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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Dec 05. 2022

생강차로 부활하기까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처럼 생긴 것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같은 몸매를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다 합쳐도 1kg 밖에 안 되는 몸무게인데도 

수십 명의 울퉁불퉁한 보디빌더들이 온몸에 흙을 묻히고 

건강한 몸을 한껏 뽐낸다     

이 몸짱 선발대회에서 탈락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우승자도 없다

누가 더 자신을 최대한 지우는지

누가 더 이 공동체 속에서 잘 어우러지는지

누가 더 고통을 잘 견뎌내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1라운드씻다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자 

귀여운 보디빌더들의 작은 함성이 들렸다

나는 물살을 더 세게 해 주었다

튀지 않겠다고 서약해놓고선 어떤 선수가

몸을 빙그르 돌려 피루에트 동작*을 한다

어디를 가도 기어이 자기를 드러내고야 마는 이들이 있다

관심종자 아니면 위대한 영혼, 둘 중에 하나다

어찌 됐건 대체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콧노래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2라운드벗기다

드디어 시작된 고통의 관문

이번 라운드는 성스러운 성인식임을 아는 듯

모두들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가장 뭉툭한 칼을 준비했다

손에 최대한 힘을 빼고 보통 빠르기로 

본래의 모습 그대로 드러난 연 노란색의 속살

갓 태어난 아기의 몸

짧고도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 때

피아노 선율을 타고 가사는 없는, 느린 보헤미안 랩소디가 울려 퍼졌다


3라운드자르다

몸속 깊게 통과하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 

이번에는 가장 잘 드는 칼로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아주 빠르게, 생기 있게 

건강한 자기애로 무장한 그들은

외마디 소리도 지르지 않고 위엄 있게 고통을 받아들였다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겉과 속이 똑같은 순결한 영혼

모두 편안하게 몸을 누인 채 바디스캔을 했다

의식이 왼쪽 새끼발가락쯤에 갔을 때 누군가 중얼거렸다 ‘잠이 와요’     


4라운드갈다

모두가 한 몸으로 얽히고설켜 춤을 추는 시간

피사의 사탑처럼 오래된 믹서기에 그들을 집합시켰다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불이 들어오면서 

다 같이 음악분수처럼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가

스위치를 왼쪽으로 돌리면 일제히 몸을 바닥에 엎드렸다

투명한 통 밖으로 비치는 그들의 파워풀한 군무가 

어떤 퍼포먼스보다 감동적인 이유는  

인고의 시간만큼 인삼보다 빛나는 품격을 지녀서일 것이다

그들이 한 마음으로 온 영혼을 털어내 공연을 마치자 

부서진 몸이 땀과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5라운드걸러내다

이제 잠시 숨을 골라야겠지?

구멍이 고르게 뚫린 커다란 트램펄린 위에 그들을 대자로 눕혔다

축축한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페퍼민트보다 덜 시원하고 청양고추보다 덜 매운 

시체처럼 꼼짝 않고 잠든 그들을 위해 조명을 꺼놓았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자는 동안 자신들의 모든 기운을 모아 

최고의 진액을 아래로 쏟아낸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훨씬 편할 테니

“아직은 몸이 무거워요.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게 조금만 눌러주세요.”

그들의 요청에 따라 몸을 지그시 눌러 마지막 진액까지 짜냈다   

  

6라운드고다

이번 대회의 최종 관문이자 축제의 향연

반짝이는 은빛 곰솥에 샛노란 진액을 담고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잘 저었다

1차 설탕 세례 다음에 이어진 2차 꿀 세례

뜨거운 열기 속에서 향기롭게 끓어오르는 ‘녹은 몸’

그들의 고귀한 몸이 눌지 않도록 뭉근한 불에서 계속 저어주었다

찬연한 여명이 둥근 솥 안에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건강한 기운이 집안 전체에 스며들었고

냄새에 취한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행복한 말소리가 들렸다

“사랑해, 오늘도 수고했어. 항상 고마워.”     


잠시 뒤, 깨끗이 소독된 유리병 속으로 옮겨진 그들은 백열전구보다 더 우아한 노란빛으로 주방을 밝혔다.   

  

7라운드쓸모를 입히다

축제가 끝나고 시작된 뒤풀이

그들의 몸에서 벗겨낸 거죽은 안 신는 양말에 담겨 핫팩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건식 족욕기로 직행했고

그들의 녹은 몸에서 나온 사리처럼 하얀 전분가루는 이날 두부조림을 할 때 

두부의 몸을 곱게 단장하는 데 기꺼이 쓰였으며

모든 진액을 다 쏟아내고 남은 부서진 몸은 탕이나 생선조림 때 

카메오로 출연시키기 위해 얼음틀의 각 칸에 차곡차곡 채워져 냉동실로 옮겨졌다     


이렇게 해서 길고 긴 몸짱 선발대회는 끝났다

그들은 약속한 대로 자신들의 개성을 모두 녹여내 완벽히 융화하였고

온몸을 불살라 한 치의 버림 없이 ‘생강차와 열성들’로 부활했다

그들 모두는 완전한 하나의 그룹으로 항암, 항균, 항염, 항산화라는 해독 부문에서

4관왕을 획득하며 해독 식품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으며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상비약으로써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자, 그럼 저 대단한 ‘생강차와 열성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게 어떠한가      


* 제자리에서 반복적으로 회전하는 발레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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