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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an 03. 2021

마산에서 온  DIY 김치 키트

세 지역에 흩어져 사는 우리 가족은 일 년에 몇 번 휴가를 맞춰 마산 부모님 댁에서 모인다. 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 전원생활을 시작하셨다. 집에서는 바다가 보이고, 집 앞에 일군 작은 밭에는 각종 과일과 채소, 그리고 색색깔의 꽃들이 자란다. 부모님이 키운 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우리 가족이 모이면 함께하는 활동이 되었다. 밭에서 무를 캐서 무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텔리비전을 보면서 고추 한 바구니를 다듬어 고추 피클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염병이 돈 이후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음식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은 올해 키운 배추가 정말 달고 연하게 자랐는데 여동생이 잠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그 배추로 겉절이 김치를 만들었다고 하셨다. "겉절이가 참 맛있게 됐다. 맛있는 것을 먹으니 너희도 먹이고 싶더라"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아쉬워만 하고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다. 한번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움직이는 엄마는 어느 날 소포를 보냈다고 하셨다.


"응?"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조금 있다가 여동생이 카카오톡으로 레시피를 하나 보냈다. 겉절이 김치 레시피였다. 엄마의 지휘 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소포를 받아 열어보니, 부모님이 농사한 배추 한 통과 쪽파, 직접 키운 고추를 말려서 빻은 고춧가루, 지퍼백에 담긴 굵은소금, 통깨, 심지어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생강 조각도 하나 있었다. 세심하게 채소를 키운 아빠의 정성과 치밀하고 정확한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겉절이 김치 DIY(do-it-yourself) 키트였다. 부모님이 키운 채소와 여동생이 찾은 레시피로 만든 김치를 결국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나는 자취생 치고는 주방도구가 많은 편이지만 가정집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배추 한 포기를 담그는 데에도 나의 모든 주방도구가 총동원되어야 했다. 냄비는 양푼이 되고 찜기는 채소를 씻어서 물을 빼는 채반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김치 겉절이 담그기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배추를 굵은소금에 절이고, 믹서기에 야채와 고춧가루를 갈아 소스를 만들었다. 그 소스를 절인 배추와 쪽파에 슥슥 바르고 반찬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배추는 뽀얗고 연했고, 직접 빻은 고춧가루는 빛깔이 선명했다. 남동생이 집에 오면 이 김치를 맛보게 할 생각에 신이 났다.



겉절이 김치를 다 만든 후에 양푼(사실은 냄비)에 남은 양념이 아까웠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즉석밥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양푼에 담고 참기름을 두르고 비비니 매콤하고 고소한 비빔밥이 되었다. 이 비빔밥을 김에 척 얹어먹으며 생각했다,


'만나지 못해도 마음만 있으면 가족은 언제나 함께일 수 있구나.'



배추 겉절이 (배추 한 포기 분량)


* 동생이 공유해준 배추 겉절이 레시피 링크입니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7qDrC3aJ6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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