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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사람소소 Nov 04. 2020

2. 쿠키와 개구멍




셋째를 낳고 몸조리하느라 집에만 있다가 오랜 만에 시댁에 갔다. 아기 낳기 전에는 매주 갔었는데 시댁이 1층 주택이고 시골에 있어서 너무 춥다보니 아이 낳고는 자주 가질 못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풍산개인 백구가 돌아다니다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내 잠바자락에 얼굴을 비빈다. 시댁에 오면 아이들 맡기고 백구와 둘이 산책하는 게 낙이었는데 녀석도 오랜 만에 온 나를 반가워하며 같이 산책가자고 하는 듯했다.


 

반가움도 잠시 백구 얼굴을 자세히 보니 왠지 녀석도 얼굴살이 쏙 빠지고 퀭하니 피곤해보였다. 백구도 지난 달에 엄마가 됐기 때문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백구는 지난 해 봄, 생후 4개월 때 우리 집에 왔는데 12월에 강아지 4마리를 낳았다. 저를 닮은 새하얀 강아지 3마리와 잿빛 강아지 1마리였다. 어렸을 적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눈도 못 뜨고 아직 귀도 닫힌 새끼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어머님께 너무 작아서 신기하다고 하니 이것도 많이 큰 거라고 하신다. 지난 주말에 사진 찍어 보내주셨을 때보다 삼분의 일은 더 컸다 하셔서 그 놀라운 성장속도에 놀랐다. 어찌나 토실토실한지 곰새끼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옆에서 듣던 남편은 백구가 원래 밥을 주면 그렇게 허겁지겁 먹는 애가 아닌데 젖을 먹여서 그런지 요즘엔 그렇게 밥을 잘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백구가 철조망을 나와서 마당을 돌아다니냐고 어머님께 여쭈니 철조망 아래에 개구멍을 파서 그길로 드나든단다. 가서 보니 '저기로 몸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얕은 틈이 있었다. 그 얘길 들으니 개니까 네 마리지, 사람으로 치면 네 쌍둥이를 낳아 수유해서 키우는 건데 오죽 힘들까 싶었다. 백구도 이른바 '육견스트레스' 때문에 시달리다 그 온순한 녀석이 개구멍을 파서 뛰쳐나왔다고 생각하니 집이 답답해서 시댁으로 나들이 온 내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났다.


  




시댁에서 집에 돌아와 남편이 큰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집에 나만 셋째와 남았는데, 셋째가 잘 자서 모처럼 자유시간이 생겼다. 무얼 할까 하다가 두유를 따끈히 데우고 몰래 숨겨둔 쿠키를 꺼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쿠키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백구의 개구멍이 생각났다.


 

백구가 개구멍으로 드나들며 마당이라도 쏘다니면서 버텨나가듯, 나도 산후풍이 무서워서 산책도 못 나가고 그저 혼자 있는 시간에, 초콜릿이 가득 박힌 쿠키로 육아의 고단함을 달랜다. '미치겠다, 지겹다, 짜증난다' 싶다가도 애들 몰래 뒷베란다에 숨어 달달한 쿠키를 한 입 베어 먹으면 다시 육아로 돌아갈 힘이 나는 게 내가 찬양해 마지않는 쿠키의 능력이다.



애가 둘일 때까지는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는데 신생아 셋째와 한참 몸으로 놀기 좋아하는 6살, 4살 아이들이 있다 보니 이제는 틈만 나면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쪽잠 자기에 바쁘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완전히 혼자인 시간을 가지니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셋째가 뒤척이기 시작해서 짧은 쉬는 시간은 곧 끝났다. 잠에서 깨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꼭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같다. 너무너무 아쉽지만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펴듯, 수유할 준비를 한다. 때 맞춰 들어온 아이들에게서 추위와 함께 산책하고 싶어지는 바깥냄새가 났다. 봄이 되면 겨울 내내 육아로 고생한 백구와 둘이 신나게, 마음껏 산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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