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진 Feb 26. 2021

‘손’의 족적

Life makes shapes

다섯 시 기상 11일째

백수가 된 지 88일째


우연히 동참하게 된 am 5:00 기상하기가 미라클 모닝이라 불린다는 것을 알았고 미취학 아동 이후 처음 가지는 나의 온전한 휴식은 우아한 백조 같다고들 한다.


일찍 일어나는 백조는 덕분에 거의 매일 낮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꿀 같은 낮잠은 쉼표를 찍고 지내는 요즘의 나의 일상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깨어날 때의 기분은 곧 다시 시작될 나의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봄볕이 잠시 찾아온 듯한 시간에 깨어난 나의 손에 빛이 내렸다. 적나라하게 보이는 내 손 등을 빤히 쳐다보았다.


꾸미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내가 미련 없이 가만히 둔 것이 손이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두던 것이기도 하지만 직업의 자부심을 핑계로 둔 것이기도 하다.


우아한 백조가 되어버린 이때 기회다 하며 그동안의 한을 풀어볼 만도 하건만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런 내 망부석 같은 마음이 내 일에 대한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잘 해내던 엄마의 손은 가녀리지 않았지만 길고 반듯했고 자신의 손을 닮은 나에게는 여자의 손재주는 고생길이라며 누차 어디 가서 사과도 깎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뇌는 주어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나는 더욱 분명하게 내 손이 남들보다 재주가 좋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과를 이쁘게 잘 깎는 대신 사람을 편하게하는 이로운 손이 되었다.


사람의 성격은 몸에 분명한 자신의 족적을 남긴다.

내 일의 누적으로 체득한 진실이며 그동안 배워온 지식의 통합으로서 나는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대는 내가 형상을 믿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모든 좋은 것은 형상이 있다고 믿는다. 이 우주에서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길이 바로 형상의 있다. 누군가 자신의 생명이 부여한 형상과 형태를 알려주면 나는 그가 자기 삶의 주인인지 피해자인지 알려 줄 수 있다.” -게일 고드윈(Gail Godwin), [유리 인간]


나의 손처럼 성격도 엄마를 닮았다.


꾸미지 않은 나의 민둥한 손은 필요 이상으로

솔직해야 한다고 믿는 나의 고집스러움도 닮았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을 8시간으로 생각해 남은 16시간을 100세 시대에 걸맞게 나누어 생각해보면 나는 33살이니 인생의 1/3 지점에서 낮잠을 잔 것이고 곧 깨어날 것이다.


앞으로 남은 2/3의 삶이 나의 손을 만들어 나갈 것임을 안다. 고집스러움은 좀 내려두고 이로운 손으로 재주껏 살아 고생길 대신 꽃길을 걸어 엄마의 당부를 지켜주길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같은 힘듦이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