 치는 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건 ‘힘을 빼는 것’입니다. 힘을 빼야 반응이 빨라지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진짜 필요한 순간에만 집중된 한 방을 날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착맨은 바로 그 ‘힘 뺀 복싱’을 아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오래, 누구보다 많이 콘텐츠를 만들어왔지만, 그는 지금도 전혀 힘주지 않은 듯 툭툭 잽을 날리는 관록의 복서처럼 보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오히려 그 무심한 태도가 ‘브랜드로서의 무게’를 만들어냈습니다.
가볍게 웃기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내공.
그게 바로 침착맨이라는 브랜드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요약하겠습니다.
진정성 –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진짜는 통한다.
고유함 – 보는 순간 “아, 침착맨이다” 싶은 고유한 아이덴티티.
시의성 – 시대에 맞는 ‘여유’와 ‘간극’을 알고 노는 태도.
꾸준함 –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국밥 같은 세계관.
오늘 저녁은 침착맨의 진격의거인 설명회를 보며 맥주 한 캔 따야겠네요.
디그에이는 다음에도 우리 주변에 있는 익숙한 브랜드를 브랜딩이라는 관점으로 깊게 파고들어 흥미롭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감사합니다.
문의 :
brandminer.a@gmail.com
디그에이 유튜브에서 흥미롭고 지식도 쌓이는 영상을 만나보세요.
https://www.youtube.com/@diggi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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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
https://chimhaha.net/stream_fan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