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군대 내 여성 성폭력 문제에 대해 가치관이 달라 서로 목소리를 높인 있다. 나는 여성권 처우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친구가 남성 성폭력 문제는 왜 이야기하지 않냐고 말했다.
여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남성은 왜 챙기지 않느냐는, 어쩌면 충분히 겪은 레파토리. 친구가 일전에 주제를 벗어나지 말자고 얘기했기 때문에, 나 또한 긴 설명보다는 그냥 '지금은 여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은 네 말대로 주제를 벗어난 말'이라며 마무리지으려 했다.
그런데 친구가 '너는 예전부터 여성 문제에만 집중하고 남성 문제에 대해서는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며 말을 끊었다(시간이 지나, 추후에 찬찬히 얘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군대에 지인이 있어서 내가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에 불쾌한 기분을 느꼈노라고 회상했다).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경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돼. 나는 내 직업에 대해 '그거 별로 안 힘들잖아'라며 비하하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왔어. 너도 군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군 문제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 얘기해선 안 되는거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어떤 심정으로 그 말을 했을지 공감해. 하지만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실제로도 알아보기 위해 나름의 시간을 들여서 내린 결론을 너와 이야기하는거야.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실제로 벌어지는 문제에 목소리 내고 판단을 꺼린다면.. 나는 그것도 그 자체로 하나의 선택이라고 여기거든. 믿을 만한 책을 읽고 기사를 찾아보며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과의 간극을 간접적으로 매워야지.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과 연대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게 실례라면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당사자의 말이 실린 인터뷰를 읽으며 말이야.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마음속으로라도 최소한의 결정은 내려두는 편이야.
내 성격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는 시도가 나는 아무 판단도 내리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 날의 이야기에 대해 나는 '서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힘드니 앞으로 나는 네 앞에서 관련 주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좋은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쳤기 때문이고, 어쨌든 친구도 나도 인연을 끊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놓은 게 아니니까.
복기해보니, 주제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시간과 정신이 여유로울 때 더 알아보고 생각해야지. 내 고민을 다른 것에 의탁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