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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금이 Nov 05. 2020

하얀 숲 001

프롤로그

[주택가의 빌라  2 채를 매입해서, 수 십억 원 대의 도박판을 벌인 주부들이 무더기로 붙잡혔습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빌라 내에는 두 채를 연결하는 비밀통로까지 있었습니다. 박승윤 기자입니다.]


[저희 도박 안 했어요-음성변조.]


“어이구~! 저 미친년들!! 밥 먹고 할 짓이 없으니까 도박판이나 들락날락거리고…쯧쯧!!”

병원 보호자 대기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환자 가족과 간병인들이 tv 뉴스에 나오는 소식에 저마다 혀를 차며 현장 영상에 잡힌 주부들을 험담하고 있었다. 모두들 환자 간병을 하느라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수다를 떨며 시나브로 풀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경기 인근의 D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A 씨가 병원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습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간호사 A 씨는 일주일 전 자신이 저지른 투약사고로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자 괴로워하며 우울증세를 호소했다고 전했습니다. 사망 현장에는 타살과 관련된 흔적이 없고……..]


“근데, 저기 저 뉴스에 나오는 저 간호사... 이 병원 사람이래요~!”

“아이고~ 진짜? 우리가 아는 간호사인가?”

“에이~! 그건 모르고~. 이 병원에 간호사가 어디 한둘인가요?”

“하긴….”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 먹나~ 병원 밥도 이제는 질려.”


알고 있던 정보가 바닥나자 화제를 바꾸며 슬슬 자리를 뜨는 사람들 옆으로 한 여자가 입 안에 여린 살을 깨물며 이제는 날씨 소식을 전하는 TV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누구도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간호사 A의 소식에 귀 기울이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저마다의 판에 박힌 일상 속에 뉴스로 접하는 누군가의 불행을 스치는 바람 대하듯 무심히 흘려보낼 뿐이었다. 


오전 11시 30분. 환자들의 점식 심사가 분주히 날라지는 시간. 누군가는 점심메뉴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누군가는 식후의 달달한 커피를 생각하며 오전의 스트레스를 삭힌다. 


그리고 누군가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 한 채 벼랑 끝에 서서 자존감과 인간성을 몰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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