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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Apr 07. 2023

시골과 도서관

그 공간이 주는 감각

20살이 되기 전, 이사를    했다. 이사할 집을 고르던 아빠가 고려한 조건은 ‘도서관이 가까이 있는가였다고 한다.




우리 동네는 물을 피해 지어진 곳이다. 40여 년 전, 가까운 큰 도시에 댐이 건설되면서 본래 사람들이 살던 5개의 읍과 면이 물에 잠겼다. 어느 날 태어나 살아가던 사람들은 잠긴 고향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출처: 중부매일, 재인용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9533


어머니는 그렇게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하셨고, 10년 뒤 내가 태어났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산을 등진 학교가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주거를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지만 요즈음의 계획 도시와는 풍경이 많이 다른 작은 동네. 이렇다 할 공공기관이라고는 도서관이 전부였던 것 같다.


놀이터보다 도서관을 찾았던 건 이사 후 그 즈음이었다. 크지 않은 그 동네에서 유일한 도서관이었다. 늦은 시간까지도 열려있어, 밤 10시가 가까이 되도록 줄곧 독서실에 앉아있었다. 열람실의 책장 사이를 넘나들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어느 칸에 꽂혀있는지 외웠다. 처음으로 어린이 공간이 아닌 '일반' 서적에서 책을 빌렸을 때 어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뿌듯했다. 나는 심심하면 책을 읽던 게 보통인 사람으로 자랐고, 그로 인해 내 세상은 분명 더 넓어졌다. 책과 도서관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문화였다.


가까운 데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정말 복이다.


무엇과 함께 자라느냐는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가끔 생각한다. 내가 미술관 가까이에 살았다면? 내가 영화관이나 공방 가까이에 살았다면?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하루만에 다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품들. 압도하는 공간감에 다녀오고 나서도 몇 번씩 번뜩 생각나곤 하던.


20살이 되어 대학교에 진학하고 지금까지 줄곧 다른 지역을 전전하면서, 놀랍게도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도서관이 멀었던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도 여전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곳에서 산다. 문득, 어쩌면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더라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보다 큰 것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찬다.


오늘날 우리 동네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도서관이 수족관과 겸하여 시내에 지어졌다. 종이와 수족관, 물을 피해 온 지역의 도서관이 수족관과 함께한다는 건 일순 역설적이다.


사람이 살 만한 조건이라는 건 다양하게 있겠지만, 적어도 어떤 어린이들은 도서관만큼은 가까이에 두고 살아갔으면 다. 그 풍족한 장서 목록을 눈으로 손으로 훑으며 만족감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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