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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Dec 12. 2022

아름다움

낱말 곳간 1

서른 살 전후의 여성들이었다.

젊고 싱그러운 그녀들이 곧 반백을 바라보는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나의 20대 시절이 궁금하다고, 지금 이렇게 예쁘신데 그때는 얼마나 예쁘셨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많은 남성들의 애정공세를 받았을 거라고, 내 남편이 힘들게 나를 차지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한 찬사에 입꼬리가 귀에 걸리지 않을 여성이 있을까. 젊으나 늙으나 여자에게는 예쁘다는 말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

나 역시 그 칭찬들을 잠깐 즐겼다.


(이쯤에서 불편한 독자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부디 끝까지 읽어 나의 진심을 알아주시길.)



그 두 사람이 인지하기를 기대하는데, 그들은 단지 나의 외모만을 가지고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전반적인 인상, 나의 언어와 눈빛과 표정, 태도와 몸짓, 내가 풍기는 사람 냄새 등 나의 모든 것을 종합해 '아름답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목소리가 좋다'라고 할 때 단지 타고난 목소리만을 목소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발성, 발음, 말투와 억양, 목소리의 톤, 호흡의 섞임 정도 등 너무나 많은 요소를 종합해 '좋은 목소리'라고 인지하는 것과 같으리라.




그들에게 카페 라테를 한 잔씩 사 주며 내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말을 들려주었다.



외형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출처 : Pixabay



그녀들이 예뻤을 것을 기대하는 나의 20대는 별로 그렇지 못했다. 인상이 차가웠고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사람들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웠고 턱은 뾰족했다. 나의 언어는 따지거나 비난하거나 가르치는 말들이었다.


한창 예쁘고 밝아야 할 청년 시절, 어린아이의 미숙함과 날카로움,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나는 날마다 힘겨웠고 삶이 불안했다. 세상에는 나의 적들만 가득한 것 같았고 나 자신조차도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 잘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누구의 아내와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야 했던,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다. 출산 후 몸에 살이 붙고 삶에 별 기대도 없어진 시절에 오히려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편안해 보인다고도 했다. 나만의 인생이 그리웠던 시절이었지만 사람들은 내게 여유롭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나에 대한, 그리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그때부터 나는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던 것 아닐까.




외형은 내면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마치 거울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꼭꼭 숨겨둔 상처들은 나의 말과 목소리, 표정과 몸짓, 소비 행태, 손에 잡는 책들,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낭독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우아하다면, 내가 아름답다면 나의 내면이 그렇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 가운데 만나는 반갑지 않은 돌부리를 수용하고 나를 아끼고 내 목소리를 사랑하니 자연스럽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나를 아름답다 말해 주니 감사하다. 남보다 늦게 깨닫는 통찰들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그래서 말인데, 새해에는 다시 날씬해져서 진정한 외모의 아름다움도 보여줄 수 있기를 다짐한다. 40 넘으면 다이어트가 건강관리이고 자기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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