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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곰 Feb 09. 2023

전자책을 좋아하세요?

나오미 배런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해력이 문제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기초 문해력 함양'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익숙해진 오늘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초등학교 1, 2학년의 국어 교과 시간을 34시간 더 확대할 것이라 예고하였다. (교육자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제일 늦게 바뀐다는 교육과정에 문해력이 반영될 정도이니 문해력 이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된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매해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기초 문해력만큼이나 강조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매체'이다. 김성호와 엄기호의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는 문해력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한 개인이 글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개인이 읽고 쓰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매체의 확산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글'을 접하게끔 환경을 바꾸어놓았다. 어쩌면 마음의 장벽이 높은 종이책보다도 더 빠르게, 쉽게 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건지도 모른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news/visualNewsView.do?newsId=148908450)


      전자책/오디오북은 분명 글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을 높인 매체로서 크게 공헌했지만, 여전히 이들을 향한 뿌리 깊은 불신, 그리고 종이책 성공 신화는 쉽게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전자책을 사는 오직 한 가지 이유라면 단연 '부동산', 종이책을 놓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책/오디오북이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두 말할 것 없이 부정하며 '종이책보다 못하다'는 평을 내린다.


    그렇다면 종이책 외에 다양한 형태로 보급되는 우리 주변의 텍스트들을 마냥 배척할 수밖에 없나? 전자책/오디오북을 읽는 것은 늘 종이책을 보완하는 용도로만 머무를 것인가? 아니, 애초에 전자책이 종이책이랑 비교할 수 있나? 매체 교육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 정작 전자책/오디오북 읽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는다.




    책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항상 '필요하다' 수준에 그쳤던 위 논의를 과감하게 확장시킨다. 저자 나오미 배런은 읽기와 학습에 대해 우리가 막연히 문제시하던 부분을 세밀하게 짚어내고, 현상을 분류하여 명확히 보는 작업을 진행한다. 예컨대 '종이책 ↔ 전자책'이라는 대립 구도로 놓는 기존 생각의 틀을 벗어나서, 스크린 읽기의 대상을 '디지털 책'과 '증강형 디지털 책'으로 세분화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분류를 세분화하는 것은 다른 시각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된다. 2부의 경우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는 상황을 가정하며 종이책과 전자책 읽기 상황을 구분한다. 어떤 디지털 책은 이야기와 적절히 연관되어 종이책과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증강형 디지털 책은 어린이의 관심을 '이야기와 상관 없는' 게임과 터치 조작으로 옮김으로써 종이책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관성으로 종이책을 맹신하던 나에게 이 책은 이렇게 일침을 두는 것만 같다.


    "언제는 종이책도 잘 읽었던 것처럼 말하네!"

    ※ 1부 3장의 제목은 무려 '종이책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착각'이다.




    작가는 '읽기와 독자'의 의미에서 시작하여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와 영상 읽기의 현주소를 차근차근 되짚는다. 독서량이 점점 감소한다는데 실제로도 그럴지, 희미하게 짐작하던 사실을 현장 연구와 통계를 통해 눈앞에 들이민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떤 선고를 받은 듯한 느낌을 받지만 정작 저자는 담담하고 건조하다.


    요점은 전자책/오디오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에 있다. 종이책을 읽더라도 전자책/오디오북에 익숙한 방식으로 읽는다면 그 효과는 종이책에 기대하는 만큼에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전자책/오디오북을 읽을 때 종이책을 읽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아마도 당신이 종이책에 기대하고 있을' 읽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어쩌면 여기까지 읽고도 피로한 당신이라면 책 한 권을 이미 다 읽은 것마냥 만족하며 돌아설 수도 있겠다. 그래도 종이 읽기와 디지털 읽기 중 무엇이 최적의 전략인지, 오디오와 동영상 읽기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모호한 관점을 쪼개어 바라보는 통찰을 기르고 싶다면 텍스트를 꼼꼼히 눈으로 씹어 읽을 것을 추천한다.




    디지털 기기로 전환된 세상의 도래! 어감만으로는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는 이미 새로울 게 없는 전자 매체로 글을 접하고 있다. 우리가 (1) 서점에서 책을 사려고 간판을 훑을 때, (2) 침대에 누워 소설을 읽을 때, (3) 쇼핑 카트 위의 마트 전단지를 집어 읽을 때 -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읽고 있는 글이 종이인지 네온사인인지가 중요할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를 어떻게 읽는지이다.

    

    이 책은 입문서라고 보기에는 다소 논문스럽지만, 논문 모음이라고 보기에는 대중서처럼 술술 읽힐 것이다. 특히 어린이, 학생, 학습자의 읽기 전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교육학 지식을 어느 정도 숙지한 이들이 읽는다면 반가운 용어들(스캐폴딩)을 마주할 수 있다. 당신이 교사, 교육학 연구자, 교육 계열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대중 수준에서 친절히 각주가 제시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라. 다행히 이 책은 읽기 전문가가 쓴 책이다.


    글을 접하는 환경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어려서부터 책을 쉽게 접할 환경에 놓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오늘날 거대한 책장이 놓일 자리 대신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읽어나갈지에 대한 책임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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