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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pr 26. 2021

꽃구경의 종착지는 아파트

꽃구경보다 아파트 임장이 좋은 나이

 언제부턴가 엄마랑 같이 어딘가를 걸어갈 때마다 엄마는 수시로 걸음을 멈추신다.


 "어머, 너무 예쁘다!"


 엄마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커다란 해바라기도 아니고 강렬한 색의 장미도 아니었다. 내 짧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작은 들꽃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구석에 피어 있었지만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내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그런 들꽃이었다. 엄마의 감탄하는 문장 뒤에 나는 마땅히 동조할 말을 찾지도 못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감도 하기 어려웠다. 내겐 아직 그냥 갈 길 빨리 가는 게 중요한가 보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자꾸만 왜 발걸음을 멈추냐는 재촉에 두어 번 정도 엄마는 내게 섭섭함을 토로하셨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다 꽃밭일까'라는 노래가 나올 만큼 엄마들은 꽃을 좋아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찾게 된다, 뭐 그런 종류의 말들을 여러 번 들어왔지만 아직 나이를 덜 먹었는지 온 마음으로 공감하지는 못했었나 보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가사를 보다 보면 뭉클해진다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보다는 화분이, 보기만 할 수 있는 화분보다는 뜯어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작은 그릇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드는 화분보다는 공원에 실제로 살고 있는 꽃과 나무들이 좋다. 꽃구경이라면 매년 4월 초에 벚꽃 놀이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내가 나도 모르게 주말을 앞두고 꽃구경 명소를 검색하고 있었다. 벚꽃이 지나간 뒤에 사람들은 겹벚꽃 놀이를 즐기고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김없이 월화수목금의 레이스에서 지쳐버린 나는 주말을 맞이하여 기분 전환 겸 꽃구경을 가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꽃구경보다 콧구멍에 바람 쐬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강가에 있는 널찍한 공원에 도착하기 10분 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공원에서 나가는 차도 꽉 밀려 있었고 들어가는 차도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나가는 차들이 많으니 주차장에 자리가 나겠다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대부분의 차들은 주차장만 한 바퀴 돌고 공원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시. 주말을 맞아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콧구멍에 바람을 쐬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아직 코로나가 심각한 단계인데, 우리도 여러분들도 이렇게 다 나와 있구나.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인근 녹지를 클릭했다. 명소라고 불릴 만큼 크고 멋진 공원이 아니라 그런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어라, 그런데 차에서 내려 공원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이상하다. 어느덧 우리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오갈 때마다 본 아파트였다. 고속도로 근처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막연하게 이런 데 살면 차 소리 때문에 무지 시끄럽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웬걸, 단지 안으로 들어오니 고속도로 바로 옆이라는 건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조용했다. '건폐율'이 낮아서 아파트 단지 안이 공원처럼 멋지게 조성되어 있었다. 중앙 정원 옆으로 주차장 지붕이 기다랗게 펼쳐진 모습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모 여자대학교의 캠퍼스와 비슷해 보였다. 남편도 여기 아파트 단지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새 폰으로 네이버 부동산을 켜놓고 있었다. 외곽이다 보니 도심에 비해 가격도 경제적인 편이었다.


 남편은 여기에 산다면 출퇴근이 얼마나 걸릴지 찾아보았고, 나 역시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며 버스 정류장과 주변의 편의시설을 탐색했다. 상가에 있는 마트에 들어갔다가 부동산 앞을 서성거렸다. '다행히' 상가에 있는 모든 부동산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스갯소리로 부동산이 오늘 문을 닫았기에 다행이지 열려 있었으면 지금 하나 사서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남편도 그저 껄껄 웃었다. 여기저기 신중하게 고르는 사이에 집값이 쑥쑥 올랐다. 처음 알아볼 때만 해도 매수가 가능했던 아파트가 이제는 우리의 능력 밖이 된 곳이 몇 군데나 된다. 예전 집주인도 마트에 장 보러 왔다가 충동적으로 이 집을 샀었다는데 우리도 꽃구경을 갔다가 집을 살 뻔했다. 물론 안 샀으니 하는 말이지만. 


 애초에 계획한 대로 꽃구경을 했어도 좋았겠지만 이른바 '아파트 임장'도 꽤 재미있었다. 꽃구경이 미술과 체육 시간이라면 아파트 임장은 수학과 사회, 미술, 체육 등이 융합되며 다양하게 두뇌를 자극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ㅎㅎㅎ 이게 뭔 소리람?) 


 꽃구경을 검색하면서 엄마가 말씀하셨던 그 '나이'에 조금씩 다가가는가 싶은 감상에 잠시 빠졌다가, 뜻밖에 아파트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새삼스레 '젊음'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아직 나는 꽃구경보다 아파트 임장이 좋은 나이인가 보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아파트도, 꽃들도, 나무들도 너무나 많다. 더 열심히 둘러봐야 한다. 그나저나 내 집은 어디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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