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제 몇 번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운전석과 조수석은 알아서 대화를 하게 하는 힘이 있는 걸까.

평소에 대화가 없던 선배님과 나인데 운전하는 동안 대화가 길어졌다.  

흰머리 지긋하신 선배님은 곧 정년이 다가온다.

흰머리와 달리 붉은빛 안색, 곧게 선 허리, 드넓은 어깨는 그의 건강함이 드러난다.

평소 등산복을 즐겨 입는 그의 발걸음은 등산을 마치고 하산을 준비하는 사람 같았다.

자식도 장성하였기에 한 시간의 출근길도 마다하지 않고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 거처를 이미 옮기셨다.  

우리는 같이 꽃을 보러 가는 중이다. 선배님의 댁이 있는 마을로.

사람은 넷이지만 돌아갈 때를 위해서 차를 나눠 탔다. 내가 선배님과 둘이 차를 타게 된 이유이다.

사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기억에 남는 대화가 거의 없다.

 

옛날에 이런 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어.

아 그러셨군요, 선배님. 정말 당황하셨겠어요.

옛날에는 나도 승진을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 딸랑딸랑을 잘해야 하더라고.  그게 나랑 잘 안 맞았어.

네, 선배님 저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열심히 살아보라고. 자네 때가 좋은 거네.  

네, 선배님.

 

전에도 선배님께서 나를 보면 자신의 젊었을 때를 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선배님과 닮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의 선배님을 위로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거리가 차츰 사라지고 무수히 많은 풍경이 배경이 될 때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넷이 된 우리는 차를 몰아 벚꽃이 핀 가로수 길을 지나갔다. 도시의 벚꽃은 반쯤 진지라 별 기대 없이 왔는데 마을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벚꽃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와아... 선배님, 여기는 벚꽃이 지금이 가장 예쁘게 펴있네요. 도시는 다 져가는데...

왜 그런지 알아? 어떤 글을 보니까 "왜 도시의 벚꽃이 빨리 지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재미있더라고.

음.. 선배님, 답이 뭘까요?

핫해서 그런데. 핫해서.


웃음이 나왔다.

호탕하게 개그를 쳐놓고 우리의 반응을 기대하는 순수한 미소에 생각보다 더 많은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런데 여긴 아직 하급 코스야.

네? 이렇게나 예쁜데요?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조금 더 가보면 알아. 곧 벚꽃 터널이 보일 거야.


정말 벚꽃 터널이었다. 길 양쪽에 있는 벚꽃나무들이 서로 하늘에서 만나 반갑다고 악수하고 있었다.   

아 이래서 꼭 이쪽으로 오고 싶으셨구나.


선배님 이제 여기 오자고 한 이유를 알았어요.

아직 일러. 여긴 중급 코스야.

네? 여기보다 더 예쁜 곳이 있다고요?

시간이 없으니 중급까지는 드라이브로 보고 다음 상급 코스에 가면 내려서 걸어보세.


그렇게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그곳은 정말 상급 코스라 불릴만했다. 벚꽃은 하늘을 가리울 정도로 흐드러지게 폈고, 넘치는 꽃잎을 주체 못 해 무수히 많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 아름답다. 아름다워. 이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선배님, 정말 여기는 상급 코스라 불릴만하네요. 정말 아름다워요. 매년 와야 할 곳이 생겼어요.

여기를 오면 다들 그런 말을 하더라고. 하아. 나는 이제 몇 번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몇 번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시골로 거처를 옮긴 선배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자꾸 맴돈다.


인생의 하급 코스, 중급 코스를 거쳐 상급 코스에 거처를 옮긴 선배님은

그동안 몇 번의 벚꽃을 누구와 함께 봐오셨을까.

그리고 앞으로 몇 번의 벚꽃을 보게 되실까.


나는 인생의 어느 코스쯤 와있을까.

몇 번의 벚꽃을 누구와 함께 봐왔을까.

앞으로 몇 번의 벚꽃을 보게 될까.


인생의 상급 코스를 잠깐이나마 맛 본 흐드러진 꽃구경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색을 잃은 바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