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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조 Aug 04. 2021

멈춰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의 시간은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걸까

 브라질 대 멕시코의 올림픽 축구 4강 경기를 보면서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동원해 또 아는 척을 해본다. '멕시코' 하면 에르난데스! 머리띠를 하고 금발을 휘날리며 달리던 에르난데스! 그러자 남편은 그럼 블랑코도 아냐고 물어본다. 글쎄, 에르난데스는 알겠는데 블랑코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편은 공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점프하던 블랑코의 모습이 그렇게도 인상적이었단다. 우리나라는 그런 블랑코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네덜란드 선수들은 블랑코가 다리 사이에 끼운 공을 거침없이 빼앗았단다. 오오, 그런 선수가 있었단 말인가! 


 브라질인데 왜 호나우딩요가 나오지 않았냐고 장난 삼아 물었다. 호나우딩요가 언제 적 선수냐더니 퀴즈라면서 호나우딩요의 원래 이름이 뭔지 아냐고 묻는다. 이런 게 무슨 퀴즈라고, 호나우두잖아요! '작은 호나우두'라고 해서 호나우딩요라고 했죠. 의외로 아는 게 많다는 남편의 말에 우쭐해하며 다시 텔레비전 속 축구 경기로 시선을 옮겼다. 글쎄, 그런데, 2021년의 축구 경기에는 에르난데스도, 블랑코도, 호나우딩요도, 호나우두도 나오지 않았다. 


 멕시코의 블랑코를 검색해 봤더니 '블랑코를 기억하면 아재'라는 어느 카페의 글이 먼저 보인다. 에르난데스는 알지만 블랑코는 모르던 나는, 남편만 혼자 아재가 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길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어지는 역도 경기를 보는데 장미란 선수가 나와서 신기록을 세울 것만 같고, 며칠 전 배드민턴 경기를 보는데 얼른 이용대 선수가 나와야만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도대체 몇 년대를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웃어넘기지만 더 많이 많이 나이 먹어서도 이러고 있으면, 웃음이 아니라 눈물을 삼킬 것만 같다.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선수들


 올림픽을 한 번 할 때마다(월드컵도 마찬가지) 시간은 4년씩 앞으로 나아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다음 올림픽은 중학생 때였고, 그다음 올림픽은 고등학생 때였고, 그다음은 대학생 때, 그다음은. 하는 건 정말 싫어하지만 보는 건 좋아해서 올림픽이고 월드컵이고 늘 챙겨 보는 편인데 한 번 각인된 기억이 좀처럼 업데이트 되지를 않는다. 벌써 이래서 어떡하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도파민이 나이가 들수록 분비가 감소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 몸 밖의 시간은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지루한 일상은 기억의 밀도가 낮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워어어어얼화아아아아수우우우모오오오옥그으으으음토일은 여전하고, 수업 시간은 1분도 참 안 지나가는데 쉬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읽은 연구 결과와 나의 심리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려다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복잡한 생각을 싫어하는 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원래 그랬다.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의 속도가 어떤지는 모르겠고, 하루하루 살다 보니 지나온 시간의 덩어리들이 커져서 놀라울 뿐이다. 



 벌써부터 올림픽이 끝나는 게 아쉬워져서 내년을 기대해본다. 내년에는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까지 체육대회가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나이 먹는다는 생각은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저 또 나는, 쇼트트랙을 볼 때면 안현수 선수를 떠올릴 것이고 피겨를 볼 때면 김연아 선수를 보고 싶어 할 것이고, 프랑스 축구 경기를 볼 때면 앙리의 안부가 궁금하겠지. 나의 시간은 어디쯤에서 맴돌고 있는 걸까.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직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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