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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1. 완벽한 아이, 완벽한 부모




도서관 영유아실에서 아이들 책을 고르다 우연히 ‘완벽한 아이 팔아요’라는 책을 발견했다. 완벽한 아이라는 제목에 확 끌려서 냉큼 책장에서 빼내어 아이들이 고른 책과 함께 빌려왔다. 



책 속에서는 부모가 아이마트에 가서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고 살 수 있다. 쌍둥이는 특가세일해서 둘째는 1유로에 살 수 있고, 5 명 구입 시 무료배송도 해준다. 뒤프레 부부는 인기모델인 ‘완벽한 아이’를 구입하러 왔는데, 다행히 딱 하나가 남아있어서 남자 아이 ‘바티스트’를 사고 가족이 되었다. 아이는 밥도 잘 먹고, 혼자 잘 놀며, 게다가 잠도 제 침대에 누워 일찍 잔다.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다가 사건이 터진다. 뒤프레 부부가 축제날을 잘못 알아서 바티스트만 학교에 축제의상을 입고 간 것이다. 집에 온 바티스트가 모자를 집어던지며 짜증을 내자 다음 날 부부는 마트에 가서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처음이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수리라도 맡기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직원이 바티스트에게 새 가족이 맘에 드는지 물으니 아이는 조심스럽게 ‘혹시 저에게도 완벽한 부모님을 찾아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내가 책 속의 아이마트에 간다면 어떤 아이를 골랐을까? '완벽한 아이' 말고 다른 아이를 고를 수 있었을까? 미성숙한 아이라는 존재에게 완벽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첫째를 키우던 초보엄마 시절엔 아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소박한 기대, 하지만 사실은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그 소박한 기대란 바로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이다.   




내가 결혼 전에 봤던 아기들은 정말 다 잘 자고, 잘 먹는, 잘 노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들 입에서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기는 당연히 신생아 때부터 잘 먹고 , 잘 자고 , 잘 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애가 태어나보니 육아는 남의 애를 잠깐 보던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아이들의 잠 문제가 가장 나를 힘들게 했다. 나보다 덜 감정적이고, 더 인격적인 남편은 그저 ‘안 자는구나’ 라고 어떤 감정소모나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을 두고 나는 인내, 분노, 포기, 연구, 도전, 수긍, 실패, 폭발, 우울, 환희가 담긴 대하소설을 썼다.   




'피곤하면 그냥 누워서 자면 되지, 도대체 왜 안 잘까? 다른 애들은 엄마들 얘기해도 그냥 품에 안겨서 잘 자던데. 얘는 왜 어두운 방에서 이렇게 나를 짓뭉개며 놀다가, 너무 피곤해져서 결국 짜증내고 울다 잠들까?’ 정말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첫 애 때는 이런 불평과 짜증 속에 갇혀서 참 힘들었다. 그런데 둘째도 잠을 잘 못 자니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특성이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건 애초부터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사실일 뿐이었다. 어떤 아이는 밥을 잘 안 먹고, 어떤 아이는 낯을 많이 가리고, 어떤 아이는 고집이 세고 활발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잠이 적고 잠들기 어려운 유형인 것이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 나랑 안 맞는 점에 집중할 때 육아는 더 힘들어졌다. 대신 우리 아이들은 많이 말랐지만 세 끼 밥에 간식 두 번 잘 먹고 병치레도 거의 없고 자기들끼리 잘 노는 편이다. 이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잠만 잘 자면 참 좋을 텐데…’하는 그 욕심, 완벽한 아이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다 셋째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잘 잘 거란 기대를 버렸다. 쉬이 잠들기를 바라지 않았다. 작은 소리에도 잘 깨지 않기를, 새벽에 자꾸 깨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기대가 오히려 짜증의 기폭제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이앓이 끝나고 돌이 지나면 잘 자겠지.', '두 돌 지나면 돌아다니지 않고 누워서 잠들겠지' 같은 합리적인 기대를 가졌다. 첫째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잘 자는 아이에 대한 기대는 그 전에 내가 보아온 아기들, 그리고 육아서에 나온 아이들을 통해서 생긴 기대였다면 셋째 때는 두 아이들을 키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세운 믿을만한 기대만 가졌다.   




완벽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다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기대, 내년 이맘때쯤이면 훨씬 더 나아져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다. 완벽에 대한 기대는 나를 절망하게 했지만, 더 나아질 거란 기대는 지금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됐다.    




이런 태도는 아이 뿐만 아니라 차차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 듣고 자꾸 싸워서 소리 지르며 혼낸 날은 '나 같은 사람이 정말 엄마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도 내 안의 완벽한 엄마, 소리 지르지 않고 우아하게 이야기하는 엄마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고 다만 나는 내일 더 나은 엄마가 될 거란 기대를 품는다. 큰 맘 먹고 운동 좀 하려고 엎드려서 플랭크자세를 잡으면 셋째가 저 업어주는 줄 알고 내 등에 올라탄다. 그래도 예전처럼 짜증내지 않고 '내년이면 내려가라는 말도 알아듣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되겠지' 생각한다.     








이 동화책에서와 반대로 만약 아이들이 부모마트에서 부모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얼마 안 가 수리요청 혹은 교환요청이 들어오는 부모가 되진 않을까 두렵다. 애초에 이 성격과 재력으로 선택이나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동화책의 결말을 통해서 나만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기대를 품는 게 아니라, 아이 역시 엄마에 대한 기대가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엄마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잘 채워지고 있을까. 첫째가 말을 못하던 시절, 재우다 짜증내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밥도 잘 해주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아. 근데 내가 졸려서 힘들 때 같이 짜증만 내지 않으면 진짜 완벽한 엄마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왕이면 아이들이 기대를 채워주는 엄마, 그래서 언제나 더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것이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마음이든.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완벽은 기대할 수 없지만, 더 나아질 거란 기대는 꼭 필요하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 '6살이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엄마에게는 오늘의 육아를 지탱하는 힘이고, 아이에게는 응원가이자 나침반이 된다. 그러다 어느 샌가 그 기대가 실현되는 날이 온다.   




밤에 아이 셋을 재우려고 누우면 둘째, 셋째는 금방 잠드는데 7살 첫째는 30분 이상 걸릴 때가 많다. 그래도 동생들처럼 옆에 있어달라고 해서 손잡고 잠들길 기다려주다가, 정 안 자면 엄마는 다른 방에서 공부하고 있을 테니 혼자 먼저 자라고 한다. 어떤 날은 그래도 가지 말라 하지만, 어떤 날은 문 좀 약간 열어두라고 말하고 순순히 보내준다. 책 읽다 30분쯤 뒤에 가보면 첫째는 곤히 잠들어있다. 혼자 잘 잘 거란 기대가 채워지는데 7년이 걸렸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란 기대는 날마다 채워진다. 날마다 작은 기대가 채워지는 재미, 그리고 마침내 그 기대가 완전히 실현됐을 때 느끼는 재미, 그래서 나는 날마다 육아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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