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학교라고요?
늘봄학교의 전면 도입에 관한 소식으로 학교가 시끄럽다.
25년에는 전면 도입을 26년에는 전 학년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는 내용.
총액인건비제도에 묶여있는 지방공무원의 인건비와 예산을 늘려서 지원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과연 지금도 학교 소속 지방공무원 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지방직 공무원을 추가로 배치해서 한다는 늘봄학교에 얼마나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을까?
신뢰가 이미 사라진 상황에서 늘 우려와 걱정 그리고 답답함이 몰려온다.
우선 늘봄학교는 정말 확대되었을 때 그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부모는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다. 는 것은 어디까지의 범위일까?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학교」
이 어렵고도 훈훈한 단어가 연속된 문장
학교 내 교권 추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물며 교사도 아닌 담당자들이 초등학생 저학년을 돌보는 상황 중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 중
담당자는 어디까지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책임을 져야 하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것인가?
과연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것은 "늘봄의 업무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는 보장되는가?
우리는 그 누구도 돌봄
그중에서도 학교 돌봄의 범위가 어느 선까지 필요한지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결코 학교가 가정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돌봄을 맡기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그 생각의 차이에 대한 대책은 준비되어 있을까?
결정은 교육부에서 내리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어린이집을 보내던 엄마들 사이에 7살 때는 유치원이 낫다는 말이 있다.
학교는 어린이집처럼 보살펴주지 못하는데 어린이집만 다니던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유치원을 보내야 학교적응을 위해서 낫다는 이야기다.
이는 교육과 보육의 차이를 생활에서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늘봄은 어디를 지향하고 있을까?
원하는 아이들을 그저
" 오냐오냐, 안전하게 있으렴."
인지
" 늘봄에 있으면 이것저것 다 배울 수 있어."
인지
" 늘봄은 다 할 수 있어."
인지
" 늘봄은 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아닌 것도 있어"
인지
늘봄의 당사자인 아이들을 바라보자.
교육과 보육은 결국 누군가가 타인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상황이다.
가르치고 돌보는 주체는 책임과 부담을 느끼게 되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결국 따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이들은 그저 따라만 가는 것이다.
진정 그들이 원하는 학교는 어떤 것일까?
원하는 수업을 개설하면 끝일까? 부모의 선호도가 포함된?
과연 늘봄이 시작되고는 어떻게 만족도를 조사할 수 있을까?
아이를 얼마나 잘 "늘봄"하면 만족도가 높아질까?
그것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학교 현장에는 그 누구도 "늘봄학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시작만 하면 된다는 걸까?
시키면 하는 공무원이니까 시켜보겠다는 걸까?
근원적으로 아침과 저녁이 없는 삶에 의해 시작된 아이들의 돌봄 공백을
왜 다른 노동자가 채워야 할까?
아니 불가피한 공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에 대한 반성과 개선의 노력 없이 그저 돌봄으로 채우라는 이야기만 나올까?
사교육시장에는 단계별 아이의 공백이 없도록
시간표를 촘촘히 짜는 것이 가장 바른 것처럼 말한다.
우리의 늘봄이 그것과 차이가 있을까?
그저 고등학생학원 윈터스쿨마냥 10시에 가서 10시까지 딱 잡아두고 밥도 주고
시간별로 프로그램 짜서 넣어놓는 시스템과 다른 게 있나?
좀 더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고민을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 (교육부 2월5일자 보도자료)
1학기에 2,000개교 이상, 2학기에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늘봄학교 도입
- 희망하는 초 1학년 누구나 늘봄학교 이용 지원, 2026년까지 모든 학년으로 확대
- 초 1학년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연중 매일 2시간 무료 제공
- 교사의 늘봄학교 행정업무 부담 해소를 위한 늘봄지원실 설치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