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영잉 Jun 24. 2024

리옹에서 만난 행복의 감각

프랑스 리옹에서 드디어 이룬 소원 하나, 그리고 인생 당근케이크

나 소원이 하나 있어


- 검은 긴팔티 1 (국가를 옮길 때마다 목덜미에 국기모양 자수를 하나씩 세기고 있다)   

- 체크남방 1 (공대생이라면 당연히)

- 후리스 1

- 나시 1

- 반팔 1 (러시아를 거치며 짐을 줄이기 위해 버렸다)

- 냉장고 바지 1 (9월에 왜 굳이 여름바지를 가져왔나 생각해 보니 가벼워서)

- 레깅스 1

- 무릎 뚫린 청바지 1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옷가지 목록이다.

거의 버리기 직전의 것들.

필요하면, 혹은 마음에 드는 옷이 생기면 가진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옷 한 벌 사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른 도시에서의 3일 경비가 됨을 인지해버린 후로는

옷 소비의 우선순위가 쩌어어- 뒤로 밀려버리고 말았다.


"유림아 나 새로운 옷을 입어보고 싶다."


유림이는 푸핫 웃으며 옷장을 한참 뒤적였다.

꺼내보인 몇 가지 옷들 중 검정 치마와 아이보리색 니트, 그리고 때 타지 않은 하얀 패딩을 골랐다.

뭔가 부족한데~ 하며 둘이 고민하고 있으니,

앞에서 가만히 우릴 지켜보던 룸메이트 동생이 갈색 니트를 건넸다.


"이 니트 입어볼래? 더 어울릴 것 같아."


문득 대학교 일 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송도 기숙사 1025호.

내 옷이 지겨워질 때면 그곳으로 넘어가 유림이가 골라주는 옷을 입었더랬다.


룸메의 갈색 니트로 갈아입는 장면


유림이가 미리 짜놓은 관광 코스에 따라, 아침부터 캠퍼스 투어가 진행됐다.

마지막 코스는 학생 식당, 이곳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분명 미드에서 봤던 풍경이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친한 무리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털썩 앉아 수다를 떠는 학생,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건네는 농담에 웃음 짓는 학생들,

생기 발랄한 미드 속 학생식당 그 자체다.


덩달아 우리도 그 한 장면을 차지했다.   


"너 굉장히 재밌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구나!"


누군가에게 윙크를 보내는 학생


첫 행선지는 Hotel de ville, 리옹 시청이다.

생텍쥐페리 동상이 있는 광장에는 비둘기가 가득하다.

비둘기 흉내를 내기 위해 장난스럽게 비둘기 떼에 다가갔으나,

덤덤한 한국 비둘기와는 달리 잽싸게 자리를 피하는 비둘기 떼.

덕분에 유림이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인생 커피를 찾은 건가


내 생 최고의 커피였다. 커피에 취향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홀짝일 때마다 풍부한 산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유림아... 와하… 진짜 맛있다... 미쳤네"


커피 한 모금에 감탄사 한 번을 반복했다. 

처음엔 맞장구 쳐주던 유림이는 네 모금 째부터는 지친 듯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함께 시킨 당근케이크도 천상의 맛이었다.

자고로 당근케이크라면 '적당한 당도의 크림치즈, 적당히 향긋한 시나몬, 식감을 자극하는 신선한 견과류' 세 덕목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 또한 완벽했다. 

당근 케이크 시트 특유의 포슬포슬 큰 입자가 촉촉하게 뭉쳐있었고 두 시트층 사이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투박하게 샌드 되어 있었다. 

포크로 푸욱- 크게 떠서 입에 넣은 후 그 맛을 듬뿍 음미하다가, 입 안에 반 정도 남았을 때 커피를 호로록 들이켜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 맛있는 커피를 리옹에 두고 떠나야 한다니…

아쉬운 대로 저 멀리 매대 뒤에 세워져 있는 원두 패키지를 슬쩍 사진 찍어본다.

(흡사 10년 전 자료 화면 같은 화질로 남아버린 인생 원두) 


@Slake Coffee house

https://maps.app.goo.gl/RPjT6Y489YE9uqQY7






두 번째 디저트는 마카롱이다.


마카롱의 고향 프랑스.

리옹에서 제일 유명한 마카롱 가게에 들러 각자 입맛에 맞는 마카롱을 하나씩 골랐다.

유림이는 프랄린 마카롱, 나는 피스타치오 마카롱을 골랐다.


프랄린은 프랑스 전통 디저트인데, 아몬드나 헤이즐넛에 캐러멜라이즈 한 설탕을 입힌 디저트이다. 

그중에서도 분홍색 설탕을 입힌 로즈 프랄린은 19세기에 리옹에서 발명된 특색 디저트이다. 

리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홍빛 디저트는 주로 이 로즈 프랄린이 들어간 것이라 보면 된다. 

바삭한 식감과 달콤 고소한 그 맛은 어떤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로즈 프랄린과 마카롱의 만남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내 취향은 피스타치오 마카롱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피스타치오 맛'디저트는 그저 화-한 향으로 민트맛과 다름없는 맛이었기에

유럽에서 접하는 진하고 고소한 피스타치오맛 디저트는 매번 감동을 선사했다. 


'맞아, 피스타치오는 원래 고소한 견과류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리옹, 그녀에게 맡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