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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Oct 02. 2021

끝물이 진하게 든 어느 날

교육대학원생의 근황

 나는 요새 졸업하고 싶다.

 과학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으니 어느새 마음도 풀어헤쳐져버렸다.

 오래 전 반짝 관심이 생겼던 몸교육과 성인지감수성에 관해서도 이제는 일상에서 숨 쉬듯 하는 가치관 정도의 열정으로 자리잡았다. 내가 진정 추구하는 수업이, 그 가치가 무엇인지 3년차가 되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라 여직 깜깜한 거라고 핑계를 댄다.


 졸업이 또 다시 늦춰졌다. 마음으로는 조바심이 가득 난 상태였는데 다시 속상함을 가득 안고 할 수 있는 일에 돌입한다. 논문 쓰는 거 보통 일이 아닌데, 너무 얕보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학점 채우면서 같이 시작할 걸, 하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쓰리다. 대학원을 몇 학기를 다니는 거야! 휴학한 학기도 안 쉬고 수업을 들었으니 거의 7학기 아니야? 그중 2학기는 타과생과 함께한 덕에 과학에서 자꾸만 한 발 멀어져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어쩌다 과학교육과를 선택했더라. 처음 선택은 그리 깊은 고민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20살 2월. 나는 이과니까 수학 아니면 과학으로 갈 텐데, 수학은 자신이 없으니 과학을 선택했다. 새내기카페에서는 과학과가 논문을 쓰기도 하고 교수님들도 '빡세서' 기피 대상이라고 했다. 나는 원래 고생해서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라는 생각에 입학했다가 개강날 첫 수업부터 지각을 했다. 교수님께서 어디 출신이냐고 하셔서 00 출신입니다, 했더니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네.. 거기로 다시 돌아가지 그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기가 생겨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었다. 동기들과 밤 새며 전자활동첩 CD를 만들던 걸 기억한다(우리가 CD로 활동첩을 제출한 마지막 학번이 되었다). 100여 장에 달하는 학습일지와 과제 모음을 만들어 제출했을 때 남은 것은 어떤 뿌듯함이었다. 혹자는 '과학과는 졸업논문을 두 번 써서 학사를 따네!' 하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도 한 학기를 충실하게 살아냈구나. 첫 단추를 지각으로 시작했지만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구나. 대학교 가면 놀 수 있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취급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었음 좋겠다고 바랐다. 그 나라도 먼저 공부를 해야 그런 곳이 되지, 하고 공부했다. 소박하게 과탑도 해보고, 달리고 달리다가 어느 한 학기는 놀아도 보고, 임고 공부는 한량처럼 해보고... 끝물이 성실하지 않았음을 곱게 인정한다.


 당시에는 존재의 증명 같은 거창한 이유를 속으로 붙였던 것도 같다. 나는 시골 사람이고 수능 점수가 못 나왔다는 데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런 걸 다 잊고 내가 가진 다른 특성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사회학'과 '과학 소양과 테크놀로지1' 수업은 내게 꽤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석사 주제는 당시 교수님과의 수업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체 어떻게 질문에 꼬리를 무는 수업이 가능하지? 소크라테스의 산파법과도 비슷한 이런 수업은 나는 그전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무엇이었다. 비슷한 종류의 교수법을 타과의 모 교수님도 시전하셨던 걸로 기억하지만, 나에게는 이 수업이 먼저였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에릭 와이너 말로는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는데, 실제로 우리의 1학년 1학기에도 화가 가득한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그리고 2학년 때 체에 걸러지듯 전과한 사람들만이, 3학년 때는 휴학하지 않은 독한 사람들만이 남아서 천천히 살아갔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 수업이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는 게. 교대 3학년 실습 때 과학 시수가 얼마 되지 않았던 게 한으로 남아서 그런가, 나는 자꾸만 그때의 수업을 과학에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찾아다녔다. 그리고 한 교수님으로부터 "그거 논증이네!"라는 한 마디를 듣고 졸업논문 키워드를 잡았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건 논증이다. 나도 논증으로 과학수업을 하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논증을 시키고 싶어. 쉽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그 짜릿함을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은, 그래서 과학이 실험수업으로만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게 내 거창한 포부였던 듯 싶다.


 철학적인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지. 나이 점을 간과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깊이 생각하고 주장을 벼려내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실험 수업이 즐거운 이유는 누군가가 지식을 떠먹여주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그 일은 마음이 편하다. 마치 교사연수 때 교사 보고 자꾸만 무얼 시키는 걸 귀찮아하는 시류처럼, 아이들도 과학수업에 그만큼의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 다른 점이라면, 아직 아이들은 체력이 있고,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보다는 무언가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게 더 재미있는 때라는 것이다. 분명히 행복하게 논증이 이루어지는 교실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나는 희망을 갖고 논증, 그중에서도 반박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논문 주제를 잡아나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구 주제가 무엇일지 아직도 많은 고민이 된다. 그냥저냥 졸업을 위해서 논문을 쓰지는 말자고 다짐했으니, 무언가 세상에 없는 공인된 지식이 나를 통해 한 줄이라도 더 생길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생하는 걸 좋아하던 예전의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이제는 행복한 일이 많아져서 그런가, 진짜 고생을 안 겪어봐서 그런가...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이내 결론을 짓는다.


논증 수업이 초등학교 과학 수업에도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논증 수업이 즐겁기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싫지는 않았음 좋겠다.

활발한 논증과 반박을 통해 아이들이 '과학 지식은 정해져있지 않고 만들어가는 것'임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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