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안
가족끼리 둘러앉아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으며 이야기한다. 오늘 책을 도서관에서 모두 읽어서 자랑을 하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본다.
나 : 내가 하루 종일 [레미안] 책을 읽었거든.
딸 : 엄마, 레미안이 아니라 데미안 아니야?
나 : 아, 맞다. 데미안. 웃기려고 그런 거지.(나는 늘 이렇게 엇박자이다. 단어 선택에서 늘 이런 식이다.)
딸 : 엄마, 예전에 막 화를 내더니 이제는 말을 술술 잘도 넘기네.
나 : 인생에 웃음이 있어냐 된다더라. 그래야 살맛이 나지? 안 그래?(딸에게 무식이 탄로 나서 한참 웃는다. 레미안이 왜 거기서 나오니?
일요일 아침에 의무감으로 전날 서점에서 구매한 [데미안]을 책가방 속에 넣고 터덜터덜 집을 나선다. 책이 얇디얇아 오호 휘리릭 읽겠는데? 뭐야, 고등학교 다닐 적에 필독서로 시험에 한두 번 나오기도 했으니 하루 종일 읽으면 되겠네. 그런 다짐을 하며 도서관 의자에 앉아 읽는다. 그런데 어째 아침을 많이 먹어서인지 잠이 온다. 엎드려 자고 일어나 읽기를 반복하고 이해가 가지 않아도 꾸역꾸역 삼킨다. 눈은 책을 지나가지만 머리는 이해가 안 돼서 책장을 되돌리고 싶으나 밥하러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니 빠르게 털고 일어나야 하는 의무감으로 되든 안 되든 가본다. 헤세가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문장을 배배 꼬아 피곤하게 하는 건가? 노벨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그이기에 마음의 깊이를 헤아려야 하는데 나의 머릿속은 멍하다. 책 속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축약하면 이렇다.
자신에게 이르는 길
데미안/헤르만 헤세, 229p
46살의 어른이 된 나를 잘 모른다. 아직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마음이 달 뜨는지, 내 어릴 적 추억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순간에 내가 엄마를 속상하게 했는지, 학교에서 누가 나를 괴롭혀서 마음이 아팠는지(언니가 그놈을 운동장에서 이단 옆차기로 날렸다/나의 데미안은 울 언니), 사고뭉치인 나를 부모는 무어라 이야기했는지, 부모는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좋아하는 오빠에게 전화해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회사 다닐 적에 직장 상사를 좋아해서 버스에서 그에게 무슨 내용의 쪽지를 주었는지, 남편을 만났을 때 처음 무슨 말을 했는지, 갓 태어난 아이의 손을 잡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이든 모른다. 알지 못한다. 잘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는 동물처럼 모른다를 입에 달고 산다. 알아야 할 시간도 없고 알고 싶지 않았다. 살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모두 학교에 다니고 남들이 하니까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커다란 사건 사고 없이 맹하게 산다.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내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사는가? 나의 딸을 왜 낳았지? 이제야 깊이 생각할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
부모의 행동
아이가 뛰다 넘어진다.
부모는 불안하여 급하게 뛰어 나선다.
우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다친대를 살피며 여기저기 둘러본다.
왜 그렇게 호들갑인가?
내 새끼가 그렇게 귀한가?
평생 아이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치면 비둘기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모두 해결해 주려는가?
그냥 스스로 일어나게 두는 게 어떤가?
나는 딸에게 이야기 한다.
"그렇게 울 거면 집에 들어가자"라고 말하면 눈물을 닦고 벌떡 일어나 친구들하고 잘도 논다.
마트에서 아이가 눈이 돌아간다. 사고자 하는 목록을 정하고 갔으니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 줄 수 없다. 아이는 갖고 싶은 물건을 못 사니 떼를 쓴다. 그러니까 반드시 아이와 마트에 가기 전에 이야기한다. 무슨 물건을 사려고 가는지 목적을 확실히 이야기한다. 돈이 줄줄 새지 않도록 미리 입막음 한다. 어린아이도 눈을 똘망 똘망 뜨고 알아듣는다. 왜 어린애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생각을 하며 작지만 그도 인간이다. 다음번에 손잡고 마트에 가면 절대로 무언가 요구하지 않는다.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딸은 아주 일찍부터 깨친다. 아이 앞에서 카드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학교에 가는 아이는 옷을 정하는데 한참이다. 아무거나 정해준 옷을 입으면 좋겠는데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는다고 난리다. 몸에 열이 많아 그런가 보다 하고 딸이 원하는 대로 하게 둔다. 학교 선생님과 동네 엄마들이 뭐라든 신경 끈다. 딸이 정했으면 그대로 둔다. 그렇게 투닥거리다가는 큰일 난다. 시간이 휘리릭 흐른다. 신랑이가 길어지면 절대 안 된다. 회사에 늦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동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네 딸 한겨울에 반바지 입고 왔더라.
동네 소문이 그렇게 빠르다. 딸을 얼어 죽이려고 그러냐 말이 많고 참견이 심하다. 마음이 속상한 것도 없고 아무렇지 않다. 딸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딸과의 관계의 우선 순위는 그녀의 행복감, 만족감이다.
중학교때 아이는 전교회장에 나간다. 혼자 포스터 만들고 선거 피켓을 만들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나선다. 덜컥 겁이 난다. 만약 아이가 전교 회장이 되면 학교를 들락날락 해야 되는 건가? 회사일이 바빠서 안됐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나 아이는 전교회장이 되었고 다행히 내가 학교를 갈 일이 없었다. 혼자 모든것을 알아서 척척 해내니 따로 선생님을 만나서 무언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무언가 스스로 하면 에너지가 2배로 생성 되는가 보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은 오늘도 소리 내어 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잠도 못 자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똑똑 흘린다.
뭐 먹고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철학과나 갈까?
그건 아니야. 그건 이니지.
나는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성적이 조금 부족하지만 어릴 적부터 독립을 강요했더니 그래도 고민은 하고 있나 보다.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미치고 팔짝 뛰나 보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방향을 잃고 헤맨다. 그렇게 고민하고 몰두하고 성장하려고 그런가 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 부모가 나서서 무언가를 제시하고 정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독립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다. 부모의 바른 행동이 아이의 독립을 앞당긴다. 오늘도 학교나 학원에서 생활하기 바쁜 아이들이 독립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사는지 안타깝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