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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Nov 28. 2021

과학소설의 주관성을 통해 바라본 인간 보편성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를 읽고

 작품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 SF를 좋아한다고 감히 말하기 부끄럽지만, 테드 창의 소설은 내 돈 주고 사서 주변 사람들한테 한 권씩 뿌리고 싶다는 내 마음엔 확신이 있다. 최근 읽은 SF는 <관내분실>이고, 김초엽 단편선을 읽은 다음엔 <천 개의 파랑>을 충동적으로 샀다. 켄 리우의 소설 두 권을 읽으려 준비중인데 생업이 바빠 손을 못 대고 있는 게 한이다. 그래서 이번 대학원 수업을 빌미로 SF소설을 읽을 수 있어 기대가 컸다. 나는 베르나르 <개미>를 읽으며 SF를 시작했는데, <금성 탐험대>를 읽으며 자랐을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독서했을지 기대하며 책을 시작했다.

 책에서 배경이 되는 금성은 ‘원자 에네르기를 위한 물질이 풍부’한 장소로,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척 경쟁에 있어 대척점이 되고 있다. 화성도 아니고 금성! 샛별이나 개밥바라기별로 불리던 금성이 달 다음으로 가게 될 우주 여행의 목적지가 됐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의 과학 지식으로 봤을 때 그럴 듯 하다. 일단은 관찰이 가능하고 존재를 알아야 상상도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 쯤 다른 행성에 가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금성에 가기 위한 사전준비를 1960년대로서 최선을 다해 했음이 분명하다. ‘별들은 지구에서 볼 때처럼 깜빡일 줄을 모르고’와 같은 묘사는 우주 여행을 보다 생생하게 상상하도록 돕는다.

 과학은 주관적인 학문인데 하물며 공상과학 소설에 객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그닥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물론 SF소설에 있어 플롯의 개연성이나 핍진성, 특히 과학지식의 진위 여부는 매우 중요하며 이는 비SF소설과 이를 가르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설을 계속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사실 공상과학소설에서 과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역설이다. 지구인이 언어가 다른 금성인(알파성인)과 만나 서로의 언어를 탐색하며 제스처로 소통하는 장면은 사실 새롭지 않다. 과학은 소재가 될 뿐 그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모습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와 닮아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일상에서 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낯선 공간으로 떠난 문학여행은 서사에 색다른 재미를 부여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속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면, 금성은 여전히 인간을 위한 새로운 ‘개척지’로서 묘사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 태양계를 침범하고, 우리 태양계의 광석을 날라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언제부터 ‘우리’ 태양계였는지, 너무 당연하게 소유를 주장하는 이러한 태도가 작품 전반에 자연스럽게 깔려 있다. 과학기술의 유구한 발전 역사가 자연을 개척의 대상으로 보는 가치관에 기반을 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당대 과학에 대한 선망을 지녔던 작가들이 이러한 시선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대로 작품에 반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다시 지구로 복귀한다는 마지막 결말은 이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임시로 머무르는 장소라는 금성의 정체성은 인물에 ‘순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지점과도 맞아떨어지는 무엇이다. 앞서 말했던 인간의 보편성을 생각한다면 자연주의 시각에서 보아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한낙원에게 붙이는 한국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라는 칭호는 과연 아깝지 않다. 금성에 있다는 ‘원자 에네르기를 위한 물질’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궁금해졌고, 이러한 궁금증의 시작은 독자의 과학적 상상력으로 연결되어 또다른 SF소설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어린이SF문학의 장이 조금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금성의 물리적 성질에 관한 한국천문연구원의 자료 링크를 함께 공유한다.

https://astro.kasi.re.kr/learning/pageView/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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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편독도 심하다. 내용 전개에 있어 합리적이지 않은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미숙한 독서습관을 갖고 있어 고민이다. 다른 분들은 작품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 ‘에이, 말도 안 돼!’스러운, 개연성에 강박을 보이는 몇 아이들의 시각에 대해 교실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지도하는지 궁금하다.

 흔히 교육과정 재구성에 골머리를 앓는 과목으로 과학을 꼽는다. 대게 ‘가르칠’ 과학지식이 정해져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SF문학을 통해 과학수업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현대의 한국 어린이SF작품을 추천받고 싶다. 지금 당장은 <우주로 가는 계단> 정도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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