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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Aug 05. 2020

남편의 운전연습을 시켜주게 되다니

별난 남편 비위 맞추기

이건 뭔가 상황이 거꾸로 됐다. 남편의 운전연습을 시켜주게 되다니. 


나의 남편은 48년째 무면허로 살고 있다. 그가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울 토박이가 서울에서 사는 동안 자동차보다는 택시가 편했고, 항상 역세권을 고집했기에 지하철과 버스만으로도 모든 곳을 갈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굳이 자동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나는 27세에 운전면허를 땄다. 퇴사 후 꼭 해야지 했던 일 중, 운전면허도 있었다. 면허를 딴 후에도 자동차는 없었기에 서른넷까지 차 없이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함께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서 자차를 구입했다.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친정에 가던 중, 아이가 응가를 해서 버스 가득 냄새가 퍼졌던 걸 잊지 못한다. 제대로 치우지도 못하고 얼마나 난처했던지.


그 이후로 우리집의 드라이버는 나 한 명이다. 어딜 가든, 어디서든 우리 가족 중 운전면허는 나 밖에 없기에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그러면서도 운전을 겁내는 편이라서 운전에 대한 부담도 엄청 크게 느끼곤 했다. 그래도 선택권이 없는 걸 어쩌랴.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려움보다는 우리집 드라이버가 되는 게 편했다.


시골로 이사 온 후, 대중교통의 특혜는 없어졌다. 집 앞에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버스는 하루에 겨우 5대만 다닌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전철역에서는 서울로 가는 전철이 30분에 1대 다닌다. 마을버스 시간이 잘 맞는 출근시간과 달리, 마을버스가 없는 퇴근 시간에 신랑은 매번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마저 코로나 이후, 택시비를 아끼고자 매일 저녁 내가 픽업을 나가게 되었다. 30분에 8천 원을 벌 수 있는 꿀 알바라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그렇게 아깝진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올봄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을 때, 정말 엄청나게 반가웠다. 드디어 내 드라이버 인생도 끝나겠구나. 그런데 남편은 뭔가를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타입이 아니다. 면허 얘기를 꺼낸 게 3월인데, 5월에 겨우 필기시험에 합격하더니 실기시험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고 싶은 자동차 목록을 뽑아 놓고 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정말 못 말리겠다. 


실기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이유는, 학원비 때문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생활비도 없는 상황에 최소한 70~80만 원 하는 학원비를 내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이미 드라이버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정해진 기한도 없이 내 드라이버 일과는 계속됐다. 거기다 매일 퇴근길에 나보고 동네 공터에 들러 운전 연습을 시켜달라고 조른다. 허참.


매일 저녁 픽업을 다니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제 거기에 보태서 매일 공터에 올라가 신랑 운전연습까지 시켜줘야 하다니. 거기다가 나는 운전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운전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서 가르쳐 주는 입장에 서는 일도 두려웠다. '하고 싶지 않다'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나의 부담감을 못 느끼는 것 같아서 결국, 친정아버지가 주신 생활비 중 일부로 실기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신랑을 그럴 맘이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운전연습을 부탁해 보겠다고 한다.


나의 남편은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보편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아마 지금도 돈이 아깝기도 하지만, 남들처럼 똑같이 면허를 따고 싶지 않아서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 태클을 걸면 남편은 더 반발할 것이 분명하기에 아주 넓고 넓은 마음으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저러다 말겠지 하지 않으면, 내 속만 까맣게 타버릴게 분명하다.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시어머니께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신랑에게 운전면허 학원비를 내주겠다고 하신 것이다. 만세!! 분명 남편의 성격을 알고도 남을 시어머니께서 저러다가는 못 따겠지 싶어 과감한 한 수를 두시기로 한 듯했다. 그렇게 지난 주말 시어머니께 백만 원을 받아왔다. 


남편은 아직 학원 등록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하겠지만, 그의 마음에 보편적인 방법을 따를 만큼 여유가 생기길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몇 달 더, 가족의 드라이버를 해야겠지만, 그게 영원하지는 않기에 그 무게가 조금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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