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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한 Mar 29. 2023

AI는 예술의 "어디까지" 대체하는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인간 예술의 영역과 아닌 영역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제이슨 앨런 (2022)

위 작품은 AI가 그린 그림이다. 정확히 말하면, 챗GPT의 그림판 버전인 "미드저니"라는 AI가 그린 초안을 바탕으로, 창작자에 의해 "변화의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2022년 8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공모전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AI의 개입으로 예술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수상작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AI가 예술의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AI가 그린 인물화는 사진과 구분이 가지 않을만큼 현실적이다. (심지어 이상적인 외형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의 카테고리를 대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가능한 예술과아닌 영역은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스토리가 담긴 예술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창작자가 AI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감동이 식는다면 AI는 대체할 수 없다.



[대체 불가능한 예술 : Story, 감각이나 경험&감정 위주]

대표적으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헤어질 결심"이 있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오감과 감정, 경험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한때 논란이 많았던 "82년생 김지영" 또한 작가가 여성이었기에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이슈화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 글을 남성이 썼다면? 그저 허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글을 AI가 썻다면 어떨까. 갑자기 차올랐던 여러 감정들이 파사삭 식어버리고 말 것이다. 감각이나 경험, 또는 감정을 AI가 쓸 수는 있어도 관람자들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AI는 떡볶이를 먹을 수도, 여행을 갈 수도, 희노애락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련, 모네 (1919)

필자는 모네를 좋아한다. 인상주의라는 기풍도 좋아하지만, 그의 이야기가 그림에 듬뿍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신에게 시집 온 부잣집 아내를 자궁암으로 먼저  보내고, 전쟁터에 아들을 빼앗긴 그의 상처가 그림에 녹아있다. 설상가상으로 백내장으로 시력조차 나빠지자, 그는 가까운 정원 앞 수련만 그리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보지 못해 흐릿하게 그려진 수련은 인상주의의 정점이라고 역설적으로 칭송받는다. AI는 이런 개인의 스토리를 담을 수 없다. 예술은 머리로 그린다. 손은 거들 뿐이다. 생각/감정이 담기지 않는 예술은 반쪽에 불과하다.

예술은 작품 표면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 너머 창작자의 인생과 스토리가 담겨야 진정한 예술이다.


[대체 가능한 예술 : Fiction AND Technique, 흥미와 쾌락위주]

반면 허구 기반의 픽션은 대체될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이다.) 3조 원의 수익을 낸 "아바타"나, 작가 개인이 3,0000억 원 이상을 번 "귀멸의 칼날"은 Fiction기반이다. 특히 두 작품들은 권선징악과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플롯도 단순하다. 단순한만큼, AI는 학습하기 용이할 것이다. 


물론 스토리는 단순하고 대중적이지만, 테크닉(기법)은 그렇지 않다. 아바타 물의 길 CG나 귀멸의 칼날 연출은 입이 벌어질만큼 화려하고 정교하다. 그러나 이 또한 AI가 훨씬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단순한 스토리에 정교하고 화려한 Technique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즉, 감동보단 눈을 즐겁게 하는 흥미와 쾌락 위주의 콘텐츠는 AI가 백전백승이다. AI가 만들면 어때? 재밌으면 장떙!인 분야니까.


결론 : 그러나 언제까지 대체 불가능할까?

최근 한 작곡가가 ChaptGPT에 작곡 아이디어를 물었다. 그러자 "이차 방정식은 근이 두 개니까, 내 마음이 두근 두근으로 작곡하면 어떨까요?"라는 답변이 왔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몇 초만에 저런 신박한 답안을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AI가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주제로 말이다. 


여기서 위험한 점은, 인간의 감정이입이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 창작물에서 우리의 감정을 대입하고 이입하는 것이다. 가령 AI가 치킨맛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세상에 없던 표현으로 치킨 맛을 묘사한다면 역으로 인간이 그 표현대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의식이 표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AI의 표현에 의해 인간의 의식이 지배되는 것이다. 이는 AI가 예술을 대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AI의 표현에 심취하는 순간, AI 또한 우리의 의식을 들여다볼 것이다. 

BHC 뿌링클 


AI가 세상에 없던 표현으로, 치킨 맛을 표현한다면 어떨까?의식이 표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AI 표현에 인간 의식이 지배된다면? 그때부터 AI는 예술의 대체를 넘어 인간의 두뇌를 대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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