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랑한 마들렌 Feb 09. 2022

함께의 카이로스적 시간

내 시간이 귀하면 남의 시간도 귀하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독특한 자원입니다.

한정된 자원일 뿐만 아니라 

가장 희소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빌리거나 고용할 수 없고

구매하거나 더 많이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가격도 없고 한계효용 곡선도 없습니다.

저장도 불가능하며,

언제나 심각한 공급 부족 상태에 있지만

대체재도 없습니다.

단 하나의 보편 조건으로, 모든 일에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 노트]에서 정리)



네. 시간입니다.






그리스 신화까지 거론할 것 없이, 시간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크로노스는 물리적 시간이지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기준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인 하루, 60분인 1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쉽게 말하면 매우 주관적인 시간 개념이지요. 그저 흘러갈 시간을 더욱 가치롭고 특별하게 만들 수 있지요.


나에게 주어진 1시간의 여유 시간을 너튜브의 알고리즘에 따라 어영부영 방황하며 훌쩍 보내버리면 크로노스, 영혼의 결이 맞는 사람과 눈빛 교환하며 끈끈한 대화를 하며 보낸다면 카이로스적 시간이 될 겁니다.





뜻밖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세상이 급작스럽게 확장되었지요. 회의 시스템을 이용한 온라인 모임이 상당히 보편화되었습니다.

가끔(혹은 종종) 온라인 모임에서 혼자서만 '다른' 카이로스적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다른 사람이 발표할 때, 이 모임의 블로그 후기를 적고 있거나 아예 다른 일을 펼쳐 놓고 합니다.

비대면 모임에서는 참여자의 모습이 화면에 많이 나와 봐야 얼굴과 어깨 부분 정도입니다. 오해하기 쉽긴 한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모임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는지 딴짓을 하고 있는지 다 보입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의 눈빛을 보면 다 드러나더라고요. 가끔은 모르고 싶습니다.


줌 모임의 장점 중 하나가, 컴퓨터 화면에 수십 명의 사람들 얼굴이 다 보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대면 모임이라면 한 번에 수십 명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을 텐데, 줌 모임은 가능하죠.

당신이 화면을 보고 있어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눈빛으로 다 들킵니다.


끝나자마자 이 모임의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서 모임 중에 포스트를 기록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되겠지요. 다른 사람 발표 순서를 들으며(혹은 듣는 체하며) 잡무나 단순노동을 하면 동시에 몇 가지 일을 하는 셈이니 시간을 알차게 보낸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심지어 모임을 운영, 진행하는 리더 역시 '자기만의 카이로스적 시간'을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눈치채는 것을 모를 수가 없는데, 모임장까지 그런다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모임원이 발표하는 동안 다른 단톡방에 이 모임을 홍보하고, 어차피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게 되니 다른 업무 처리를 하기도 합니다. 워낙 바쁘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간은 어떤가요?





'모임'이라는 것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함께 해야만 하는 일, 함께여야 가치로운 일이기에 모임을 통해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모임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나만의 시간이 아닙니다. 모인 사람들 모두의 시간이지요.


모임에서 하는 행동은 모임을 위한 것, 참여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나의 발언도 열심히 준비하여 충실히 행하고, 다른 모임원의 발언도 집중해서 경청하는 것이 모임에 참여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내가 발언할 때만 집중하고 남의 발표는 듣지 않거나 흘려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남의 시간은 내 알 바 아니라는 것이죠.

"당신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으면 내가 발표할 때 딴짓하면 될 거 아냐!"라고 말하지는 않으실 거죠?


일대일의 미팅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상대방이 나를 계속 주시하리라 예상하니까요.

일대 다수가 되면 사람들은 달라집니다. 군중 속에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책상 뒤에 머리만 들이밀고 숨은 줄로 생각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셈입니다.






'인생은 관계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모임 역시 관계입니다. '타인과 관계 맺기'의 한 방법이지요. 온라인 모임도 대면 모임 못지않은, 중요한 관계 맺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희소하고 귀한 자원.

시간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귀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인의 경조사에 계좌 입금으로 경조금만 보내는 것보다 직접 가서 함께 기뻐하고 위로하는 것이 더 값진 이유는 바로 시간을 나누기 때문이잖아요. 같이의 가치.


모임에서도 혼자 아닌 '함께'의 카이로스적 시간을 배려해 주세요.

모두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성의 있게 참여한다면 그 모임 자체가 모두에게 '함께의 카이로스적 시간'이 될 것입니다.


(줌 모임에서 카메라 방향을 너무 올려 이마와 눈까지만 보여주는 행동은 중학생용인 것도 아시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