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재미있는 질문들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낭독은 그저 소리 내어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청자를 배려해 적절히 쉬어가야 한다고 늘 '쉼'을 강조하는데요, 그러면 이렇게 질문하는 분이 있습니다.
"몇 초 정도 쉬면 되나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는 2초? 문단이면 3초쯤 쉬면 될까요?"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는 다 어렵기만 하니 공식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낭독에 공식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당연히 정답도 없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낭독은 운전처럼 하시면 됩니다."
도로에서 운전할 때 어떤가요? 공식을 가지고 하나요?
물론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는 나름의 공식을 가지고 했을 겁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운전면허를 따던 시절에는 코스 시험, 주행 시험에서 공식을 잘 따라야 합격할 수 있었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어느 지점까지 직진한 후 멈추어서 바퀴를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려 후진하다가 다시 멈추어 바퀴를 직진 방향으로 돌려 직진한다.’
하지만 실제 운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도로 폭이 4미터고 내 차 너비가 1.8미터니까, 양쪽에 110센티미터씩 여유를 두고 운전하면 도로의 중앙으로 갈 수 있겠군.'
이렇게 운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운전은 공식이 아니라 '감(感)'으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운전 중 만나게 되는 상황은 너무나 다양해서 그 모든 순간에 적용되는 공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낭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술이나 공식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감(感), 즉 느낌으로 하는 것이 한결 자연스럽습니다. 한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쉬면서 청자가 앞 문장을 음미할 여유를 줄 때는 '느낌으로' 쉬어 가는 겁니다.
‘감으로 낭독한다’라는 말은 자칫 하고 싶은 대로, 혹은 그저 내 마음대로 낭독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정서에 깊이 공감할 때 내 마음 안에서 생기는 느낌을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하고 작가의 마음을 읽어나가다 보면 감은 자연적으로 생긴답니다. 문맥에 따라, 어떤 부분에서는 충분히 쉬어 가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쉼 없이 바로 다음 문장을 붙여 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같은 글이라도 낭독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글에 온전히 몰입할 때 깨달아지는 여러분의 ‘느낌’을 믿어보시길 바랍니다.
그 감(感)으로, 아래 글은 어떻게, 어느 정도 쉬어 가야 할지 낭독해 보시면 어떨까요? 글에서 얻은 여러분의 느낌으로요.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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