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고백 전, 나는 내 시선 안에서 너를 바라본다.
고백 중,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모순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고백이 끝나고, 우리 역시 끝이 난다.
존재적 모순성과 유해성
최은영은 <고백> 속 세 번의 고백을 통해 존재적 모순성과 유해성을 제시한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던”미주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는 친구 진희에 대해 안도하며 내뱉던 이 말,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렇게 이 소설집의 제목이 된다.
세 번의 고백, 세 개의 모순
<고백>에는 총 세 번의 고백이 있다. 진희의 고백, 주나의 고백 그리고 미주의 고백. 고백 전, 나는 내 시선 안에서 너를 바라본다. 고백 중,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모순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고백이 끝나고, 우리 역시 끝이 난다. 이렇듯 <고백>은 고백이 있기 전, 화자가 고백의 화자를 묘사하고 곧이어 고백의 화자가 직접 자신을 밝히는 메커니즘을 따른다.
첫 번째 모순, 자신이 정의한 타인과 타인이 직접 밝히는 자신의 정체. 첫 번째 고백이 있기 전, 미주는 진희를 작은 담수 진주 같다고 묘사한다. 물빛만큼 반짝이고 둥그렇고 부드러운 진주같은 진희를 바라보며 미주는 행복했다. 진희가 가진 고통의 크기를 모른 채 미주가 멋대로 바라본 진희는 행복해야만 했다. 그러나 진희는 진주도 아니었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혼자 감당할 비밀의 크기는 컸고 “그냥 친구가 아닌” 미주와 주나에게 고백을 했지만 돌아온 말과 표정은 진희 자신을 죽게 했다. 그러나 미주는 진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진실 그 자체보다 자신에게 비밀을 숨긴 친구가 더 밉다. 내게 무해할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지만 그걸 보란듯이 어긴 사람.
두 번째 모순, 자신이 정의한 자신과 타인을 통해 알게 된 자신. 두 번째 고백이 있기 전, 미주는 진희의 죽음에 주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자신 역시 주나에게 버림받았다고 말하며 독자 역시 진희의 죽음은 주나의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주나의 고백에서 미주와 독자들은 진실과 모순 두 가지 모두를 알게 된다. 진희의 고백이 있던 날, 미주는 진희에게 자신이 지었던 표정을 알지 못했다. 미주는 진희의 이야기에 자신이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줄 몰랐다. 진희를 바라보던 안까운 눈빛을 미주 자신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모순,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위안. 세 번째 고백이 있기 전, 종은은 강신굿 답사에서 미주를 처음 만난 때를 회상한다. 종은은 미주가 무당에게 왜 화를 냈는지, 미주의 시를 읽으면 왜 마음이 아픈지를 모르다가 미주의 고백을 통해 비로소 그간 미주에게 느껴온 아픈 감정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너희 하느님은 살인자도 용서하시니?”라는 물음의 의미까지도. 미주의 고백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종은은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신에게 털어놓는다. 신을 향하는 위치에 있는 수사인 종은, “피조물에게 위안을 찾지 마”라는 선배 수사의 지침에도 종은의 마음은 사람을 향한다. 앞선 모순들과 다르게 종은이 가진 모순은 묘한 위로가 된다.
네가 내게 무해한 사람이길 바랐지만 내가 네게 유해한 사람이었고, 잘못을 알았지만 용서를 구할 상대는 이미 세상에 없다. 평생 나는 나를 알 지 못한 채 살겠지 그리고 평생 너도 알 지 못할 거야. 우리는 우리 사이의 거리 안에서만 사는 거야. 이것이 <고백>이 전하는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