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이젠 터트려야 할 꽃봉오리
제 평가 받을 필요가 있다
나는 TV 조선이 재방송으로 방영하는 프로그램 '이것은 실화다'를 왕왕 챙겨본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프로그램은 한국인이 실제로 경험한 범죄를 드라마로 각색한 점이 묘미이다. 이 가운데 '다정한 잉꼬부부의 무서운 비밀' 편은 나의 뇌리에 각인됐다.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희생의 의미를 곱씹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우선, '다정한 잉꼬부부의 무서운 비밀' 편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부는 공동으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아들을 정성껏 양육하면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다. 아무런 갈등도 없고 늘 꽃길만 걸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이 부부 마음에는 앙금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서로가 상대방 부모님을 모시는 데 냉대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면, 먼저 남편이 노화로 신체가 허약해진 자신의 어머니가 끼니를 거르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를 애처롭게 생각했다. 이를 방치하면 불효라고 판단한 남편은 아내에게 살 날이 몇 일 안 남은 어머니를 모시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을 듣자마자 아내는 야멸차게 거절했다. "어머니 집이 가깝기 때문에 자신이 수시로 방문해 돌보면 되기 때문에 굳이 같이 살 필요가 없다"는 게 명분이였다.이에 배신감을 느낀 남편은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 한 채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일을 겪어야 했다.
이윽고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가 남편이 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아내의 아버지도 노쇠로 인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컵라면도 제대로 못 드셔 먹던 면발이 방바닥에 너부러졌거나 오줌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이러자 아내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이 싹텄다. 용기를 내 남편에게 "아버지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곧 돌아갈 것 같아 같이 살면서 부양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를 들은 남편은 자신의 당한 일을 회상하면서 고까워했다. 보복심리가 발동한 남편은 매몰차게 아내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다. 아내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이 후 멀지않아 아내의 아버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내전을 치른 부부는 서로를 향한 적대감은 감춘 채
식당 일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상대를 저격할 기회를 갖게 됐다. 우연찮게 부부가 단골손님이 화장실에서 어떤 고객과 통화하는 내용을 엿들은 결과 이 손님이 청부살인업자란 걸 알게 됐다. 이러자 눈엣가시가 된 상대방을 제거할 틈을 가졌다는 믿음으로 이들 부부는 이 업자에게 돈을 전달하며 각 배우자를 죽여달라고 청부했다.
돈을 받은 이 업자는 이러한 내막을 알았기에 처음에는 이 청부에 관해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이내 돈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부하직원과 함께 일시에 이들 부부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마침내 당도한 이 집에서 이들 부부에게 정다운 말을 전달한 뒤 집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 업자들은 집 안에 놓인 베개를 움켜잡은 뒤 갑자기 이들 부부 얼굴에 눌렀다. 이 사이 이들은 점차적으로 숨이 끊어져 질식사에 이르렀다.
이러한 범죄는 경찰관이 의심을 품으면서 조사에 착수한 끝에 진실이 드러나면서 세상에 밝혀지게 됐다.
이를 TV로 본 나는 애석한 마음이 생겼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정을 형성한 이들 부부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희생을 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 것으로 확신한다. 희생의 긍정적 면은 지금 당장은 손해를 맛 봐 힘들지만 또 다른 고귀한 결과물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즉 사돈어른이 처한 애처로운 상황을 남 몰라라 하는 대신 정성스레 돌봤다면 이들 부부는 더욱 큰 행복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부에게 귀감이 되는 잉꼬부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글을 마치기 전에 위에서 서술한 이야기에 연장선을 그어 작금 대한민국을 덮친 저출산 현상, 결혼 기피 등 사회문제들도 희생을 외면하는 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 2008년 서브모기지론 사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등 굵직굵직한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출산과 결혼을 하는 게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라났다. 이 와 동시에 자기 입에 풀칠하는 게 우선이라고 흐름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간 한국사회가 평가절하하거나 평가조차도 하지 않아 보상이 제대로 처리 안 된 '희생'에 관해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어떤 공동체이든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유지와 번영이 불가능하다. 이는 가깝게는 각 자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되고 거시적으로는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 군사정부를 무너트리고 민주화를 일군 민주열사를 상기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이 낳은 성공학자 나폴레옹 힐은 "희생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연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