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뇌종양에 걸렸던 걸까? J에게 보낸 메일

치료중의 이야기 #9

by 이대


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 118-5 당진소방서
의무소방 이대훈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씁니다.

- 소방서 배치 후 개인 홈페이지에 남겼던 글





제목 : 나의 든든한 바람막이 J에게


보낸사람 : 이대훈 <eedae@naver.com>

20XX년 11월 23일 오후 11:25


J야!

따뜻하고 반가운 메일 고마워.

글이 아무래도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마지막이 될 문장을 맨 위로 끌어올려 제일 먼저 쓰도록 할게.


난 잘 지낼거야 그러니 걱정 마 :)


1.

그간 나는

대체 어떻게 지냈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

그러고 보면 잠깐 삶의 흐름을, 삶의 리듬을 잃었던 것 같아. 두어 달 정도.

그 속에서 난 꽤나 힘들어 했어. 여전히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 속에서, 쉽게 아파 오는 머리 속에서, 쉽사리 읽히지 않는 문장들 속에서, 벅차기만 한 하루 속에서, 도무지 제대로 살아내어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마음을 좀 편하게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난 원래 그런 걸 잘 못 하니까 그렇게 힘들면 힘들수록 나를 붙잡고 또 붙잡으려 발버둥을 쳤어. 어떻게든 원래의 흐름(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만 한 말이지만)으로 나를 되돌리려고, 예전에 살아 내었던 제대로 된 삶─이라고 생각했던 삶─속으로 나를 다시 되돌리려고 말이야.

나는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어. 바보같이 스스로 세운 틀 안에 나 자신을 집어넣으려 했어. 그건 억지고 집착이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는 억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집착.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려다 보니 어느 순간, 어딘가가 펑- 하고 터져 버리더라.

그러고 나서는 또 얼마간을 어느 정도 ‘포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지냈던 것 같아. (대체 얼마 만에 가진 포기라는 태도인지)

제대로 살아내는 삶이라는 것에 대한 포기.

나를 잃지 않아내는 것에 대한 포기.

무언가를 써 낸다는 행위에 대한 포기.


2.

어느 순간

중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어.

그 때의 나를 떠올리고 있자니 지금의 내 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또 한심하든지.

‘포기’상태의 내가 웃기고 또 한심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동안(매우매우 오랫동안) 억지를 쓰고 삶의 매 순간순간에 집착하고 나를 괴롭히며 ‘제대로 된 삶’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틀에 나를 끼워 넣으려고 낑낑댔던 내 모습이 그랬다는 말이야.

어찌나 그게 웃기고 한심한 꼴이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학생인 내가 지금의 나를

“이 병신아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어차피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르니까 3인칭 쯤으로 부끄러운 마음 없이 말하자면) 적절할 정도의 천재였던 것 같아. 머리가 비상하고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고 하는 그런 의미의 천재라기보다는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정도의 천재.


학교에 제일 일찍 오는 부류의 아이였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파울로 코엘료 식으로 말하자면 ‘삶의 연금술’을 알고 있는 아이였어. 학교에서는 친구들과의 유쾌한 대화로 시간을 채우고, 또 수업 시간의 선생님 말씀도 충분히 즐기며 익히고, 그런가 하면 남는 시간과 공간(이를테면 연습장 같은)이 있을 때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학교가 파해 집에 돌아와선 뉴스가 시작하는 아홉 시 즈음부터는 방에 들어가 이어폰을 끼고 팝송 테잎을 듣고, 서점에서 매 달 구입한 게임 월간지와 문화 잡지를 꼼꼼히 읽고, 그리고 밤 열 시 경부터 새벽 두 시까지 네 시간 정도는 어김없이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잠드는 아이.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는 그런 아이.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토록이나 충실한 삶을 살았던 중학생 시절의 나는 부담감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 만한 것 따위 단 한 조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거야.


책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감 음악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등등등. 다시 말해,

삶을 제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따위에 지레 겁먹고 힘겨워 하고 버거워하는 지금의 나를 향해 중학생 내가 말한 거야,

"이 병신아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하고.


그렇게 수험생이었던 고등학교 3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대학에 입학하고 난 지난 3년 간 기억해 내지 못한, 중학생 시절의 나를 나는 얼마 전 다시 만났어.


3.

고백하자면

그 때 있잖아, 군대에 오기 전 겨울부터 봄. 내게 있어선 환상 같았던 그 시간. 사실 그 때 나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 냈어. 그 이전의 시간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 말이야. 그건 중학생 시절의 나와도 다른 나였지. 그 때까지만 해도 중학생 나는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네게 어떻게 들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나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존재였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풍선과도 같은 존재. 힘닿는 데까지 부풀려지고 부풀어 오른 존재. (유치한 표현이라는 거 알고 있어. 나도 지금 될 수 있는 한 솔직하게 써 보려고 애쓰면서 그나마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어휘를 고르고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만든 나를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사실 그때의 나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곧 군대 가니까, 군대에 갈 때까지 몇 개월이라는 시간제한 같은 게 있다고 생각 했으니까 조금은 겁 없이 그런 나를 만들어 냈던 거야(아마 그랬을 거야).


그렇게 만들어 내어진 나는, 말하자면 ‘단편 소설 혹은 짧은 콩트가 가진 밀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는 대하소설 같은 생활을 하는 존재였어.

짐작할 수 있겠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끈처럼 긴장된 틀 속에 나는 나를 집어넣었어. 숨 막히는 밀도 속으로 나는 나를 몰아넣었어. 무척이나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지만 말이야.

한번은 그 즈음의 내 방에 놀러 왔던 조현준이 내가 그 때 쓰고 있던 일주 정리글을 읽다가 “야 넌 맨날 쓰러져 자냐?”하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하루를 정리하는 문장으로 ‘쓰러져 잤다’라는 문장을 꽤나 많이 썼던 것 같아. 그도 그럴 것이 그 시기의 나는 언제나 다른 어휘를 생각해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쓰러져’ 잠들곤 했으니까.


그러나 피곤하다는 건 둘째 치고 그런 생활이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였어.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거였으니까. 그런 생활이란 그저 내가 '군대 가기 전까지' 라는 시간제한을 얼핏 생각했듯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야 의미를 지닐 수 있을 뿐, 한 인간의 일생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엔 제대로 된 의미를 지닐 수 없는 생활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서는 자신을 계속해 연소시키며 소모해 나갈뿐 결국 자신이라는 존재의 성장을 얻을 수는 없을 테니까.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겨우 얼마 전에서야 깨달았던 거야.


결국 내 문제는 그런 식의 말이 안 되는 생활을, 겨우 어느 정도의 한정된 시간 안에서야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생활을 언제까지고 계속해 나가려 했던 데에서 비롯된 거였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소모되고 망가질 수밖에.


4.

이제부터 나는

100이라는 최대능력을 가진 나를 필사적으로 몰아 붙여 100의 능력을 전부 발휘하려는 삶을 살지 않을 거야. 나는 100이라는 재능을 가진 나를 필사적으로 몰아 붙여 100만큼의 글을 쓰지 않을 거야.


대신에 나는 내가 가진 최대 능력을 120까지 끌어 올릴 거야. 내가 가진 재능을 120까지 확장시킬 거야. 그래서 결코 필사적이지 않게 90정도의 삶을 살 거야. 필사적이지 않게 90정도의 글을 쓸 거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할 거야.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

집착하고 억지 부려서 100/100을 끌어내기보단, 집착을 버리고 좀 더 힘차게 살아가는 90/120의 삶.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110/150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내가 깨달은 것과 내가 바라는 것, 그리고 중학생 시절의 나로부터 배운 건 결국 그런 거야.


5.

역시나 예상대로 중구난방이 되어 버렸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리해 볼게.

삶의 흐름을 리듬을 잃었던 두어 달 동안 나는 힘들었지만 그 덕에 다시금 나를 돌아볼 기횔 얻었던 것 같아.


이제 나는 더 이상 지금껏(그러니깐 입대하기 전 겨울부터 지금까지)견지해 왔던 삶의 태도로 살지 않을 거야. 다만 그 시간을 바탕에 두고서, 중학생 나의 태도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거야. 그리고 그 태도와 함께 90/120의 삶을 살 생각이야.



J야!

만나서 너와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날들이 잦아진다.

곧 보자. 그리고,


난 잘 지낼거야 그러니 걱정 마 :)




11화 ‘문병을 와 주었던 고마운 친구들에게’ 에서 언급했던 과거의 친구 J에게 보낸 이메일은 아직 군대(소방서)에 있던 때, 이제 막 몸의 이상함이 느껴지기 시작한 무렵 발송했던 메일이다.


메일의 마지막, 걱정 말라 했던 인사말에도 불구하고 이후 나는 격랑에 휩쓸린 것만 같은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고 J는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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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의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다만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내장 쪽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가능성'이 높아질 뿐이지 암에 꼭 걸릴 원인은 아니다.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곤 하는 누적된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운이다. 매일같이 담배를 피워도 운이 좋은 사람은(DNA뽑기를 성공한 사람은) 100살 넘어까지 장수하고 운이 나쁜 사람은(나쁜 운 탓에 DNA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한 사람은) 아무리 건강한 삶을 살아도 암이 발병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내가 뇌종양에 걸리게 된 원인으로 짐작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나라는 인간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커다란 것을 바랐다는 점이다.


입대 약 4개월 전부터 입대해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는 정말 빽빽하게 살았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나를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매일같이 여섯 시에 일어나 밤 한 시 넘어 잠들 때까지(자던 중에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관 형님들과 출동도 하면서) 그 사이의 시간을 한조각의 틈도 없이 끝도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나를 밀어붙이며 지냈다. 정말이지 ‘단편소설의 밀도로 채워진 장편소설’같은 삶이었다. 간혹 그런 소설들도 정말 있긴 하다. 이를테면 천명관의 <고래>나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한 이청준 작가의 작품 같은 소설들. 그런 소설들은 역작 혹은 명작이라 불리게 되지만 소설이 아닌 한 사람의 생을 놓고 보자면 그것은 결코 옳은 삶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몸은 나의 그런 잘못된 살아가는 방식을 정지시키기 위해 뇌종양이라는 병을 가져왔던 것이지 싶다. 계속해 그렇게 살다간 언젠가는 분명 큰 탈이 날 나를 멈출 수 있도록, 늦었다간 내 인생에 더 큰 화를 불러올지 모를 삶의 방식을 종료할 수 있도록. 병에 걸렸음을 깨닫는 데 필요했던 큰 계기처럼, 내 삶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바꿀 마음을 먹게 만드는 데에도 역시 커다란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 몸은 뇌종양이라는 병을 통해 그 계기를 가져온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만큼이나 늦은 뒤에서야 잘못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얼마나 다행인가, 뇌종양이라니. 뇌종양 덕에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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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보냈던 이메일에는 내 몸의 이상과 짐작되는 원인,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결심 등이 적혀 있다. 결국엔 같은 말이다. 내 주제를 넘는 너무나도 큰 것을 바랐다는 것.


다른 어떤 이유보다 뇌종양에 걸린 이유를 나는, 그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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