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금이 Nov 05. 2020

하얀 숲 002

발견

4월의 벚꽃은 너무 짧다.


따뜻한 봄볕에 슬슬 꽃들이 봉우리를 피우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만개해 버리고, 보기에 적당하다 싶으면, 바람과 비에 휩쓸려져 버렸다. 4월의 봄비는 올해도 벚꽃을 몽땅 쓸어가 버릴 듯, 밤새도록 쏟아져 내렸다. 간호사 혜진의 방 창문으로 내리 꽂힌 비는 자는 내내 그녀의 단잠을 방해했고, 출근하기 위해 맞춰 놓은 알람은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통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괜히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다가 얼핏 선잠이 들어 지각을 하기보다 지금 일어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혜진은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아무리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와 푸석푸석하고 거칠어진 피부. 밤, 낮이 뒤바뀐 생활 덕에 겪는 생리불순과 불규칙한 스케줄로 인한 남자 친구와의 결별. 이것이 32살 김혜진의 현주소였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하고 피로한 삶에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단잠까지 방해받는 통에 컨디션이 최악이다.


그래도 비 내린 다음 날, 상쾌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니 가슴속이 뻥 뚫리면서 머릿속에 잔존하던 두통이 그나마 가라앉았다. 혜진은  병원의 오르막 길을 좋아했다.  병원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양쪽으로 심어진 무성한 벚꽃 나무들은 병원 안 혜진이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반대편 나뭇가지 끝이 닿을 듯 말 듯 무성한 벚꽃들이 아치형으로 피어있는 병원 입구는 심지어 먼 곳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의 장관이다. 봄 한 철이지만 솜사탕 피듯 송이송이 달려있는 분홍빛깔의 벚꽃 나무가 혜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3교대를 하느라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벚꽃 나무를 보며 그나마 위로받는 요즘이다.


“음~~~ 좋다. 아… 근데 밤새 비가 와서 그런가? 꽃잎이 다 떨어졌네…..”


마치 눈이 온 듯 바닥 전체를 하얗게 뒤덮은 벚꽃 잎들은 빗물을 접착제 삼아 서로서로 들러붙어 병원 정문 입구 길을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아름답지만 병원의 청소 여사님들은 한 숨을 내쉴 장관이 틀림없다. 핸드폰을 보니, 오전 6시 30분.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오려는지 아침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사위는 어둑했다.

그래서일까? 10미터 앞의 새하얀 물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세탁 주머니 같은데 왜 이런 곳에…. 운반하시는 분이 실수로 떨어뜨리고 가신 건가? 병원 입구에 이런 거 놔두면 안 되는데……’


혜진은 모처럼의 여유로운 새벽 출근 시간 덕분에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세탁물 주머니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꽤나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놓여 있었는지 뒤 편에 자리 잡은 벚꽃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들이 리넨이 잔뜩 들어차 있을 주머니를 수북이 덮고 있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꽃무덤처럼 보이기도 했다. 져 버린 꽃이 안타까워서였을까? 찬란했던 젊음은 가고 노화의 길로 들어선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혜진은 저만치 꽃무덤이 애처롭고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혜진은 주머니를 본관 건물 한쪽 구석으로 밀쳐 놓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혜진이 주머니 입구의 손잡이 찾기 위해 주머니를 잡는 순간 4월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싸한 기운을 퍼트리며 그녀의 뒷목을 휘감고 지나갔다.


“손잡이가 이쯤 있어야 하는데…… 아악~~~~~~!!!!!!!!!!!!!!”


작가의 이전글 하얀 숲 0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