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게 제일 귀엽다

라부부 인형과 브랜드의 마법

by AMALE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요상한 인형이 있습니다. 처음 보면 못생겼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묘하게 귀여운 구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형,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유행템이 되었습니다.


이게 왜 유행인 건데..?


스크린샷 2025-08-04 오후 6.55.59.png 자료 - 블랙핑크 리사


실제로 정가 12만 8천 원짜리 한정판 라부부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159만 원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1,240%의 프리미엄이 붙은 셈인데, 이는 프라다 가방보다 비싼 플라스틱 인형이 탄생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블랙핑크 리사가 가방에 라부부 키링을 달고 나온 순간 동남아시아 전역이 들썩였고, 데이비드 베컴과 리한나까지 라부부를 들고 다니며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라무문가, 마마문가, 부부젤란가... 정확한 이름조차 헷갈리는 이 인형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딱 봐도 원가 5천 원도 안 할 것 같은데...”, “애기들 장난감이 왜 이리 비싸?”, “또 뭔 억지 유행 시작됐나 보다.”와 같은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가격 대비 실물의 크기나 마감 퀄리티만 놓고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입니다.


스크린샷 2025-08-04 오후 4.42.58.png 수집용 장난감 시장의 성장 전망


하지만 이걸 단순히 ‘애들 장난감’이라고 보기엔, 오고 가는 돈의 규모가 심상치 않습니다. 시장 조사 기관 Market Decipher에 따르면, 전 세계 캐릭터 토이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40억 달러(한화 약 18조 원)에 달하며, 매년 10% 이상 성장해 2034년에는 약 38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에 이를 전망입니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거대한 산업입니다.


그렇다면 라부부는 과연 잠깐 스쳐 지나갈 억지 유행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존재일까요? 그리고 왜 사람들은 ‘못생겼지만 귀여운 것’에 더 끌리는 걸까요?

지금부터 아트토이와 캐릭터에 숨은 브랜드의 비밀을 수박 겉핥기식 유행 따라잡기가 아닌, 브랜딩 관점에서 차근차근 디깅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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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요망한 인형의 정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라부부(Labubu)로, 홍콩의 아티스트 카싱렁 Kasing Lung이 2015년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캐릭터입니다. 원래는 "The Monsters"라는 시리즈의 사이드 캐릭터였는데, 설정상 "집고양이 크기의 장난꾸러기 엘프, 뾰족한 귀와 톱니바퀴 같은 이빨을 가진 선량한 작은 괴물"입니다.


그런데 이 괴상한 캐릭터가 어떻게 전 세계를 휩쓸게 된 걸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교묘한 브랜딩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장난감 회사가 어른들의 지갑을 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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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중국의 장난감 회사 팝마트(Pop Mart)는 아티스트 카싱렁과 파트너십을 맺고 라부부를 블라인드 박스 방식으로 대중화시켰습니다. 어떤 제품이 나올지 모르는 이 ‘랜덤성’은 소비자의 호기심과 소유욕을 동시에 자극했고, 이 전략은 생각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만들어냈습니다.


팝마트는 라부부를 단순한 ‘인형’이 아닌, ‘아트워크’이자 ‘콜렉터블 오브제’로 포지셔닝했습니다.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유명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를 진행했으며, 각 피규어에 스토리와 세계관을 부여해 마치 KAWS의 작품처럼 ‘소장 가치 있는 예술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간 것이죠.


셀럽 마케팅, 그런데 서사는 어디에?


2024년 4월, 블랙핑크 리사가 라부부 키링을 가방에 달고 등장한 순간은 글로벌 인기를 체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라부부는 단숨에 “힙스터들의 필수템”이 되었고, 이어 리한나와 데이비드 베컴까지 가세하며 “셀럽들이 인증한 아이템”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심지어 라부부를 둘러싼 ‘악마설’ 논란조차 브랜드 파워로 작용했습니다. “뾰족한 귀와 날카로운 이빨이 악마를 닮았다”,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우려는 오히려 “금기를 깨는 힙한 아이템”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했죠.


하지만 이렇게 ‘유명해서 유명한 것’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힘든 브랜드에겐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기는 식기 마련이고, 특히나 빠르게 타오른 인기는 더 빨리 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타이밍이 라부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단순히 외형에 끌리는 단계를 넘어, 캐릭터의 세계관과 서사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느냐가, 이 브랜드의 수명을 결정지을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원조 맛집은 따로 있다


그런데 이 못생기고 귀여운 인형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닙니다. 이 분야에도 쟁쟁한 선배들이 존재하거든요. 미국에는 ‘쿠키 몬스터’ 같은 지긋한 선배가 있고, 일본에는 ‘한교동’, 한국엔 ‘잔망루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북유럽 요정(혹은 괴물) 계열의 직속 선배로 따지자면, 수집용 인형의 ‘원조 맛집’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트롤입니다. 시간은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IMG_2245.JPG 자료 : 토마스 댐과 트롤 인형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 살던 제빵사 토마스 댐(Thomas Dam)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살 돈이 없자 직접 나무를 깎아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지역 밀가루 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 그 배경이었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인형은 기존의 인형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동그란 눈, 넓적한 코, 그리고 무엇보다 삐죽삐죽 솟은 형광색 머리카락까지. 전형적인 ‘예쁜 인형’과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딸은 이 못생긴 인형을 무척 좋아했고, 이웃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샷 2025-08-06 오전 11.25.35.png 미국에서 판매될 당시의 토마스 댐의 트롤 인형 광고


1960년대 초, 트롤 인형은 미국으로 건너가며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둡니다. 하루에 38,000개씩 팔리며, 2초에 하나꼴로 판매될 정도였고, 바비 인형과 경쟁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는 “트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이 퍼지며, 트롤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행운의 부적’으로 격상됩니다.


이후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무분별한 라이선스 남발과 품질 관리 실패로 브랜드 가치가 점차 퇴색하며 영광도 시들어졌습니다. 그러다 2016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영화 ‘트롤’이 개봉하면서 다시 한번 부활의 기회를 맞게 됩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트롤들은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었고, 관련 상품들도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샷 2025-08-06 오전 11.27.38.png 드림웍스의 영화 '트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트롤의 성공 비결이 ‘예쁘지 않음’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형은 예쁘고 완벽한 외모를 갖춰야 당연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트롤은 그 정반대였습니다. 못생기고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살짝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던 것이죠.


라부부가 걷고 있는 길을 이미 60년 전 경험했던 선배가 트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트롤은 여전히 살아있는 캐릭터 IP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트롤이 60년 넘게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대체 왜 우리는 ‘못생긴 귀여움’에 그렇게 쉽게 끌리는 걸까요?




‘못생긴 귀여움’이 우리 뇌를 사로잡는 이유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무장해제하려면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까요? 값비싼 선물로 환심을 사기? 맛있는 음식으로 유혹하기? 혹은 아름다운 미소..?


물론 모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장해제 치트키는 바로... ‘귀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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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귀여움에 정말 약합니다. 무표정으로 길을 걷던 사람도, 강아지가 뚱실거리며 지나가면 “아구 귀여워~” 하고 하이톤 목소리를 내며 웃게 되고, 아기의 동그란 얼굴을 보면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반응이라기 보단, 우리의 뇌와 본능, 진화의 흔적 속에 깊이 각인된 자동 반응입니다. 귀여운 것을 볼 때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기분 좋은 감정을 유발하고, 이는 곧 애정과 호의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반응은 ‘유아도해(Baby schema)’라는 개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포유류는 대부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타인의 보호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진화적으로 귀여움은 ‘보호받고 싶은 신호’로 발달해 왔고, 크고 동그란 눈, 통통한 볼, 짧은 팔다리, 작은 키 같은 요소들은 모두 이 전략의 일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반응이 같은 종인 인간 아기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강아지, 고양이, 판다, 심지어 아기 하마처럼 완전히 다른 종의 어린 생명체에게도 동일한 감정을 느낍니다. 귀여움은 종을 초월하는 본능적 커뮤니케이션인 셈이죠.


그리고 이 감정은 비단 ‘예쁜 것’에서만 비롯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어설프고 이상한 디테일이 있는 존재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더 깊은 애착을 형성하게 됩니다. 라부부의 삐죽삐죽한 이빨이나 트롤의 뾰족한 머리처럼요. 완벽하게 예쁘지 않기에 오히려 개성이 되고, 그래서 더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죠.


결국 ‘못생긴 귀여움’은 일종의 결핍을 무기로 삼는 전략입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해서 더 매력적인 것. 그리고 이 결핍은 우리 안에 잠재된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며, 캐릭터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없어서 못 파는 것’ 그것이 전략


물론, 단순히 귀엽기만 해서 이런 인형들이 팔리는 건 아닙니다. 이 인형들을 구매하는 성인들 중 실제로 인형놀이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선반 위에 전시하거나 유리장 안에 소중히 보관하며 감상하죠. 즉, 장난감이라기보다는 ‘소장 가치 있는 오브제’로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인 수집가들 소위 키덜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희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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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제품은 순식간에 품절되고, 리셀 시장에서는 웃돈이 붙어 거래됩니다. 수집은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그 취향이 자산이 되는 시대가 열린 셈이죠. 이러한 구조 안에서 라부부 같은 아트토이는 ‘희소성 기반 브랜드’로 진화했습니다.


이런 브랜드들은 셀럽의 인증과 미디어 노출, 팬덤의 자발적인 콘텐츠 생산을 통해 입소문을 탑니다. 희소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팔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가 명품 브랜드의 전략과도 닮아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라는 대중적인 감성을 기반으로 더 넓은 팬덤을 형성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아트토이 소비의 본질에는 향수와 감정적 연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추억, 혹은 그 시절 느꼈던 순수한 감정이 ‘못생긴 인형’이라는 형식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단지 인형 하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 한 조각을 함께 구매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의 연결 고리는 결국 ‘브랜드’를 완성합니다. 이 작은 인형이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의 가치를 지닌 브랜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본다.”


IMG_6181.HEIC 필자 소장품


미국의 작가 아니아스 닌이 남긴 이 말처럼, 어쩌면 인형이 귀여운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 작고 못생긴 플라스틱 인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십만 원, 수백만 원, 심지어 수억 원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제 웹툰과 캐릭터 시장이 무르익어가는 한국에서도 ‘K-라부부’나 ‘K-트롤’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기대해 봅니다. 우리에게는 캐릭터와 아트토이에 진심인 작가들이 있고, 콘텐츠를 브랜드로 키워내는 감각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다음 K-콘텐츠가 ‘K-인형’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자, 그럼 과연 이 털북숭이 괴물 인형은 앞으로 얼마나 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유행을 넘어 아이콘이 될 수 있을지, 저 또한 한 사람의 어른아이 ‘키덜트’이자, 트롤 인형 수집가로서 흥미롭게 지켜보겠습니다.


디그에이는 다음에도 흥미로운 주제를 디깅 하여, 한 발자국 더 깊은 시선으로 분석해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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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Troll_doll\

https://www.prnewswire.com/news-releases/toy-collectibles-market-estimated-at-13-9-billion-in-2024-and-expected-to-reach-38-2-billion-by-2034--cagr-10-1-market-decipher-302108453.html?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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