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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en Apr 02. 2023

진정한 나의 정체

최면과 뇌과학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통해 밝히는 참나

이글은 현재 작성중인 '공허감을 회복하는 자기최며 실천법'의 내용 일부를 정리해 옮긴 것입니다.




1.신경증


정신분석학에서 신경증은 무의식이 의식에게.던지는 질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너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이 문제 외면해도 정말로 괜찮은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정하고 합리화하고 모른척해도, 내면에 상처받은 경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트라우마 경험에 노출됐을 때, 그 경험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면 우리의 정신은 그 경험을 분리해 버린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떤 트라우마 경험을 겪은 그 순간의 ‘그 사람’(존재)은 자신의 자아의 일부로 통합되지 못하고 무의식 한쪽에 격리되어버린다.

그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홀로, 그 트라우마 경험 당시의 생체피드백 결과인 상태(생각/감정/느낌)를 홀로 감당하게 된다. 내가 살기 위해 그 끔찍한 고통을 대신 감당할 부분을 만들어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폐된 자아의 파편은 그 자아파편이 감당해야하는 경험이 끔찍한 것이면 것 일수록 전체 자아와 격리된다. 왜냐하면 ‘나’는 그 끔찍한 경험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유폐된 자아파편은 전체적인 자아와의 연결이 끊기게 되고 유폐된 감옥에서 독자적인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인격이 분열되는 것이다.


위의 뇌과학적 기전에 대한 이야기에서 외부 자극에 대한 피드백 결과값이 감각(느낌)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 유폐된 자아파편은 그 당시의 피드백 결과값인 감각(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느낌은 느껴지다의 명사형이다. 즉, 느낌은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느껴지는 것은 곧 그 순간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감각(느낌)이 정보처리의 효율성을 위해 묶인 것이 감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묶인 감정이 정보처리의 효울성을 위해 묶인 것이 생각이다. 생각은 다른말로 관념이다. 즉,유폐된 경험은 그 자체로 감정(정서)와 생각(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이러한 유폐작용(분열)이 한번만 일어날까? 삶에서 트라우마를 겪어본 사람일 수록, 그러한 충격적인 경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편도체가 민감해 지게 된다. 그 말인즉슨, 정서적인 충격을 더 잘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속적인 경험의 억압과 분열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민감해진 편도체에 의해 경험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즉, 경험에 대한 분열과 억압의 경험이 ‘중첩’된다. 경험은 느낌이고 느낌은 감정이고 감정은 생각이다.그렇기이 이것이 중첩된다는 말은, 정서(감정)과 관념(생각)이 중첩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정서와 관념이 중첩(복합)된 결과물이 바로, 정서로 채색된 관념복합체(컴플렉스)다.


2.무의식의 정확한 정의


무의식이란 그 순간에 의식(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욕구이다. 그리고 컴플렉스 또한 무의식에 속해있는 것이다. 트라우마 경험 당시에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부정되고 억압되고 해리된 그 순간의 경험이다.

그리고 신경증은 무의식 의식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정확히 누가 누구에게 말을 거는 걸까? 이 표현되지 못한 욕구(무의식)가 ‘나’(현재의식)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컴플렉스 또한 표현되지 못한 욕구이다. 아주 강력하게 억압되어 표현되지 못한 욕구인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은 자신을 표현할 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제대로 돌보아지지 않은 무의식은 마치 3살짜리 어린애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원시적인 형태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표현방식이 느낌과 감정인 것이다. 특히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많은 무의식(컴플렉스)인 경우에는 끔찍한 고통(느낌)이나 고통스러운(감정)의 형태로 말을 건다.


이때 우리의 현재의식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고통스러운 감정과 느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많은 경우 그것을 부정하거나 억압하거나 회피하려할 것이다. 즉 그것을 컨트롤하려 할 것이다. 이는 대화를 요청하는 무의식에게 있어서는 ‘대화를 거부하는 것’ 과도 같다.


쉽게말하면, 나(현재의식)을 대신해 고통스러운 경험을 책임지고 있는 무의식에게 “나는 고통스럽기 싫으니까 제발 징징대지말고 꺼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의식은 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홀로 내가 떠넘긴 고통스러운 경험을 책임지면서 아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3.무의식과의 단절


이렇게 지속적으로 대화를 요청했음에도 지속적으로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그러한 반응패턴이 학습된다. 그 결과 더이상 나(현재의식)은 무의식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을 느끼지.못하게 된다.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의 경험일부가 자신의 전체 자아에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된다. 본래 자신의 삶의.일부분인 것을 스스로가 지속해서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에 뭔가 느껴지 않는 부분이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공허감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면된 경험이 많을수록, 그 경험이 끔찍한 경험일수록, 공허감의 정도 또한 달라진다.


외면된 욕구 곧 무의식의 자기표현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좀 답답한 정도에서 끝이난다. 또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는 정도로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면된 욕구가 그냥 무시해서는 안될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라면 마치 그 욕구의 크기만큼 가슴에 구멍이 뻥 뜷린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에 담긴고통만큼, 그 구멍에서 굉장히 끔찍한 느낌이 누수되는 형태의 공허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공허감의 양상은 무시된 무의식(컴플렉스)의 양상에 따라 각각 다르다.


또한 이때, 이렇게 무시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기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외면된 경험이 외면되어서는 안될 정도로 중요한 경험이라면 무의식은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양상으로는 무언가 삶속에서 특정 주제에 관련된 문제가 반복된다던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아닌것 같이 행동하게 된다던가 하는 현상이 삶속에서 일어난다.


모두가 무의식과 현재의식의 연결이 끊겨서 발생하는 일이다. 이 또한 무의식이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보통 이러한 증상(무의식의 자기표현)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려 하거나 억지로 애쓰며 노력하는 방식으로 극복하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현재의식은 무의식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식의 순간 정보처리 능력은 132바이트 정도다. 무의식의 순간 정보처리 능력은 약 30만 바이트 정도이다. 단순 수치로만 비교해 보아도 무의식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이는 마치 코끼리와 사람의 차이와 같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근력을 길러봐야 절대로 코끼리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아무리 무의식을 컨트롤 하려해도 결과적으로는 컨트롤 할 수 없다. 인간은 절대로 코끼리와의 줄다리기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다.


4.관계회복


그렇기 때문에 우리(현재의식)이 할일은 무의식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애초이 이길수도 없을뿐더러 순간적으로 이긴다해도 나중에 더 걷잡을 수 없는 파멸적인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를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구스타프 융은 “자기기만의 끝은 파멸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현명한 방법은 상처입은 코끼리를 회복시키고 그 코끼리와 친해진 뒤, 코끼리의 힘을 빌려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안의 강력한 힘을 가진 코끼리와 협력할 수 있다면 삶을 좀더 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코끼리와 기수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코끼리에게 맡기고 나는 기수와 같이 방향을 조절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저절로 애쓰지 않고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분노한 코끼리에게 코로 쳐맞고 나가떨어지는 삶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용어를 한번 정리하고 가보자. 무의식은 코끼리이다. 컴플렉스는 코끼리의 몸에 난 상처다. 이 상처는 감각/감정/생각의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무의식은 상처난 코끼리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상처를 외면할 때, 그것은 곧 상처난 코끼리를 외면하는 것과 같다. 현재의식은 코끼리에 탈 수있는 기수(사람)이다.


‘진짜 나’(참나)라는 것은 사실 이러한 코끼리와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가 하나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진짜 나’에서 상처를 회피하기 위해 코끼리를 외면한다면 그만큼 ‘진짜 나’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나(현재의식=사람)은 진정한 내가 아닌것 같이 느껴지고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아 해매게 되는 것이다.



정보소스:네이버 카페 유교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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