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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진 Apr 05. 2021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

테라피스트가 된 이유

테러리스트가 되지 말고,
테라피스트가 되어야 한다
공격과 치유는 공명 현상 이다


여기에서 공명 현상이란 사적적 의미로 찾아보면, 맞울림 남의 생각이나 말에 동감(同感)하여 자기(自己)도 그와 같이 따르려는 생각을 일으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삶에 대한 인사이트를 그저 잔잔한 물 위에 툭 하고 물감을 떨어트리는것 같이 느껴지는 류시화 작가의 글.

이 글의 주어가 되는 입장의 사람으로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주위에 지인들은 어디에서든 나를 테라피스트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은 단 한번도 자연스러운 적이 없었다. 테라피스트의 품새와 내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테라피스트라면 반인반수와 같이 반은 종교인같은 모습에 반은 평범이라도 한 사람같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테라피스트가 아니라 종교인을 떠올린 것이 아닐까싶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밥을 허겁지겁 먹거나, 빨리 걷는것,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는것, 실패에 연연 하는것, 가족에게 따뜻하지 못하는 것, 친구들의 생일을 제 때 잘 챙기지 못하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는것, 누군가를 용서 하지 못하는것.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


위 모든것이 내가 테라피스트가 될 수 없는 이유들이었는데 이제와 스스로 규격화 해놓은 직업의 모습에 대한 관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테라피스트로 부족한 점보다 테라피스트여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던것은 어쩌면 그 일이 매우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착각이 아닌 단순히 내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직업이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라도 테라피스트다. 타인에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사람이 그에 속한다.


 사람의 행복해져  주위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이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것이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야 말로 진정 이 직업의 정의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몸의 한계를 벗어나 누군가의 마음을 테라피하는것에 집중하며 배움과 기획에 애를 쏟고 있다. 마치 이날을 위해 지금까지 상처를 아물며 살아왔구나 생각할 정도이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테라피스트가 될 수 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것, 스스로를 용서하는것, 스스로를 아는것부터가 그 길의 시작이다. 이 세상 모두가 테라피스트가 되는 상상을하며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것에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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