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

치료 후의 이야기 #1

by 이대


사촌 동생은 오른쪽 귀가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야구공에 귀를 맞은 뒤로 청력에 장애가 생겼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다. (…) 하지만 그에게는 외부의 소리가 비교적 잘 들리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는 밀물과 썰물처럼 번갈아 찾아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반년에 한 번 정도로 거의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마치 오른쪽 귀의 깊은 침묵이 왼쪽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지워버리는 것처럼.

- 무라카미 하루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中


몸의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스물셋. 병인 줄도 모르고 휘청거리다 다행히 뇌종양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 스물여섯. 치료를 끝마치고 ‘돌아왔어’ 스물일곱. 그렇게 손에 잡힐 것 없이 내 20대는 흘러가버렸다. 그처럼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학 졸업까지는 아직 세 학기,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아무런 지체 없이 졸업한다 해도 그 때 내 나이 스물여덟 하고도 6개월이었다.


사회 진출에 요구되는 여러 사항의 준비가 불가능했던 지난 나날들과 퇴원 후 후유증에 시달리던 시간들. 그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20대 소중한 시간을 뇌종양 탓에 잃어버렸다는 아쉬운 마음은 없었는지 묻는다면, 물론 있었을 수밖에. 그럼에도 그런 불안함과 안타까움을 떨쳐내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얘기는 추후에 하기로 하고 (삽지처럼 적어 넣기에는 마음이 또 그게 아니니까) 이번에는 뇌종양이 남긴 후유증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치료 이후 한동안 시달렸고 지금도 어느 정도 남아있는 후유증이 다만 뇌종양이라는 병에 따른 후유증인 건지, 아니면 내가 받은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짐작건대 아마 둘 모두로부터 남겨진 후유증일 것이다. 뇌종양이라는 병이 신체적인 병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병이었던 것처럼 후유증 역시 신체와 정신 둘 모두에 찾아왔다.


신체적인 후유증


신체에 남은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은 바로 손과 발의 불편함이다. 한참이나 병의 기세가 등등하던 때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른손과 오른다리의 불편함이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쥘 힘이 없어 글씨 쓰기가 힘들었고(쓸 수는 있어도 지저분해 뭐라 쓴 건지 알아보기 힘들었고) 오른다리 역시 힘이 빠져 발목부터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걸음을 걸을 때면 소아마비를 겪은 사람들의 걸음걸이 비슷하게 절뚝댔다.

오른쪽 손과 다리의 불편함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전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아왔던 난데 지금도 어쩐지 왼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 오른손보다 편하다. 특히나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거나 어깨를 감싸 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오른손으로 다른 이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불편한지. 병에 의해 이런 것도 달라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런 오른손발의 불편함은 특히나 비가 내리는 날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더 심하게 다가오곤 하는데, 하루키 단편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속 청력장애가 있는 사촌 동생처럼 반년에 한 번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날은 그래도 간혹 찾아온다. 그럴 때면 살짝 무서워진다. ‘상태가 다시 나빠지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말이다. 마음 속 두려움이 다가올 때면 나는 의식적으로 오른손 주먹을 힘주어 꽉 쥐어 본다. 오른발 발목과 발가락을 하나하나 움직여 본다. 치료가 끝난 후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른손은 힘 있게 쥐어지고 오른발목과 발가락도 부드럽게 잘 움직인다. 그럼 나에게는 안심이 찾아온다. ‘나는 괜찮구나’ 하는 안심이.


다른 하나는 숨쉬기가 불편해졌다는 것인데, 놀랍게도 이것 역시 오른쪽 콧구멍만 그렇다. 오른쪽 콧구멍 속 피부가 부어올라(피부 속 혈관이 부어올라) 숨쉬기가 불편한 것이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2~3만 차례 정도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데 그때마다 신경이 쓰이니 여간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집중해 글을 적는다거나 할 때는 더욱 신경이 쓰인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지내다가 아무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에 가 레이저 수술까지 받았을 정도다. 그랬음에도 오른쪽 콧구멍을 통한 숨쉬기의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는데, 비염과도 같은 호흡기 질환이란 앓는 사람이 아닌 이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절박한 삶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뇌종양이 남기고 간 신체적인 후유증이랄까 변화랄까 하는 것은 손톱의 뿌리 부분, 손톱반달이라거나 조반월(爪半月) 이라고 부르는 흰 반원 모양 부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전까지만 해도 유독 크고 진했던 손톱의 그 부분이 치료를 마친 직후에는 정말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가 지금은 살짝 돌아왔다. 이게 건강한 사람은 더 크고 진하게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별반 대수로울 것은 아니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후유증


신체적인 후유증은 그것들 말고는 딱히 더 없는 것 같고 정신적인 후유증에 대해 말해 보자면, 이건 아마 뇌종양을 겪은 환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후유증인 것 같은데 바로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다. 한마디로 하자면 머리가 나빠졌다. 치료를 마친 초기엔 정말로 심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뭔가를 구입한다거나 혹은 비밀번호를 바꾼다거나 할 때 문자로 오는 여섯 자리 인증번호를 기억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휴대폰 창을 왔다갔다 하면서 숫자를 두 개도 아니고 하나씩 옮겨 입력하고 있는 내 모습에 자괴감 비슷한 감정마저 들었을 정도다. ‘이것도 기억 못한다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니…’ 하면서.


아직 세 학기 남은 학교 강의를 듣는 데에도 정신적인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수업은 교수님과 가까이에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으며 대답이나 질문도 꽤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강의를 열심히 듣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인 모양이었다. 수강했던 강의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답안지에 답안을 적는다는 것이 절망적일 정도로 힘들기만 했다.

결국 시험 답안지에 적어낸 것은 답안이 아닌 편지였다. 다름아닌 수신인을 교수님으로 한 편지.


‘○○○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번 학기 강의를 수강한 이대훈 이라고 합니다. 저는 군복무를 하던 중 뇌종양이라는 병에 걸렸고 시달리다 치료를 받아 퇴원은 했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탓인지 집중력과 기억력이 상당히 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탓에 현재 시험 답안을 적기가 매우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위해서는 이수해야하는 학점이 있는 상황이니 교수님, 면목 없습니다만 저에게 F학점이 아닌 C+학점을 부여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운운云云…’


힘없는 손목을 애써 움직여 엉망인 글씨체로 답안지 가득 채워 적은 편지에, 교수님들께선 내 처지가 딱하다 생각하셨던 건지 감사하게도 C+을 달아 주셨고 그 덕분에 나는 겨우겨우 대학의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껏 스승의 날이나 졸업식 날에 한 번이라도 스승에게 편지를 썼던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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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신적인 후유증으로는, 이건 정신적인 후유증이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신체적인 후유증이라 해야 하는 건지 판단하기가 힘든데, 키보드 타이핑을 할 때 글자의 앞뒤 순서를 바꿔 타이핑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디자인’이라는 글자를 타이핑할 때 ‘다지인’이라 타이핑 한다든지(디귿과 지읒 뒤에 오는 모음들을 서로 바꿔서) ‘미수금’을 ‘미구슴’이라 타이핑하는 것(ㅜ와 ㅡ위에 오는 자음 순서를 바꿔) 등이다. 한두 번 그럴 때는 그냥 ‘하하, 이런 실수를 다 하다니 나도 참’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병을 앓기 전에는 결코 없었던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다 보니 이것은 분명 뇌종양의 후유증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술 시 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방금 전에도 문단 첫 문장 세 번째 단어 끝에서 ‘~으로는’ 이라고 친다는 게 ‘~으르논’이라고 쳤다는 사실)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은 다른 후유증과는 달리 조금 심각하다 생각되는 건데 걱정과 불안, 놀람이 크게 줄어들었다. 앞에서 말한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증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줄어들었지만 이 ‘걱정과 불안 놀람의 감소’는 어쩐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글에서 이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과연 불편함이랄 것 전혀 없이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아마 세상 사람 모두 나름의 불편함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이를테면 안검하수나 나쁜 시력 만성 소화불량 등의 신체적 불편함이나, 특정 사항에 대한 집착 흐린 날 찾아오는 우울감 등의 정신적 불편함 같은 것들. 모두가 이런 불편함을, 마치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처럼 가까이에 두고 살아갈 테지만 그렇다고 생활에 큰 불편함을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뇌종양이 남긴 후유증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른쪽 손발 움직임의 불편함도 내가 피아니스트라거나 축구 선수가 아닌 이상에야 별반 문제되지 않는다.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도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본다거나 직업적 기사(棋士)가 아닌 이상 사는데 크게 염두에 둘 건 없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사촌 동생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다만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필요한 건 ‘뇌종양 때문에 내 20대를 잃어버렸어, 후유증 탓에 살기 불편해’하는, 과거를 향한 우울한 시선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더욱 긍정적인 마음가짐일 테다.


긍정의 마음으로, 내 눈 앞에 펼쳐진 하루라는 퍼즐 조각을 한 조각 한 조각씩 조심스레 꾹꾹 눌러 맞춰 나간다. 그러다 보면 텅 비어있던 24시간이라는 배경은 어느새 가득 채워진다. 하루의 막바지에서 손을 뻗어 전등의 스위치를 내리며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운 뒤 눈을 감고 완성된 하루의 모습을 떠올린다. 각각의 조각들이 연결되어 만들어 낸 시간의 울림들이 만족스런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된 하루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또한 알게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조각을 끼워 맞춰 완성시킨 하루의 모습이란 사실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조각임을.


내가 완성시킨 하루라는 커다란 조각은 어제라는 조각 옆에 다시금 꾸욱 눌려 맞춰지고, 어제라는 조각 앞에는 또 수많은 제각각의 조각들이 맞춰져 있다. 나는 눈을 돌려 아직 한참이나 남은 삶이라는 배경을 바라본다. 그 커다란 배경에 한 조각씩의 나날들이 맞춰져 나가고 비로소 조각 맞추기가 완성되었을 때 그것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일지, 아니면 여기저기 찢어지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심지어 군데군데 비어 있기까지 한 모습일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