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매일 필사 세 번째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에 앉는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공격해 시나브로 죽여온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침대에 길게 누워 두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시간, 긴장을 풀 시간, 휴식을 취할 시간, 하지만 저녁마다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할 만큼 고단하게, 낮 동안 자신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배회하게 만드는 이 불안정한 무기력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느끼곤 했던 무기력이었다.
그녀는 문 앞에서 약간 둔중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이라고, 자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또다시 체념 어린 태도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소지품을 꼼꼼하게 정돈한 다음 침대 위에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폴의 인생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삶이 어떻게 활기차고 밝을 수 있을까. 그저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배회하며 불안감을 느끼는 폴이 안쓰럽기까지 하는 장면이었다.
지나치게 헐렁한 실내복을 입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는 깜짝 놀랄 정도로 미남이었다. '내 타입은 아니야.'하고 폴은 줄곧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생각했다. 그녀는 잠시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그는 무척 흥분한 태도로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진정하세요." 폴이 말했다. 그녀는 기분이 몹시 좋아지고 흥겨워졌다. 이제 그녀는 시몽의 어머니가 등장할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감탄이 담겨 있답니다."그가 대답했다. 그런 다음 그가 너무나 감미로운 눈길로 바라보는 바람에 그녀는 거북해졌다.
그녀는 이 불편한 자동차 안에서, 그녀에게 매혹당한 것이 분명한 이 낯선 청년과 함께 있는 그녀 자신과, 자동차 덮개를 통해 들어와 그녀의 연한 색 외투를 더럽히는 빗방울이 아주 유쾌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시몽이 등장하면서부터 폴이 입가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흥겨워지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람은, 여자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반한 것 같은 잘생긴 청년, 시몽을 보면서 기분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보세요. 해가 났어요." 그가 꿈꾸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물방울이 맺힌 쇼윈도를 통해, 가을의 회한으로 가득 찬 햇살이 돌연한 열기를 품은 채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폴의 몸은 햇살 속에 잠겨 있었다. "그렇군요. 해가 났군요." 그녀가 말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높은 보도 위에서 그에게 등을 돌리는 동시에 기대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가 몸을 뗐다.
그녀는 이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고, 그가 이 점심 식사 때 할 이야기를 생각해 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양이처럼 언제나 은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사람 같았다.
그는 연한 빛깔의 눈동자에 가벼운 혼란을 담고 그녀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매끈한 데다 표정도 너무나 간절해서 그녀는 하마터면 그 얼굴에 손을 얹을 뻔했다.
그들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걸었다. 가을이 아주 부드럽게 폴의 가슴에 차올랐다. 젖은 다갈색 나뭇잎들이 서로 뒤엉킨 채 천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팔을 잡고 있는 이 말 없는 청년에게 애정 같은 것을 느꼈다. 이 낯선 청년이, 일시적이지만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 한 해의 마지막에 황량한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산책의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애정을 느꼈다. 그들, 무척 다른 동시에 아주 가까운 그들이 그녀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데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이었다.
시몽의 폴에 대한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더 가까워져 간다. 로제는 폴을 불안하고 초라하게 만들지만 시몽은 폴을 계절을 느끼는 감각을 일깨우고 충만하게 만든다. 의무감으로 당연시 여기며 옆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애정을 담은 눈길 한 번의 힘이 크다. 함께 하는 동반자가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여기며 감사함을 느끼는 폴이 나 역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2024년 매일 필사의 세 번째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동명의 드라마를 본 적은 있는데 책은 처음 읽어봅니다. 폴과 시몽이 만나는 장면마다 폴이 느낄 간질거리는 설렘이 다가와 기분 좋게 필사하고 있네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의 동반자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면서요.
끝나가는 겨울이 아쉬우면서도 단어만으로 따뜻한 설렘을 주는 봄을 기다려 봅니다.
필사하지 않더라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