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후의 이야기 #3
케 세라 세라 Qué será, será (될 대로 될지어다)
- 앞날은 알 수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의미의 스페인어 관용구
1.
1999년의 일이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내 방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절망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작 열다섯 살 아이에게 절망이 웬말이겠냐마는, 어쨌든 그때의 나는 진지했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의 개최지가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결정되었을 때였다. 엄마와 아빠 내 동생,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 옆집 형은 물론 온 국민들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을 바로 그때, 나는 그들과 반대로 좌절과 낙담에 빠져 양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 잡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였을까?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나는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망했다. 2002년이면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일 테고 그렇다면 수능 준비에 힘쓰느라 월드컵 경기 따위는 하나도 보지 못할 텐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내가 즐길 수도 없는 월드컵이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치러진다는 소린가. 나는 88올림픽 때도 겨우 네 살이었던 바람에 기억나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내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를,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전세계적 행사인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기는 글렀구나. 나보다 한 살 많은 옆집 형은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소리 지르고 있는 거야. 아니, 2002년이면 형은 고3이잖아? 그렇게 소리 지를 때가 아니야 형! 정신 차려! 아아, 이런 비참한 운명이라니. 어쨌든 형이든 나든 망했다.’
이런 걱정에 빠져 있던 나는 주위의 들뜬 분위기에 이렇다 내색은 못하고 혼자서 괴로워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날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간은 아마도 오후 네 시 오십 분쯤 되었을 것이다. 등 뒤에서 비춰 오던 석양빛마저도 또렷하다. 좌절에 빠진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던 붉은 빛 석양. 떠올리니 눈물마저 배어 나온다. 멀고도 먼 3년 뒤의 시간을, 나는 진작부터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지만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경기를 챙겨서 봐야 한다는 생각도 별반 없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경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나라 팀이 이겨 주면 기쁠 것이고 지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큰 관심은 없다. 그러나 1999년의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렸고 당시 내 주위를 팽배하게 감싸고 있던 분위기는 스포츠에 대한 호오를 불식시킬 정도로 들떠 있었다. 뜨겁게 끓어올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개최지 선정에 환호하는 물결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것이다. 감격 벅찬 다른 이들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감정이긴 했지만.
그리고, 역시나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2002년에 다다랐다. 과연 2002년의 나는 걱정하던 대로 대학 입시를 위한 수능 공부에 이 한 몸 다바치느라 우리나라 경기든 뭐든 하나도 보지 않고서 오로지 독서실에 틀어박혀 밖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에도 귀를 틀어막고 ‘흥, 그래 봐야 뭐 우리나라가 얼마나 이기겠어. 관심 끄고 공부나 하자’라며 자기위로만을 주워 삼키고 있었을까? 아무렴 그랬을 리가. 나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축구 경기는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보았다. 그것도 텔레비전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광장에 나가 시(市)에서 설치한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신나게 응원까지 하면서 말이다. 옆집 형 나이의, 고등학교 3학년이던 선배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골을 넣으면 감싸 안고 소리쳐 울부짖으면서.
‘대-한-민국, 짝짝짝-짝짝’하던 그날의 응원 구호와 박수 소리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울려 퍼진다.
2002년,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울부짖을 나를 걱정에만 빠져 있던 1999년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참이나 이른 걱정은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것이다. 앞날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4강에 올랐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뇌종양이라는 병에 걸렸던 것처럼.
2.
나는 내가 병에 걸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그것도 그렇게 큰 병에 걸릴 거라고는 더더욱. 어린 시절부터 크게 아파본 적도 없었고 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에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모습을 보아 왔다면 나도 조금은 건강에 대해 걱정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뇌종양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내 주위에 큰 병치레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건강하셨고(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외할머니도 건강하시며 외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내가 고3이던 무렵 돌아가셨을 뿐이다(이후 외할머니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내가 조금의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아직 한참 젊고 건강하기만 하던 내가 그렇게나 큰 병에 걸릴 줄은.
그러나 어찌 되었든 나는 병에 걸렸고 그 덕분에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별반 의미 없이 흘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봤을 때 물론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야 있겠냐만은 아무래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병을 앓고 입원해 치료를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시간 동안 곁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내 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말라버렸다. 내가 계획하고 있던 삶의 방향 역시 어느 정도는 틀어져 버렸다. 이것은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내가 맨 처음 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썼던 것은 군 입대를 약 4개월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그 시기부터 군대 생활을 하던 2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오히려 군대 밖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으며 더욱 많은 책을 읽었고 더더욱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꿈을 가졌다. 나는 군대에 있는 동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꿈을 이룬 내 모습을 그리며 밖에 있을 때보다 배는 열심히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병에 걸린 것은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그릇의 크기를 넘어 너무나 커다란 것을 바라며 살았던 탓에. 이것 역시 참으로 슬픈 이야기다.
병의 증세가 한창이던 무렵 주된 증상은 잠이 쏟아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오른손과 오른발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역시 주요 증상이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쥘 힘이 없어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었고 오른발은 발목부터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시기 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병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앞으로 오른손과 오른발을 제대로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여 있던 것이다.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앞으로 나는 글씨도 못 쓰고 즐겨 하던 그림그리기도 꿈도 꿀 수 없을 거야. 오른발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운전도 할 수 없을 거야. 아아- 미래의 내 연인이나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할까, 고작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배우자라니. 우리는 불완전한 커플이 되고 말 거야. 분명 그럴 거야.'
나를 찾아온 그러한 걱정과 허황된 두려움은,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뇌종양 환자들에게서 흔히 보고되는 증상의 일부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그런 걱정들은 정말이지 단연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치료를 마친 지금의 나는 너무나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손과 발에 살짝의 불편함은 남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피곤한 날의 상태와 비슷한 정도다.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데 번거로움을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야말로 아무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3.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란 이것이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이른 걱정은 쓸데없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올랐던 것처럼, 내가 상상도 못한 뇌종양이라는 병에 걸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신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앞날의 일을 미리 앞서 짐작하면서 걱정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걱정은 걱정을 부른다. 더군다나 너무 이른 걱정은 그만큼이나 더 많은 걱정을 낳고 말 뿐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걱정이 아닌, 그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La-la how the life goes on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된다네 친구여-
랄-라, 인생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