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조 Aug 23. 2021

15년 만의 학생 식당 방문기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난겨울의 어느 날, 볼일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경로를 수정해 다니던 학교 근처를 돌아본 적이 있다. 길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었고, 몇 군데는 꽝꽝 얼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코는 새빨개지고 마스크 안쪽에 이슬이 맺힐 정도의 추운 날씨였다. 


 당연히 동네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알던 식당이나 상점은 거의 다 유행에 맞게 업종을 변경한 상태였다. 요즘 아이들에게 급식에 어떤 메뉴가 나왔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반마다 '마라탕' 얘기가 나오는데, 대학가에도 마라탕 집이 이렇게나 많아졌다니! 내가 학생이었을 땐 먹어본 적도 없었던 메뉴였다. 무덤덤하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서 어딘가 들어가 혼밥을 하기로 했다. 정문 쪽에 다니던 백반집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서는 주로 순두부 백반을 시켰던 것 같은데, 식당 문을 잡고 옆으로 밀었는데 무슨 일인지 열리지 않았다. 더 힘을 줘서 다시 열어볼까,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학생 식당에 가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방학 중이라 학생 식당 한 곳만 영업하고 있었고, 메뉴도 두 가지밖에 없었다. 내가 다닐 때와는 출입문 방향도 바뀌어서 닫힌 문 쪽을 기웃거리다가 반대로 겨우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QR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학생 확인을 하는 건가 마음이 작아져서 순간 긴장했다. 


 학생 식당 풍경은 싹 달라져 있었다. 푸드코트처럼 리모델링했고, 서브웨이 같은 외부 음식점까지 들어와 있었다! 여기 한 군데에만 와도 선택지가 많아서, 나 같은 사람은 매일 고민이 될 것 같았다. 


 4,500원짜리 식권을 사면서 새삼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내가 학생이었을 땐 여기서 가장 저렴한 메뉴가 1,500원이었다. 정말 밥그릇과 국그릇 하나씩, 김치와 콩나물 반찬뿐이었던 수준이었지만. 거기에 300원 정도를 추가하면 볶음밥 같은 특식을 먹을 수 있었고, 조금 더 보태 2,200원을 내면 반찬이 서너 가지 정도 나오고 국도 좀 더 푸짐하게 나왔던 것 같다. 저렴한 만큼 식판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건데, 돈 생각보다는 학생 식당이 형편없다는 불평만 들었다. 많이도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때 그 식판이 이렇게 어렴풋이 그리워질 줄이야. 4,500원 하는 식판을 내려다보니 왠지 요즘의 학생들도 똑같을 것 같은 느낌이다. 


 코로나 때문에 다 가림막을 쳐놓고 테이블마다 대화/통화 금지 스티커를 붙여놨다. 덕분에 혼밥 하기는 편했지만,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와서는 띄엄띄엄 앉아 조용히 밥만 먹고 나가는 학생들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가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그 시절만의 싱그러움, 풋풋함, 가능성, 에너지, 열정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이곳저곳 캠퍼스를 구경하곤 한다. 나도 대학생 같아 보이려나 헛된 기대도 잠시 품어봤다가, 대학원생, 박사 과정 위로 위로 나이를 짚어보다가,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코로나 시대의 학생 식당, 4500원짜리 찌개 정식



 인터넷에 하나씩 올라오는 내 책의 후기들을 읽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시험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긴장되는 마음이다. 이제 와서 피드백을 받는다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내 손을 떠났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손에 땀이 쥐어지는지. 다음 소설의 소재를 하나둘 정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며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다독여 보지만 도저히 안정이 되질 않는다. 


 후기를 올려주신 분들의 연령대도 성별도 알지 못하지만, 의도했던 대로 생각하고 느껴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에 꾸벅 인사라도 올리고 싶어진다. 말랑말랑, 몽글몽글이란 단어가 정말 말랑말랑하고 몽글몽글하게 큰 위로가 된다. 결론이 '너무나도 재미있더라고요!!'라고 쓰인 후기를 보고는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다른 작가 분들도 이러시는지, 내가 초보라 그런 건지. 

 

 심각하지 않게, 우울하지 않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공감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안 그래도 살아가는 게 힘이 드는데 그 무게감을 더해주는 글을 나는 읽고 싶지 않아서,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앞으로도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또 책을 낼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아 그냥 오늘의 일과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키니진이 엄마 바지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