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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5. 당신은 말 안 듣기 위해 태어난 사람




6살 첫째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이 석면제거공사를 해서 세 달 간의 긴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세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는 중인데 나의 에너지가 총 100이라면 첫째, 둘째, 셋째 각각에게 20:60:20으로 나뉜다. 첫째는 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경고하거나 혼나면 따르는 편이고, 셋째는 만 8개월이니 먹이고, 재워주면 그저 예쁜 짓 말고는 할 줄 모른다. 그런데 둘째는, 둘째는.... 둘째가 계속 말을 안 들을 때 저절로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당신은~ 말 안 듣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불굴의 저항정신'의 소유자로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독립운동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째는 하지 말라고 했을 때 그만 두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만 두면 못 들은 척하든지 오히려 거꾸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던지고, 높은 데서 조심히 내려오라고 하면 한 번 씩 웃고 점프를 한다.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게 하면 떼를 쓰고 손발을 휘두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는 스릴을 즐기는 타입이다. 오빠도 못 타는 높은 미끄럼틀도 3살 때 이미 다 정복했다. 집에서는 엄마 몰래 5단 서랍장을 칸칸이 꺼내어 서랍장 계단을 오르내리고, 5단 책장에서 암벽등반을 한다.



어떤 날은 진짜 너무너무 말을 안 듣고 체벌도 설명도 안 통하니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혼자 다른 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를 질렀다. 내 아이지만 심지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해자'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더럽고, 이상한 장난은 다 둘째가 시작한다




이런 둘째를 어떻게 훈육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육아전문가이신 오은영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훈육을 만 3세부터 시작하는 이유'라는 글을 찾았다. 박사님은 36개월 이전에도 당연히 훈육이 필요하지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본격적인 훈육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세 돌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세 돌 이전에는 반복적으로 짧게 말해주는 게 좋다고 한다. 더불어서 실제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셨다. 참 간단한 방법이지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https://blog.naver.com/eyohlovec/221310822441




예를 들어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 셋째가 둘째가 노는데 가서 방해를 하면 둘째는 가라고 밀어버린다. 그 상황에서 '하지 마'라는 말만 하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우선 '혼자 놀고 싶은데 동생이 방해하니까 싫지. 동생아. 누나가 놀 때 방해하면 싫대.'라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준 뒤, '그런데 네가 밀면 동생이 다치니까 밀면 안 돼. 이럴 땐 엄마 불러서 동생 데리고 가라고 해줘.' 라고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아이가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행동을 가르쳐준다. 그런 뒤 셋째를 멀찌감치 떨어뜨려놓는 것이 낫다.



또한 같은 글에서 '아이는 원래 말을 안 듣는 존재'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이 내 가슴을 쳤다. 내가 어른이고, 엄마이기에 아이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점만 생각했지,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각을 꺾고 남편의 말을 듣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하하하.



그리고 아이가 내 말을 100프로 다 듣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아이는 '내'가 아니고 나와 전혀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이기에 내 말, 내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생각, 기호를 따라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엄마인 내 말을 믿고 따라주면 기특하고 고마운 거지만 그렇지 않은 행동들이 다 훈육의 대상은 아니다.



이 부분은 내 감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말을 계속 해서 안 들으면 정말 주체 할 수 없이 화가 날 때도 있었는데, 사람은 늙고 언젠가 죽는 것처럼,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걸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니 말 안 듣는 아이로 인한 짜증과 분노를 참는 게 좀 더 쉬워졌다.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지만 그 감정은 아이에게 퍼부어져서도 안 되고, 나에게 쌓여도 안 되는 것이다. 훈육에서 쓸데 없는 감정을 분리시키니 훨씬 편해졌다.



오은영 선생님은 해답으로 그냥 새 날이 밝았다고 생각하라고 하신다. 어제 세수했지만, 오늘 날이 밝으면 또 세수해야 하는 것처럼 방금 설명했지만, 또 잘못했으면 또 설명하고 다시 한 번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훈육'이다.






둘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은 또 한 가지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다룬 ‘콰이어트’라는 책이다. 내가 내향적인 성격이 강하기에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내향적인 첫째와 외향적인 둘째에 대한 이해까지 얻게 됐다.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의 실험에 따르면 내향적인 아이들은 특별히 자극을 잘 받는 편도체를 가지고 있어서 낯선 물체를 보면 꿈틀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좀 더 경계심을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외향적인 아이들은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외향적인 아이들은 '담장에 몇 번 올라간 다음에는 곧 둔감해져서 지붕에 올라가게 된다고 한다.' 이 구절을 보니 둘째가 그렇게 높은 데 올라가길 좋아하는 이유, 그렇게 창의적으로 갖은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또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도브스는 내향적인 아이들을 ‘난초’에 비유한다. 쉽게 시들고 민감하지만 적절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강하고 근사하게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민들레’와 같아서 어떤 환경에서나 잘 자라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을 읽고는 너무 딱 맞는 비유라 웃음이 터졌다.



서로 다른 두 아이는 함께 자라며 서로의 장점을 배워나간다. 낯가림이 심하던 첫째는 아무에게나 인사를 잘 하는 둘째를 따라 동네 국회의원 뺨치는 인사대장이 되었고, 좀체 앉아서 놀지를 못하는 둘째도 진득하니 오빠 옆에 붙어 앉아 집중력을 기른다. 난초는 난초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예쁘다. 둘째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대하기도 어려웠는데 다른 점을 단점으로 보지 않고, 다른 꽃으로 인정하니 육아가 좀 수월해졌다.



 




셋째가 태어난 후로는 동생 본 스트레스도 클 테니 진짜 남을 해하거나 다칠 수 있는 위험한 경우만 안 된다 하자 다짐했다. 그래서 이제 휴지를 다 풀어서 변기에 넣는다던가 물감을 몸이나 옷에 떡칠하는 정도는 별로 혼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집안일하고, 셋째 보느라 바쁜데 '혼자 잘 놀아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생각하고 넘기려고 한다.



방학해서 첫째가 집에 있으니 둘째가 사고 칠 때마다 신고를 해주니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둘이 많이 싸우기도 하고 말로도 힘으로도 지는 둘째가 성질나면 자꾸 첫째에게 뭘 집어던져서 첫째가 속상해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첫째에게 설명을 해준다.



“너는 6살 오빠고 그래서 마음의 힘이 훨씬 세지? 동생은 아직 4살이라 마음의 힘이 약해서 그래. 엄마 말을 잘 듣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대. 동생이 마음의 힘이 세질 때까지 기다려주자.”

  


둘째는 엄하게 혼나고 오빠에게 사과한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배시시 눈웃음을 짓는다. 둘째의 눈웃음은 언제나 그 아이의 첫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태어나자마자 남편이 찍은 사진에서 둘째는 힘들게 엄마 몸속에서 나온 신생아답지 않게 활짝 눈웃음을 짓고 있다. 저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웃음에 나는 다시 한 번 아이에게 고백한다. “사랑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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