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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6. 세번째 이유식




첫째가 이유식을 시작하던 때는 결혼 5년차였다. 손으로 하는 일엔 재주도, 흥미도 없던 지라 내 밥 3끼 해먹기도 버겁던 나에게 만6개월이면 이유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거대한 산을 앞에 둔 양 막막하게 다가왔다. 시댁 소파에 앉아서 열심히 검색해보며 '이유식마스터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것이 있으면 갑자기 마스터 레벨로 올라설 수 있는 것처럼. 이것저것 사고 싶었지만 도마, 실리콘숟가락, 작은 믹서, 소용량 유리통들만 구입해서 대망의 이유식을 시작했다.



첫째는 어머님이 쓰시던 오쿠라는 조리 기구에 이유식을 했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냉장고에 보관할 유리그릇에 재료를 담아 오쿠 내솥에 그대로 넣어서 조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중기에 들어서면서 하루 2번 먹을 때는 2개의 큰 글라스락을 겹쳐서 넣으면 한 번에 두 개의 이유식을 완성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후기 이유식 때는 하루 3번의 이유식을 다 다른 맛으로 먹이기 위해 매일 이유식을 했다. 아이가 돌 때 8키로 정도로 저체중이긴 했지만 먹성이 엄청 좋아서 신랑에게 점심에 반 덜어서 먹이라고 하고 나갔다 왔는데 두 끼 분량을 한 번에 다 먹은 일도 있었다.



둘째 때는 오쿠를 쓰는 게 번거로워서 가스레인지에 작은 솥으로 이유식을 만들었다. 둘째는 아토피가 있었는데 발아현미가 좋다고 해서 현미를 불려 2,3일에 걸쳐 발아시켜서 시댁에 있는 가정용 제분기로 곱게 갈아 이유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짓을 어떻게 했는지 싶을 정도로 고됐다. 그렇지만 둘째도 첫째 못지않게 잘 먹었고 아토피가 빠르게 호전되는 걸 눈으로 보았기에 힘들어도 돌까지는 발아현미로 이유식을 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늦봄 셋째 이유식을 앞두고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있었다. '지금 하는 일들도 너무 벅찬데 여기에 무슨 일을 더하나.... 하루 3번 이유식을 어떻게 해 먹이나.' 사다 먹이는 건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어른 반찬도 안 사다먹는 내게 아이 이유식을 사서 먹인다는 게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셋째도 경미한 아토피가 있었지만 발아현미는 도저히 못하겠고 백미라도 좋은 걸 사서 먹이자는 생각에 5개월 중반쯤 장기간 쌀을 창고에 보관하기 위한 훈증처리를 하지 않은 쌀을 구입했다.



며칠 뒤 서랍 속에서 이유식 책 몇 권을 찾아다가 거실 책장에 꽂아두었다. 집안을 돌아다니든 거실 책장에 꽂힌 그 책들에 내 신경 끝자락이 가있어서 얼른 그 책을 읽고 이유식을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듯 했다.



드디어 만 6개월이 다된 어느 날 아이 셋을 재우고 내일부터 시작해야겠다 결심을 하고 식탁에 앉아 이유식 책을 폈다. 한 장 한 장 이유식책을 넘기는 데 이게 웬일인가. 예쁜 테이블매트에 올려진 앙증맞은 숟가락과 알록달록한 그릇에 담긴 이유식 사진들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첫째, 둘째가 이유식을 먹던 장면들이 떠올라서 행복감이 몰려왔다. 출산처럼 '두 번이나 한 일인데 세 번은 못 하랴' 싶은 마음으로 다음날 바로 이유식을 시작했다.



쌀을 불려 죽을 끓인 뒤 체에 곱게 내려 첫 이유식을 먹였다. 아이는 빠는 법 밖에 모르기에 당연히 얼마 먹지도 못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대로 미루던 일을 우선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첫째 때는 3끼를 먹으면 다 다른 메뉴로 만들었는데 셋째는 두 세 끼를 연달아 같은 메뉴를 준 적도 많다. 지겨울 만도 한데 매 번 다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맛있게 잘 먹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첫째 때는 소분할 그릇들을 다 끓는 물에 소독하고 칼도 소독한 뒤 재료를 잘랐는데 둘째 때는 초반 열흘 정도만 그렇게 하다가 말았다. 그리고 셋째 때는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소독도 하지 않았다. 첫째 때는 처음 닿는 숟가락이 촉감이 차갑고 딱딱할 까봐 실리콘 수저를 샀는데 셋째 때는 내가 어렸을 때 쓰던 30년 된 스텐 수저로 먹였다. 둘째 때까지는 열심히 쓰던 다지는 도구도 몇 번 쓰다가 씻는 게 불편해서 그냥 도마에 칼로 다져서 사용했다. 




첫째, 둘째 때는 거의 이유식책에 나온 재료들만 사용했는데 첫째, 둘째에게 여러 가지 반찬과 국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다보니 요리가 조금 늘어서 셋째 이유식은 이유식 책에 나오지 않는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했다. 어머님이 직접 쑤어주신 도토리묵을 잘게 잘라 간장, 들기름 넣고 비벼주거나 무, 당근, 감자 등 뿌리채소가 많이 들어갔으면 가스불 끄고 케일 등 초록 야채를 잘게 다져 넣어주었다. 뽕잎가루, 톳가루, 연근가루, 콩가루 등 냉장고에서 숙성 되가는 각종 가루들도 팍팍 뿌려주었다.




이유식 잘 먹여주는 예쁜 누나, 우리집 손예진




만14개월에 들어서서 단유도 하고 이유식 대신 큰 아이들이 먹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줬더니 잘 먹어서 점점 이유식 만드는 횟수가 줄다가 어느 샌가 형, 누나랑 똑같이 먹고 있다. 보통 국이나 반찬 한 가지에 밥을 주는 편인데 한 가지 요리를 해서 세 명이 다 잘 먹을 때 일타삼피의 기쁨을 느낀다.

     


뭐든 완벽하게 준비해 놓아야하는 성격이었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돌발 상황을 많이 겪다보니 닥치는 대로 해도 괜찮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달까.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양한 재료를 먹어야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그저 내 손으로 해 먹인다는 데만 의의를 두니 마음이 편했다.



첫째 때 이유식 도구로 샀던 다지기 도구와 실리콘냉동틀은 이번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물며 이유식마스터기를 샀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스터'를 한국어로 하면 숙달, 통달이다. 익숙하게 통달한다, 지식이나 기술을 훤히 알거나 능란하게 한다는 뜻이다. 세 번을 해보니 이유식이 드디어 익숙해졌다. 이유식에 필요한 것은 도구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었다. 내 스스로가 '이유식마스터기'가 된 느낌이 든다.



이유식 만들기는 이제 너무 두렵고 어려워하던 일에서 할 만 하고, 조금 귀찮지만 수고한 만큼 보람 있는 일이 되었다. 오르기 전에는 나를 무너뜨릴 엄청난 고비처럼 느껴졌는데 지나고 나니 돌아보니 작은 산이었다. 왜 그리 두려워했나 싶은. 이 산을 넘고서 또 배운다. 뭐든 시작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 그리고 계속해보면 된다는 걸.   




세 개 챙기는 애는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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