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삼 남매는 모두 사춘기 시기에 있어요.
예상보다 쉽게(?) 보내는 아이도 있고 꽤나 힘든 아이도 있지요.
애가 많으니 참 다채롭습니다.
지난주의 일이었습니다.
삼 남매 고객님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해 고이 대접해 드리고, 두 아들은 검은색 시범단용 도복으로 갈아입고 태권도 체육관에 갑니다.
저도 나름 일정이 바쁜 사람인지라, 주섬주섬 외출할 준비를 했습니다. 지역 시립합창단의 연주회 티켓을 예매해 두었거든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비싼 돈 들이지 않아도 훌륭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일정만 맞는다면 모든 연주회를 다 예매하고 반드시 관람합니다.
사실 일정을 비워둡니다.ㅎㅎ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기회이죠.
그런데 그날따라 2호인 따님께서 꽤나 당황하시더군요. 얼마 전에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며 태권도를 그만뒀거든요. (관장님께 마지막 인사하러 간 날 4품 합격 통보와 작대기 네 줄이 새겨진 띠를 받아오신....ㅡ,.ㅡ) 한 시간 30분 정도이지만 집에 혼자 있게 되니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나 봅니다.
중딩이나 돼 가지고 혼자 집에 있질 못하다니 말이 안 되지요? 무남독녀로 큰 소공녀도 아니고요.
사연인즉슨, 그 무렵 학교에서 타의에 의해 스릴러 영화를 보았던 것입니다.
1학기 지필평가가 마무리되고 나서 수업 시간에 독서나 영화 감상을 제공하신 선생님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역사 선생님께서는 몇 교시에 걸쳐 <숨바꼭질>이라는 영화를 보여 주셨는데,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빈 집에 몰래 들어가 살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그 집을 차지하려는 이상한 사람이 나오는 무서운 영화이죠. 사실 저도 보지는 않았어요.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요.
따님께서 무척 애정 하시는 역사쌤이 보여 주셨기에 망정이지, 다른 선생님이었다면 엄청나게 불평을 해댔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너무 무섭다'는 말뿐이었지요.
좌우지간 몇 교시에 걸쳐 그 영화의 결말까지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딸은 갑자기 빈 집이 너무나 무서워진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있으면 괜찮지만 엄마까지 외출하시면 혼자서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다며 걱정을 합니다.
몇 가지 대안들이 제시됩니다.
오빠와 동생을 따라(?) 체육관에 가서 그냥 구석에 앉아 있다가 함께 온다.
사람이 많은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벤치에 앉아 있는다.
아, 아니다! 그냥 걷기 운동을 할 겸 동네를 배회하겠다. 읭?!
조금 걱정이 됩니다.
아주 늦은 시각은 아니지만 딸아이가 집이 무서워 동네를 배회하겠다니 마음이 편치 않지요.
혹시 공연장에 빈 좌석이 남아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연주회 직전이라 전화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대안을 제시합니다.
엄마와 함께 공연장에 가서 엄마가 연주회를 볼 동안 근처 카페에서 독서라도 하고 있으면 어떻겠나..
사양하십니다.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노을을 구경하겠다면서요. 읭?!
급기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도 나는 연주회에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구나!'
네. 저는 연주회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대안으로 떠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아무리 엄마라는 극한직업을 갖고 있지만 내가 먼저 온전하게 존재해야 엄마 역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딸아이의 그런 이슈때문에 기대했던 연주회를 포기한다면 저는 무척이나 불쾌해질 테니까요.
그러면 아이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할 수 없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엄마도 사람입니다.
엄마이기 전에, 아내이기 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자신만의 풍요로운 인생을 누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나로서 건강하게 존재해야 엄마와 아내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지요.
이전 세대에서는 엄마도 아내도 자신의 존재를 잊고 가족을 위해 그저 헌신하고 희생했지만, 저는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아래 책을, 제목에 이끌려 사서 읽었어요. 저는 이런 엄마거든요.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하지만 읽어 보니 제가 이미 잘(?) 하고 있는 것들을 말씀하시더군요.ㅎㅎㅎ
네, 저는 이기적인 엄마입니다.
하지만 매우 바람직한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할 것.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한 기초공사입니다.
우리 엄마들도 다양한 욕구가 있는 한 개인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평소 어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엄마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이들도 알아야죠.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취미와 문화 예술을 즐기고 싶다는 것, 때로는 너무 지쳐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는 것을 가족들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헌신하기 위한 준비이며 이타심에서 비롯된 현명한 행동이지요.
엄마인 당신,
취미는 무엇인가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선호하는 영화 장르나 옷 스타일은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우리, 이 질문들에 꼭 답을 해보기로 해요.
그리고 반드시 가족에게 소문 내기로 하십시다.^^
결론적으로, 저는 오늘도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환자가 두 명이나 되지만, 급성 증상은 지나갔고 제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딱히 도움 될 일도 없었어요.
(사실 이 두 분은 과외 공부를 하고 계셨습니다. 한 환자분은 선생, 다른 환자분은 학생.)
양보할 수 없는 Me-time.
더욱더 즐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