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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혼자라서요

누구나 혼자일 때가 있다

by 조우주
혼자라도 괜찮다. 그 시간은 언젠가 당신의 빛이 되어줄 테니까.
너는 형제가 없어?
부럽다. 근데 안 외로워?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종종 듣던 말이다. 친구들은 손을 잡고 자기 오빠나 언니를 소개하며 자랑했다.

저기 우리 오빠야. 오늘은 자전거 타고 나 데리러 왔어.

어떤 아이는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우리 동생은 내가 용돈 줄 때만 말을 잘 들어. 근데 그게 또 귀여워.


엄마 아빠가 늦게 얻은 막내만 예뻐한다는 이야기, 언니의 옷을 몰래 빌려 입다 들켜 싸운 이야기, 형제와 한 대뿐인 게임기와 과자 봉지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 이야기…. 그런 얘기들은 마치 티비 속의 시트콤이나 작은 연극처럼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나는 귀 기울여 듣다가 조심스레 한마디를 거들기도 했다.
“그래도 피자 한 조각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니, 그냥 주거나 한입씩 나눠먹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어김없이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래. 그게 한두 번이면 괜찮지만, 형제는 웬수야, 웬수.”

서툰 농담에 미안하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마음 한편이 텅 비어오던 순간이 있었다.


왜 나는 늘 혼자인 걸까?


외동으로 자란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일찍 배워야 했다.


내 곁에 항상 있었던 건 보드라운 코끼리 인형과 책들이었다. 외로울 때면 인형을 꼭 끌어안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곳엔 세계 명작 도서 전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책장은 또 다른 놀이터였다.

특히 좋아했던 책은 '초록 지붕 집의 앤', '소공녀', 그리고 '삼국지연의'였다. 시대도 배경도 달랐지만,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베스의 죽음 뒤로는 마음이 덜 갔다. 어린 마음에도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붙잡을 수 없구나, 사람마다 원하는 결말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가끔은 책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혼잣말하듯 묻곤 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저자가 살던 시대와 문화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책 속의 세상을 오가다 보면 시간은 훌쩍 흘렀고, 다시 혼자임을 잊을 수 있었다


방 안에 불을 켜고 책장을 펼치면,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거울 앞에 서서 등장인물의 대사를 흉내 내며 작은 무대를 꾸몄다. 코끼리 인형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무대였지만, 그래서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어른들은 종종 말했다.

"몇 살이에요? 꼬마 철학자다. 되게 성숙하네요."

그 시절의 고독은 분명 외로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상상력의 뿌리가 되어준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법을 일찍 배운 덕분에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고, 사유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고요한 시간은 나를 배우로, 또 작가로 이끌었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는 쉽게 눈치채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섬세한 감정들이 혼자일 때는 또렷하게 다가왔다.


텍스트만으로 인생의 궤적을 유추하는 일

무대 위에서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힘

그 시작은 결국 혼자의 시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쩌면
외동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원래 혼자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독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혼자라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도,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도,

어떤 길목에서는 홀로 서야 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따라,

삶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혼자 있는 나만의 평온하고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예술을 만났다. 그 시간은 때로는 외로움처럼 보였지만, 실은 나를 숨 쉬게 하는 안식처였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고독의 순간에,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나만이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을 오래 붙잡아 문장으로, 장면으로 바꾸었다.

고독이 내 안을 비우면, 곧 새로운 발상과 경험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마치 한 번 숨을 길게 내쉰 뒤에, 더 깊이 들이마실 수 있는 것처럼.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또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채워진 순간들을 모아 글로 쓰고, 영상으로 만들어내며, 나만의 세계를 짓는다. 혼자였기에 가능했던 발상, 혼자였기에 끝까지 지켜낸 감정들. 그것들이 모여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울림이 될 거라고 믿는다.

혼자라서 괜찮습니다.
혼자이기에 더 단단해지고, 더 멀리 걸어갈 수 있어요.

누구나 혼자일 때가 있다.

당신의 고독도 언젠가는 당신을 지켜줄 힘이 되리라 믿는다.

외로움 속에서 길러진 목소리가 당신의 세계를 밝히는 빛이 되기를 바란다.


괜찮습니다, 혼자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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