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는 자라서 직관이 된다.
B: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A: 아니요, 괜찮아요
C: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A: 아니요, 괜찮아요
D: 뭐 되고 싶은 거 있어?
A:............
무엇이든 괜찮았던 아이가 무엇이든 돼도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아서 다행일만큼
괜찮아요가 입에 붙었던 어린 시절.
겸손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남녀의 자식으로
나고 자랐지만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는 나는 주관이 뚜렷하다는 이유로
대가 세다는 여자가 되었다.
왜 그렇게 괜찮은 것이 많았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어설프게 착해서라는 답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선이지만
누구든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렇게들 사는 거야 하고 말하는 부모세대는
세찬 인생의 변화를 묵묵히 견딜 뿐
앞으로 치고 나갈만한 여력은 없었기에
자식의 정신적, 심리적 양육이 필요함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TV 프로그램에서
한국인과 결혼을 앞둔 ‘빌푸’라고 하는
출연자의 친구들은 그의 결혼을 축하하며
<눈치>라는 책을 선물한다.
‘눈치’가 만국 공통 능력이 아님을
나는 이 날 알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필수 능력 요소로 이 책의 부 제목은
<한국인의 비밀 무기>이다.
지방에서 태어나 맏이로, 딸로 키워진
나의 비밀 무기는 거의 늘 전장에 나갈
준비를 끝낸, 조준이 맞춰진 초특급 병기 수준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고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파악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먼저 이해하기에 바빴다.
눈치가 병기가 되기 한참 전의 기억으로
10년 전쯤 한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단체 활동을 위한 1박 2일의 일정이었는데
단체생활에서 눈치 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병기 능력치를 파악하는 일로
그날도 어김없이 최상 우위를 자부했다.
그중 나와 나이가 같으나 반듯한 표준말을 쓰며
강남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웃픈 실수를 잘해
귀여움을 받는 친구였고 나에 비하면
한참 눈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일정 중에 복장을 바꿔야 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단체 활동이다 보니 혼잡했고
딱히 이렇다 하게 정해둔 환복의 장소가 없어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순서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 친구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남자 어른이 있는 와중에
중고등 시절에나 했을법한 치마를 입고
바지를 갈아입기를 선보였다.
당시 나는 ‘너는 오늘도 참 눈치가 없구나’ 하면서
습관처럼 주위의 눈치를 보았는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여자 어른이 나를 보며 말했다. ‘
‘쟤는 눈치를 안 보고 커서 구김살이 없어’
그 날 이후로 나에게 생존비결이자 우위였던
‘눈치’는 ‘구김살’ 이라는 이름으로
닳을 때로 헤어지고 구겨진 옷을 입은
초라한 그림자가 되었다.
왜 나는 이렇게 눈치가 빠를까?
무엇이 나를 눈치 보게 했나?
무엇이 나의 눈치를 이렇게
단단해질 때까지 후려쳤을까?
구김살이 없어 보여야지 생각을 하면서
자라고 자라 무기를 꽁꽁 숨기고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무엇이든 끝까지 가면 또 다른 세계관과
만난다는 것을 배우고 몸소 체득하여
사회인 만렙을 찍던 어느 날.
유레카!!!
‘눈치’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또는 어떤 주어진 상황을 때에 맞게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 혹은 그에 대한 눈빛.
‘직관’
사물이나 사태를 순간적으로 지각하는 것.
두 가지의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눈치’는 더 세밀함을 갖춘 개념임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숨겨놓았던 비밀 병기를 꺼내 들었고
무엇이 나를 ‘눈치’ 보게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나의 무기임이 틀림이 없고
세상으로 하여금 나를 지킬 만큼 강력하고 충분하며
앞으로의 삶에서도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직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삶의 자세를 주었다.
나의 구김살은 다림질을 하듯 빳빳해졌고
구김살이 많던 ‘눈치’라는 미운 오리새끼는
이렇게 잘 자라서 ‘백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