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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y May 02. 2024

나의 다이어트 해방기

62kg -> 47kg 기적의 다이어트 성공기

 작년 화이트데이. 남편이 신나는 얼굴로 집에 들어오더니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올해는 안 까먹었지? 이거 엄청 비싼 거야.”

24가지 서로 다른 맛을 품고 있는 벨기에산 프리미엄 초콜릿. 뚜껑만 열었을 뿐인데 달콤한 초콜릿 향내가 코끝을 어지럽혔다. 꼴까닥 침이 넘어갔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험한 소리가 나가고 말았다.

“나 곤약 다이어트 시작한 거 몰라? 왜 이런 걸 사와.”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심통을 애꿎은 남편에게 내곤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았다. 이번엔 화장대 거울에 비친 뚱뚱한 배가 내 심기를 건드린다.

곤약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삼 일째인데. 이번 다이어트도 또 실패인가!

초콜릿 한 알도 무서워서 맘대로 못 먹다니! 한숨이 절로 났다.


“당신은 다이어트라도 했으니 그 체중 유지하는 거야. 다이어트 안 했으면 어쩔 뻔?”

남편은 농반진반 이런 말을 했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의 나. 30년째 52kg을 향해 다이어트 중이지만, 10kg 넘는 갭을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 다이어트를 포기해야 할까?


초등 3학년 신체검사에서 ‘비만’ 등급을 받았다.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머리카락으로 둥그런 볼 선을 가리고, 윗도리로 커다란 엉덩이를 가리고 다녔다. 그때쯤부터 먹을 때 남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많이 먹으니, 살찌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소리는 너무도 듣기 싫었다. 특히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크림빵처럼 단 음식들을 먹을 때는 그 황홀한 달콤함을 입에 넣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남들이 ‘저런 걸 저렇게 게걸스럽게 먹으니, 살이 찌지’라고 쑥덕거릴까, 걱정해서였다. 여럿이 함께 먹어야 할 때는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오면 폭식하게 됐다.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소문난 것들은 뭐든 따라먹었다. S라인 몸매 여배우가 광고한 식이섬유음료는 100병도 넘게 마셨다. 원푸드 다이어트가 유행했을 땐 바나나, 사과, 토마토만 먹으며 몇 주씩 보낸 적도 있다. 결과는 모두 실패. 곤약은 칼로리는 낮고 포만감을 준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평생 다이어트를 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내 다이어트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지, 의구심이 생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먹어서 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나처럼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에다 운동까지 질색하는 사람은 에너지 소비량이 적기 때문에 먹는 족족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설령 칼로리 제로의 다이어트 음료조차 내 몸속에 들어오면 살이 되어버리니. 내겐 먹는 다이어트는 부적합하다는 결론. 그렇다면 굶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노상 굶을 수는 없는 노릇. 어디 잘 굶는 방법 없을까?


평소 같았으면 반 상자는 끝장 냈을 초콜릿엔 손도 대지 않고 스마트폰만 노려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슬며시 다가와 앉았다. 좀 전에 낸 짜증이 미안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잘 굶는 법 검색 중이야. 이번에는 꼭 빼고 말 거야.”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간헐적 단식을 제안했다. 하루 16시간만 단식을 하고, 나머지 8시간 동안은 마음껏 원하는 음식을 먹는 방법이라며, 내가 하겠다면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쉬운 방법이? 오늘부터 당장 하자!”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를 단식 시간으로 정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오후 5시부터 단식이니 지금은 먹어도 되는 시간. 초콜릿 상자에서 하트모양의 화이트초콜릿을 골라 입 안에 넣었다. 달달한 고소함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며 콧속을 간질였다. 이 맛난 걸 사다 준 남편을 째려보고 화낸 게 미안했다. 소라 모양의 초콜릿 한 알을 남편 입 속에 쏙 넣어주었다. 3시간 후부터 단식이다. 필승!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뿐인데, 남편과 나 모두 살이 3kg 넘게 빠졌다. 의외로 빠른 결과에 우리는 기쁘고 놀랐다. 하루에 몇백 그램씩, 어떤 날은 1kg이 넘게 체중이 빠졌다. 나날이 줄어드는 체중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랐다. 3개월 만에 나는 드디어 꿈의 몸무게 52kg에 도달했다. 야호!


간헐적 단식이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8시간 동안은 뭐든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몸무게에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6시간 공복은 전혀 괴롭지 않았다. 목표 체중을 달성한 후론 공복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먹을 때 남의 눈치를 보는 버릇도 사라졌다. 뭐든 당당하게 먹다 보니 음식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 몰래 빨리 먹어 치우는 습관도 사라졌다. 하루에 고작 8시간만 먹을 수 있으니, 먹거리를 고르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아침은 16시간 단식하느라 고생한 위와 장을 위해 누룽지나 떡국 같은 부드럽고 편안한 음식을 골랐다. 점심은 하루의 클라이맥스로 맛깔스러운 음식을 골랐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구워 싱싱한 채소 쌈과 곁들이고, 짜고 기름져서 다이어트의 적으로 불렸던 짜장면 짬뽕도 한 그릇씩 시켜 국물까지 싹싹 먹었다. 죄책감 따위는 없이 필라델피아 치즈와 버터를 듬뿍 올린 베이글을 먹는 건 행복 그 자체였다.


오늘 점심 메뉴는 피자다. 냉동 피자를 꺼내 커다란 접시에 담은 후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수북이 얹는다. 전자레인지에 3분. 모차렐라 치즈가 형체를 잃고 녹아내리면 프라이팬에 옮겨 담아 약불로 3분 정도 구워준다. 이렇게 하면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는 피자의 맛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매콤한 핫소스와 시원한 콜라를 곁들인다. 피자 향기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서재에서 나온 남편이 맨손으로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리며 웃는다. “점심 먹고 요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자.” 나는 진한 커피에 달콤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이제라도 알게 된 먹는 즐거움. 행복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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