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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fore Anyone Else Jul 21. 2024

 이지현의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

최애 예술가 안토니 곰리의 원 앤 아 더를 오마주 하다

며칠 전 지인과 이지현 기획자가 쏘아 올린 공을 함께 직관했다. 이지현,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는 이유로 함께 직관할 것을 약속했었다.

연희예술극장입구 전경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는 건 대체로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감으로 뭔가 일을 내는 건 대체로 아무나 하지 않는다.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를 기획한 이지현은 달랐다.


공연장 입구 대형 포스터

이지현에게는 최애 예술가가 몇 명 있다. 그중 한 명인 영국 출신 현대미술가이자 조각가인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프로젝트인 원 앤 아더 (One and other)를 오마주 하여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를 기획하였다.


자~ 어서 들어가자 !!! 설렘!  

공연이 시작되기에 앞서 이지현 기획자는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의 기획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첫마디는 "여러분은 최애 예술가가 있으십니까?"였다. 이지현의 최애 예술가 곰리를 언급하며 이 공연이 오마주 된 원 앤 아더 작품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안토리 곰리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인생샷 찍은 이지현 기획자(인스타 퍼옴)


이지현 기획자가 소개하는 원 앤 아더(인스타 퍼옴)


런던 트래팔가 광장의 동상 받침대는 2005년부터 예술작품을 위해 활용되어 왔다. 2007년에는 '‘보통 사람들의 참여로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곰리의 제안이 채택되어, 100일간 매시간마다 한 명씩 릴레이로 받침대에 올라가 무엇이든 한다는 내용인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원 앤 아더 (One and other)이다. 2009년 곰리는 공모를 통해 얻은 기회로 한 달 동안 자신의 작품을 올릴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단 위에 시민들을 올리기로 결심했고 100일간 매일 24시간 동안 한 사람당 1시간씩 총 2400명이 올랐다. 당시 큰 화재가 된 이 작품은 무엇보다 스토리가 독특했다. 가게홍보부터 고백 등 다양한 이야기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이지현 기획자는 원 앤 아더를 통해 깊은 감회를 받음과 동시에 예술인과 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연극처럼 다가왔던 이 작품을 통해 이것이 미술인지 연극인지의 장르에 대한 모호함도 실험해 보고 싶었으며 또한 누군가가 참여하는 이야기로 기획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미술에 대해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연희예술극장팀과 만나게 되어 대규모 오디션을 거쳐 64명의 참여자와 손을 잡은 작품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다.

지난 3월 19일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이지현표 대형 프로젝트 소개글을 처음 보게 되었다.  안토니 곰리의 공공미술인 원 앤 아더를 오마주한 예술프로젝트에 응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평의 공간인 무대를 10분간 채울 수 있는 아이디어 만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72명의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했다.  


자칭 예술옹호론자인 이지현 기획자는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때로는 더 넓게 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일을 하고 있기에 뭔가 또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구나 싶으면서도 이번에는 뭔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주로 해오던 미술 분야와 달리 낯설기도 했고 솔직히 어떤 사람들이 참여할지와 이유를 모르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이후 진행과정과 공연일정을 소개하는 피드를 보며 궁금증이 생겼고 이지현 기획자의 팬이기도 한 나는 또 다른 팬인 지인과 함께 얼리버드 티켓을 예매했다. 이지현이 기획하는 여러 일 중 직접 그녀를 만날 수 있기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은 가장 큰 덤이었다.


보통 배우나 가수, 무용수 등 전문가 또는 직업인들이 출연하는 공연에 돈을 내고 관람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는 누구나가 설 수 있는 무대이기에 솔직히 모든 게 예상되지 않는 무대였다. 새로운 시도가 신선하고 궁금하기도 했고 기획자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이 참에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함께 관람하기로 했던 거다.


모든 공연은 총 8회 64명이 공연했고 한 사람당 한 번씩 출연하며 매일 다른 공연이므로 어느 날을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작품이 궁금했지만 결국 예매일은 출연자나 작품이 아닌 날짜 기준으로 선택했다. 어느 작품을 만날지는 복불복이었다. 물론 소개된 프로그램이 있었다. 출연자던 작품이던 전혀 예상할 수 없기에 관람 일정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선택한 시간에 따라 작품이 나한테 뽑히는 순간이었다.   


나한테 뽑힌 작품은 뭘까?
궁금했다.
내선택도 복불복이었다.


매일 다른 출연자로 짜인 프로그램

일반적으로 어떤 작품이던 소개되는 내용을 통해 장르 또는 출연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은 가능하다. 공연의 캐스팅에 따라 날짜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는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티켓팅에 이어 공연 내내 그러했다.  

입장준비를 마치고 공연장 입구 대기 공간에서 출입문을 향해 티캣들고
공연 시작 전 1평 무대전경

하루에 8명의 출연자가 10분씩 출연했다. 출연자와 작품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였지만 드디어 첫 번째 무대를 맞이했다. 백지상태로 10분의 첫 번째 무대를 경험하고 난 뒤, 두 번째 무대도, 세 번째 무대도, 마지막 여덟 번째 무대까지도 매번 백지상태로 무대를 맞이하는 경험을 했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멍 때리기로 정의한다

.

이날 네 번째 공연 중 멍의 철학이라는 무대가 있었다. 재미있게도 넷플릭스 멍 때리기 우승자였던 출연자가 멍 때리기 비결을 소개했던 멍의 개념이 뇌를 쉬게 해 준다는 명상의 개념과 연결되었다. 그 팁으로 <한 평의 모노드라마>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멍 때리기 후 찾아오는 밀물 같은 감동>이다.

출연자들 공연하는 모습, 다들 프로같았다
피날레 무대인사하는 8(9)명 출연자들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완성도 있는 무대였고 재미있었다. 다양한 장르를 한 무대에서 연이어 볼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이 즐거웠다. 숏폼시대에 어울리는 숏폼무대로 엮어진 옴니버스무대였다. 배우부터 콘텐츠까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경험하는 무대 앞에서 경험하는 멍 때리기와 밀물로 머릿속 채우기가 8번 반복되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무대 또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목격했다. 출연자, 스토리, 콘텐츠도 모르며 프로그램 간의 일관성, 연속성도 없는 8번의 무대를 맞이해야 한다. 오로지 관객의 선택은 내내 멍 때리며 다음 무대를 맞이해야 하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생전 처음 무대에 오른 사람, 이별 후에 이별을 이겨 내는 사람, 배우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던 사람 등 무대에 오른 모든 출연자는 한 평에서 자신만의 허들을 넘는 작은 성공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대를 완성했다는 결과만으로도 대성공이고 그것이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할 것 같다.


64명의 출연자뿐 아니라 이지현 기획자를 포함한 모든 스텝들까지 새로운 도전을 이루어냈다고 응원하고 싶다.  


티켓에 사인해 주고 하트발사해 주는 이지현 기획자

이지현 기획자가 쏘아 올린 공을 직접 보기 위해 5번째 날의 공연 직관은 그녀의 열정과 에너지를 생생하게 직접 느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연약한 체격의 그녀는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지 세상 궁금했다. 수고한 그녀와 허그를 나누고 친필싸인까지 챙겼다. 나에게도 그녀의 뜨거운 에너지가 맞닿은 느낌이 들었다.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함께 간 지인과 1시간 내내 열띠게 감상평을 쏟아냈다. 


우리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목격했다.
출연자, 스토리, 콘텐츠도 모르며 프로그램 간의 일관성, 연속성도 없는 8번의 무대를 맞이해야 한다.
오로지 관객의 선택은 내내 멍 때리며 다음 무대를 맞이해야 하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이지현 기획자의 열정을 목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덕분에 즐거웠다며 다음에 또 이런 무대 볼 수 있을까를 질문했다.


낯선 경험 예찬론자인 나는 이날의 낯선 경험을 통해 뇌세포와 감각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낯선 콘텐츠의 경험과 덤으로 그 무대가 펼쳐진 낯선 동네 산책 덕분이었다.


여간해서 갈 일이 없던 30여 년 만에 찾은 연희동, 그 골목을 산책할 수 있었고 연희동의 연희동스러운 감성을 느꼈던 즐거움을 함께 기록한다. 이지현의 <한 평을 위한 모노드라마> 덕분이다. 

공연 관람 후 귀갓길 연희동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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