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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4. 셋째 재우기




첫째를 키울 때는 초보엄마였기에 되도록이면 육아서의 지침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특히 재울 때 수유하거나 안거나 업어서 재우지 말라는 조언은 가히 맹신했다. 엄마인 나보다, 내 아이보다 전문가의 한마디를 더 믿었다. 이른바 먹놀잠 패턴으로 깬 지 2시간 정도 후에 졸려하는 신호가 보이면 수면의식 후 누워서 재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누워서 기분 좋게 잠드는 건 일주일에 1,2번도 안 됐다.



졸려지면 아이는 칭얼대다 울음이 터지고 다시 진정시키려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결국은 아기띠로 안아 재워서 눕히다 또 깨고 다시 안아 재우다가 다음 수유 시간이 되었다. 돌이 지나서도 자려고 방에 들어가면 첫째는 엄마 몸을 놀이터 삼아 부대끼며 실컷 놀다가 졸려지면 짜증내며 울어대서 재우는데 빨라야 1시간이 걸렸다.



하도 안 자서 '6개월 잠, 9개월 잠, 18개월 잠' 검색해보면 급성장기, 원더윅스, 이앓이, 배앓이 등등 이유는 많았고 그 수많은 이유만큼 절망감도 쌓여갔다. 잠이라는 단어 앞에 '드럽게', '징그럽게' 등의 부사가 난무했다. 정말 세상에서 잠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싶은 시절이었다.







첫째가 14개월 무렵 둘째가 생긴 걸 알고는 제일 먼저 기도한 게 '잠 잘 자는 아이가 태어나게 해주세요.'였다. 그리고 하나도 이렇게 재우기 힘든데 두 아이 낮잠과 밤잠을 어찌 재울까 그 걱정으로 열 달을 보냈다.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두 돌이 안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재울 동안 첫째에게 영상을 틀어준 뒤 누워서 재우기를 꾸준히 시도했지만 역시나 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첫째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조급하고 한참 재우고 있는데 첫째가 들어와 깨워놓으면 너무 화가 났다.



결국 안아서 선잠을 재운 뒤 침대에 누이는 방법을 썼는데 아이가 서기 시작한 9개월까지는 이 방법이 잘 통했다. 하지만 안 잔다고 울며 침대를 탈출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이후로는 결국 업어 재우기 시작했다. 혔으면 자장가 듣다가 곱게 잠들면 참 좋겠는데, 졸려보여서 업었어도 둘째는 절대 고개를 등에 대지 않고 잠에 저항했다. 아무리 서서 왔다갔다해도 잠이 안 들고 내려놓으라며 몸부림을 쳐서 아이 책장에 있는 책을 한 권씩 빼서 거실 반대편 구석에 가져다 쌓았다. 




그러다보면 내 몸이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둘째의 머리가 드문드문 등에 닿기 시작한다. 아이는 그제야 '엄마가 나를 재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하는 거구나'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첫째와 둘째는 유모차나 카시트에서 잠든 아이를 옮기는 것도 두 돌이 넘어서야 더러 성공하기 시작했다.        




바운서 앉혀놓고 설거지하는데 잠들어버렸다. 할렐루야!




셋째를 임신했을 때는 결국 내 기도를 바꾸었다. 다만 '제가 이 시련을 잘 이겨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남편과 나의 유전자 조합에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했다고나 할까.



셋째 때는 처음으로 쪽쪽이도 쓰고 첫째, 둘째를 도저히 조용히 시킬 수 없어서 백색소음도 신생아 때부터 활용했다. 50일 무렵에는 몇 번씩이나 모빌을 보다가 혼자 잠든 적도 있었다. 재우려고 온갖 노력을 해대던 나에게 혼자 잠드는 아이의 출현은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셋째는 백일까지만 해도 누워서 잘 잤는데 뒤집기를 시작한 후로는 역시나 누워서 잠들질 않아서 둘째 때처럼 안아서 선잠을 재운 뒤 누였다. 어깨도, 허리도, 무릎도 아프긴 하지만 이렇게 내 품 안에서 재울 수 있는 것도 고작 몇 달 뿐인 줄 이제 알기에 버텼다.



셋째가 이제 8개월이 넘어 붙잡고 서면서 안아 재우려고 해도 팔다리를 휘저으며 거부하고, 누워 재우려고 해도 첫째의 '어둠의 놀이터'기술을 시전하는 바람에 결국 이 녀석도 업어 재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셋째는 큰 애들이 옆에서 놀고 있으면 딱히 엄마를 찾지 않고 잘 놀다가 아주 졸려지면 칭얼대기 시작해서 그 때 업으면 정말 금방 잠이 든다. 때로 업을 기운마저 없는 때는 수유해서 재우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잠든 반도롬한 얼굴을 한참 보다가 누이기에 '성공'한 뒤, 또 한 번 잠든 얼굴을 들여다본다. 잘 자주는 게 고마워서. 셋째는 수유시간조차도 첫째, 둘째에게 밀려 엄마를 독차지하지 못하기에, 잠드는 시간만큼은 우리 둘 뿐이라 더 애틋했다.







첫째를 키우던 초보엄마 시절과 비교했을 때 셋째를 재우는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울음을 아이의 목소리로 번역해서 듣게 된 것이다. 첫째 때는 재우다 아이가 울면 '얘가 왜 울지? 모유가 부족한가? 가스가 찼나? 잘 타이밍을 놓친 건가?'이유를 찾으려고 하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도 안 자면 '졸리면 자면 되지. 왜 안 자고 사람을 힘들게 해' 라고 생각하며 화가 났다. 하지만 이제는 셋째가 유난히 잠 못 들고 울어대도 그 울음을 "엄마,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요. 아직 혼자 자는 법을 몰라요." 라는 아이의 말로 들으려고 노력한다.



첫째 때는 아직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질 못해서 아이가 '안' 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도 피곤해서 자고 싶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못' 자는 거라고 여긴다. 그리고 엄마인 나의 역할은 자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다섯 해 동안 나를 엄마로 키운 건 팔 할이 잠이다. 안 잔다고 그렇게 짜증을 내던 철부지 엄마가 이제 셋째는 업고, 방에는 첫째를, 거실에 둘째를 눕히고 이리저리 오가며 세 아이를 동시에 재우는 프로엄마가 됐다. 업혀 잠든 셋째를 첫째 옆에 눕히고 둘째도 방으로 옮긴 뒤 나란히 잠든 세 아이를 바라본다. 잠든 아이들의 무구(無垢) 한 얼굴을 바라본다. 내게 온 세 번의 기적, 내가 누리는 세 가지 행복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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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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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자면숨만쉬어도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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