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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잃은 바나나

바나나.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라면 마트에서 바나나를 지나칠 수가 없다.

두어 개 먹으면 포만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노란색의 시였던 것처럼 채도 높은 노란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검은 점이 찍힌다.

검은 점은 먹물처럼 노랑을 잠식해가고

속에 있는 하얀 바나나마저 검고 질어진다.

피고 지는 꽃보다 더 시간의 흐름 잘 나타다.


을 잃은 바나나.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초파리.

바나나는 원래 초파리의 거대 함선이었을까.

휙휙. 손을 내저어도 도무지 떠나질 않는 초파리 때문에

얼른 바나나 껍질을 내다 버린다.

제발 가라.


의자에 앉는다.

덮혀진 노트북을 연다.

초파리가 아직 남아 있다.

왜 아직 안가니.

까만 노트북 화면에

내 모습이 비춰 보인다.

을 잃은 바나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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